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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평점 :
그러니까, 피터 스완슨의 2016년 작 <죽어 마땅한 사람들> 출간 이후 7년 만의 후속작입니다. 열린 결말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지만, 신작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긴 기다림을 보상하기에 충분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작의 헨리 킴볼은 경찰에서 파면되었고 사립탐정이 되어 등장합니다. 역시나 상대적 선악감별사 릴리 킨트너도 이야기가 쌓여갈 즈음 반전과 새로운 흥분을 제공하며 등장합니다. 뭔가 익숙한 분위기이지만, 범죄적 소재나 인물들의 심리묘사 등을 뽑아내는 재능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예컨대 버터나이프로 그의 한쪽 눈을 도려내는 행위같은 상상에까지 나래를 펼쳤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역겹기도 했다. 감정이 이상하게 뒤섞여버렸다. 조앤에게는 언제나 적이 생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p.51>
일상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인물이 품고 있는 마음 속 지옥도를 슬쩍 펼쳐보이고는, 악에 서사를 부여하되 공감보다는 섬뜩한 거울을 마주한 듯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전작에서도 만난 터이지만, 다시 마주해도 그 문장의 노련함은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악을 이용해서 범죄의 민낯을 밝히려는 헨리의 선택과 상황은 이제는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범죄 스릴러물의 클리셰가 되었지만,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릴리의 등장은 확실히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였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도와줄 건가요?” 이제는 램프 불빛이 그녀의 얼굴 전체를 비추고 있어서, 나는 그녀의 두 눈을 전부 바라볼 수 있었다. 옅은 초록색 눈동자였다. “물론이죠.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당신을 도울거예요.”
<p.259>
거의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튼실한 덩치의 소설책이지만, 피터 스완슨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장들과 페이지를 넘나드는 눈동자가 충분한 속도로 따라가지 못하는 내 인생의 곤고함과 쉬이 지쳐버리는 육신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주인공 시점의 전환’이라는 절묘한 타이밍의 절묘한 테크닉이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가불기 (가드 불가 기술!) 였습니다. 헨리의 시선에서 시작해서, 릴리의 시선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사랑스런 범죄 스릴러가 되고야 맙니다.
“나는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인생에는 전혀 후회가 없었다. 내게는 언제나 그런 일을 할 이유가, 그래야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 헨리가 그 언덕 위의 공동묘지에서 죽었다면 내가 저지른 일을 후회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그저 내 기분을 좀 나아지게 하려는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p.469>
이야기는 전작보다 훨씬 자상하게 마무리되었고, 헨리도 릴리도 여전히 서로엑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피터 스완슨 작가는 후속 이야기를 부지런히 지어서 다시 나타나주길,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