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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밍거스 - 소리와 분노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진 샌토로 지음,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9월
평점 :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은 찰스 밍거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소싯적에 재즈라는 ‘상대적 우월감’을 나름 즐겼던 지인들과 함께 모여 밍거스와 그의 음악을 기억하며 그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했었습니다. 그리고, 올 가을, 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찰스 밍거스: 소리와 분노>라는 굉장한 분량의 책으로.
원작은 20여 년 전에 발간된 <MYSELF WHEN I AM REAL: THE LIFE AND MUSIC OF CHARLES MINGUS>입니다. 책의 원제인 연주곡 찾아 플레이하며 저자의 서문부터 읽어나갑니다. 유명 베이시스트인 밍거스가 작곡한 <Myself when I am real>은 의외로 그가 연주한 피아노곡입니다. 격랑에 일렁이는 파도와 그 위를 유랑하는 작은 보트, 그리고 비바람과 파도소리에 뭍혀 들리지 않는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는 밍거스가 보이는 듯한 유려하게 넘나드는 피아노 연주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책의 저자인 진 샌토로는 밍거스 전기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소리와 분노’라는 한글판 부제는 그 연장선에 있는 듯 보입니다.
“그의 음악은 나를 끌어당겼지만 사람들과 장소들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밍거스의 가족, 친구, 또래, 동료, 사이드맨, 막후의 사람들, 그에 대해 정통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책의 버팀목이 되어 준 수백 차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미국 의회 도서관과 러트거스대학교 재즈연구소의 밍거스 자료들을 탐사하고 여기저기 있는 기초 자료들을 뜯어보았다. 이렇게 만난 결과들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경찰 곤봉처럼 나를 후려쳤다.” <p.6,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중>
거의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책의 분량은 이 격정적 인물의 생애를 담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성실과 선의로 가려 뽑은 저자의 노력과 필력 덕분에 읽는 내내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었고, ‘진실할 때의 밍거스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경건의 시간이라고 까지 할만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찰스 밍거스의 음악들을 램덤 무한반복 플레이한 채로 그 공간에 갇혀서 읽어내는 밍거스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격랑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조니 미첼 : 그는 매우 폭력적이고 고약한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어요.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을 좋아했는지도 모르죠. 나는 항상 저 밑에 매우 예민한 심장이 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로 밝혀진 거죠. 밍거스는 감정의 폭이 넓었고 우리 관계는 매우 다정다감했죠.” <p.841>
밍거스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란 데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인생의 뜨거움에 있어서는 비근한 예를 쉽게 찾기 어려운 인물이라는데 강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즈나 음악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그 인생을 관조하거나, 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인생의 진폭과 격랑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합니다. 더불어, 어쩌면 필연적이겠지만,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재즈 문화와 미국 사회의 풍경, 그리고 여러 다양한 음악인과 유명인들의 공유한 시간과 그들의 증언을 듣노라면, 어느새 그 시대 속에 푹 침잠하게 되는 타임슬립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BGM은 너무나도 넓은 스팩트럼의 밍거스의 음악이어야 합니다.
"음악적으로 비타협적이었으며 다혈질의 성격으로 오케스트라 혹은 밴드를 지휘했고 오십대에 생을 마감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음악을 소재로 사용하며 계속해서 그것을 확대, 발전시켜나갔다... 혼돈으로 가득찬 밍거스의 음악은 세상의 다양한 음악을 그 소재로 끌어당겼다. 그의 음악의 복잡함은 경계인이었던 밍거스 자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 <p.945-946. 옮긴이의 글. 중>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가 번역했다는 것일 텐데, 책 말미의 ‘옮긴이의 글’에서 밍거스를 구스타프 말러와 비교하며, 그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꾀나 흥미롭고, 음악과 인생을 이해하는 폭을 좀 더 확장시키는데 꽤나 도움이 됩니다. 마치, 마블영화의 마지막 ‘쿠키영상’ 처럼, 이 책을 덮고서 그의 음악으로 나아갈 제법 괜찮은 선물 받은 느낌입니다. 어쩌면 재즈는 가을의 음악인 듯합니다. 그리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이 책은 더할 나위없는 가을의 책이라 해도 무방하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