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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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환승으로도 들러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미답의 땅이다. 하지만, 그곳의 책들, 영화들, 음악들, 사진들, 음식들, 어느 것 하나 매혹되지 않은 것이 없는, 미답의 땅이지만 로망, 그 자체인 곳이 바로 프랑스였다. 물론, 모두의 사랑, 파리는 말해 뭐하겠으며, 프로방스, 생각만 해도 그 산과 들, 오래된 거리와 건물들이 오롯이 떠오르는 그 도시들, 사람들의 흐릿한 이미지들이 일렁인다.


본능을 따라 일탈로 오른 파리에서 아를로 향하는 기차가 떠나면서 이 책, <프로방스 여행 -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이하 <프로방스 여행>)가 시작한다. 이 부분이 여느 여행책과 크게 다른 지점이다 싶다. 나에게 거의 30년 째 살고 있는 서울이란 도시가 오히려 고향 같아진 지금도, 오래 전 떠나 온 시골 고향 땅의 들과 구름과 산, 강들이 그립고 안쓰럽고 무작정 되돌아가고픈 곳이듯, 이 책은 도시들을 지나치고 그 곳의 여러 모습들을 바라보는 내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프로방스의 아를, 나는 작가가 운전하는 구형 시트로엥 조수석에 앉아 작가가 들려주는 도시들의 이야기에 흠뻑빠져서, 어느새 프로방스의 거리거리를 서성이고 있단 착각이 든다.


누구나 사랑해 마지않는 화가 고흐와 함께 거니는 '아를', 여느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가 그러하듯 문화, 종교, 사람들이 복잡다양하게 반목하고 화합해낸, 피에르 퓌제와 마르셀 파뇰, 르 코르뷔지에를 만날 수 있는 '마르세유'. 

생트로페 지역에 이르르면, <어린 왕자>의 '아게', 르누아르의 '카뉴쉬르메르', 피카소의 '앙티브', 마티스와 샤갈의 '니스', 골목길 '생폴드방스', 니체의 '에즈', 가죽과 향수의 도시 '그라스', 세잔의 '엑상프로방스', 아,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뤼베롱의 언덕을 오르면, 카뮈의 '루르마랭', <지붕 위의 기병>과 <어느 멋진 순간>의 '퀴퀴롱', 로마다리 '보니유', 당과 생각에 입맛을 다신 '압트', 내 인생 최애 <나무를 심은 사람>의 작가 장 지오노의 '마노스크', 너무 부러운 독립서점 '르 블뢰에'가 있는 '바농', 도자기 만들기 체험 예약하고픈 '무스티에생트마리', 부조리극의 대명사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루시옹', 피카소와 도라 마르의 사랑과 이별의 '메네르브', 올리브나무와 라벤더가 펼쳐진 세낭크 수도원의 '고르드'.

여전히 중세에 머무른 듯한 '아비뇽'에서 만나는 퐁뒤가르, 애닲은 카미유 클로델, 아비뇽 교황청.


그렇게, 다시 오른 파리행 야간열차. 

어느 부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프로방스.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어느 작은 마을 식당에서 내어주는 지역 와인에 곁들인 부야베스로 배 부르고, 흥도 오른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야간열차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프로방스의 도시로 가는 열차표를 예매할 결심을 할 듯 하다. 

다음 번엔, 아비뇽에서 차를 빌려서 내가 운전하고, 조수석엔 이 책 <프로방스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두고, 느릿느릿 반대방향으로 프로방스를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책. 가끔 서울의 삶에 지치고 향수병이 도질 때, 이 책의 아무 페이지라도 펼쳐볼 작정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가본 적 없지만, 마냥 그리운 그 곳, 프로방스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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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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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장편소설 / 김경미 옮김

인생의 전부였던 오빠를 따라 몰래 오른 배가 인당수로 향하고, 미나는 심청 대신 바다로 몸을 던진다.
과연, 미나의 운명은!? (신비스런 BGM이 깔린다)

한국계 미국인 2세 악시 오의 소설 <The girl who fell beneath the sea>)는 재미있는 번역가로 정평이 나있는 김경미의 번역으로 <바다에 빠진 소녀>로 다시 태어났다. 누가 보더라도 고전 <심청전>의 기본 이야기에 변주와 상상력(물론 <심청전>도 판타지이지만...)을 더해 탄생한 21세기 K-판타지이다.

익숙한 듯, 이질적인 이야기는, 읽어들어가면 이야기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원안 <심청전>을 어떻게 치고 빠지는지를 기대하는 마음이 재미를 배가하는 시너지(!)효과까지 낸다. 번역과정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매끄럽게 읽히도록 튜닝되었을 소설을 완독하고 나니, 소설의 영문본으로 다시 읽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그리고, 원안 <심청전>의 배경지식 없이 이 소설을 마주하는 영어권 독자들의 입장이 궁금하기도 했고, 영어의 뉘앙스가 주는 재미에 대한 호기심이 지대해졌다.
그리고, 요 몇년 사이에 남발된다 싶을 정도로 사용되고 있는 "K-어쩌고"가 살짝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우리 고전인 <심청전>의 든든한 이야기적 재미가 세대와 국가를 뛰어넘는 원안으로 충분히 읽힐 수 있다는 자부심은 이 소설의 또다른 부록되시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p.17)

이 소설은 재미도 재미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나아간다는 점이 이야기의 성격에 너무나도 딱붙이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자신의 운명으로 나아가는 독립된 여성의 이야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작가의 선택이다 싶었다. 판타지적 세계관 속이지만, 현실에 발 딛고 서있는 이야기는 그래서 그 재미를 배가 시킨다. 정말 재미있다. 소설의 미덕이 달성되는 지점.
청소년 소설을 지향하는 모양새의 소설이지만, 그들을 자녀로 둔 부모세대들도 나름의 재미를 선사하기에 충분한 소설 <바다에 빠진 소녀>, 일독을 권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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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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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싱어송라이터 이적의 궤적은 남다른 면이 있다. 가수로, 작곡 작사가로, 소설가로.

노래방 십팔번 대량생산자이자, 이 시대의 사랑꾼, 서울대 동문 가족 등등.


그의 인스타그램에 간간히 올라온 단어들에 대한 단상을 적어낸 글들이 책으로 묶였다.

쉬이 읽힐 듯 책을 펴들었지만, 그의 노래가 흥얼거려지며 넘기게 되는 페이지도 있지만,

한참을 머무리게 되는 단어들, 섬뜩하게 아득한 단어들이 고개고개 굽이굽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절연

"미친개가 우릴 쫓아오던 날, 조금 앞서 달려가던 형이 고갤 돌려 날 보더니 눈에 광채를 띠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 걸 본 순간. 

절연의 순간은 뜻밖에 쉽게 찾아온단다."


말을 잡아내는 솜씨는 여태까지 만났던 그의 노래들에서 익히 알고 있는 터였으나, 이 책은 그 솜씨를 제련하여 페이지 페이지마다 아로새겨 두었다.

아릿한 단어들, 뭉클한 단어들, 그 속에 담기고 스치는 이야기들에, '역시 이적이다'를 대뇌이게 된다.

가끔, 책장에서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여다보는 재미로 보자면, 반려책으로도 좋겠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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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눈뜰 때 소설Y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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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눈뜰 때>


이윤하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순전히 아들녀석의 꼬드김 때문이었다.

<나인폭스 갬빗>은 묘하게 한국 문화와 수학적 재미(?)를 바탕으로 창조된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한편의 스페이스 오페라였다.

SF소설이라기보다, 판타지소설로 읽혔다. 처음 만난 설레임은 아직도 선하다. 안 본눈 삽니다 ㅎㅎ

그리고, 가재본으로 만난 그의 신작 <호랑이가 눈뜰 때>. 가재본이라지만, 기존과 달리 보통 '책'이라 불리는 '대본집'형태라 신선했다.

그렇게 넘겨진 페이지는 이야기의 끝을 향하는 속도와 재미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이야기는 호랑이령을 지닌 열세살의 주황 세빈이 끌고 간다. 청소년 주인공이라 자못 유치하거나, 이야기르 펼치는 한계에 부닥칠 우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음을, 종횡무진 헤쳐내는 주황 세빈은 너무나도 갓벽한 주인공이었다. 이윤하 작가의 글빨이 빛을 발하는 순간!

멋진 세계관과 주인공의 탄생이다. 이야기를 풀어내고 확장해내면 탄탄한 시리즈물로 나아갈 만한 시작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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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 상상 청소년소설 1
이만교 지음 / 상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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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
이만교 장편소설 / 출판그룹 상상

실로 오래간만이다. 2000년 정도에 작가의 그 유명한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읽고나서의 재회이니, 20년도 넘었다.
그간 작품이 출간되었으나 나에게까지 닿지 못하였다. 그렇게 흘러 만난 작가는 ‘청소년소설’로 마주했다. 하지만, 그 알 수 없이 묘한 리듬감과 이야기의 재미는 충분히 이만교의 인장이라 여겨질만 해보였다.

이야기가 돈이 되는 것임을 깨달은 전기수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고초를 격고 마침내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P82. "슬픈 이야기는 슬픔을 풀어 줍니다. 재미난 이야기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 줍니다. 억울한 이야기는 상한 마음을 풀어 줍니 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그 사연을 들어 주기만 해도 한 결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만약 억울한 이야기 가 많이 돌아다닌다면, 그것은 다만 그렇게라도 억울한 마음을 풀고자하는 백성들이 많다는 경보 같은 것이옵니다.“

백성의 마음을 실어나르는 이야기. 민심이 천심이고 이것이 여론이라는, 현재의 이야기로 병치해도 거뜬한 이야기에 생각이 또렷해졌다. 어쩌면, 세상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먹고사는 작가, 소설가의 자기투영이라 여겨질만한 주제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쩌면 ‘청소년소설’이라는 레이블이라 선택된 바일테지만, 그 특유의 리듬감과 속도감으로 이야기는 헤쳐나가고 빠져나간다.

중3 아들도 재미나게 단숨에 읽어낸 걸로 봐도 이만교 작가의 말빨(!)은 여전하다 싶다.
21세기의 전기수들에게 응원과 더불어 기대를 보낸다.

#이야기의이야기의이야기
#이만교 #장편소설 #청소년소설
#도서출판상상
#서평단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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