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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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장편소설 / 래빗홀

 

그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p.7

 

소설의 첫 문장은 힘이 쌥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과 사건들은 흥미진진하고 때론 아프지만, 이 첫문장에 복무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제목 만큼이나 모순적이고 비현실적인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올해로부터 정확하게 100년 전에 있었던 그 사건, 관동대학살. 그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작가는 SF적 상상력으로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사건으로 시간여행을 합니다. 네 개의 챕터와 네 번의 루프.

황모과 작가의 전작인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또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1990년을 기억하며 SF적 상상력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고, 이번 신작도 비슷한 궤에서 민족적 아픔을 들여다보며 사유합니다.

 

아시아 홀로코스트 진상 규명 위원회의 민간인 학살 조사의 일환으로 13차 검증단으로 선발된 민호와 다카야라는 두 인물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싱크로놀로지 시스템을 통해 역행한 세월은 역사의 아픔을 위무하려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네 번의 루프를 통해 우리의 현재는, 그날의 진실은 어떻게 지어져왔고 지어져 가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뭐 하는 거야?”

다카야를 보는 민호의 표정은 100년 전과 똑같았다. 다카야는 지난 100년 동안 곱씹던 순간으로 되돌아왔다. 민호는 마치 이 상황을 처음 맞는 것처럼 굴고 있엇고 다카야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다카야에게 형벌처럼 시간 루프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p.81

 

황모과 작가의 이야기의 힘은, 그저 상상력만이 아닌 성실함과 진심이 만난 생생한 취재가 바탕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일어나지 말았어야했던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런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라져버린 사람들, 그들은 말이 없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려 해야 한다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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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 내 삶에 진심인 사람은 없다 - 프로실패러의 '찌그러진 삶을 펴는 도전의 기술'
원하늘 지음 / 니어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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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말하는 프로실패러가 아니라, 스스로 기특해하며 그저 살아내는 중인 작가의 마음가짐과 격려가 읽어가는 내내 따스하게 곁에 서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20대에 놓였던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나는 자주 답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잘못된 답이라고 느끼면 리셋 버튼을 누르고 새로운 답을 찾아 나섰다.... 수많은 리셋 과정을 실패라고 칭한다면 나는 분명 프로실패러다. 하지만 끝에 다다르지 못하고 그만 둔 경험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은 실패와 성공이 아닌 성공과 성공에 이르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p.8 프롤로그 중.

자서전 같으면서도, 인생선배가 들려주는 성공 비법을 가르치는 처세서 같다가도, 방황하는 인생 동지들에게 건네는 뜨거운 마음 담은 편지 같기도 한 이 책 <나만큼 내 삶에 진심인 사람은 없다> (이하, <나내진사>)는, 신문기자, 보험판매원, 학원 강사를 가뿐히(!) 공무원이 된 이력왕이자, 3개의 대학교와 3개의 전공을 섭렵한 연년생 두아이의 엄마, 그녀가 한땀한땀 수놓은 ‘인생 레시피‘입니다. 그 다양한 이력과 인생의 질곡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나 진득하지 못하고 늘상 새롭게 마음이 이끄는 파랑새를 쫓는 이상주의자나 현실부적응자 아니가 싶다가도, 매번 스스로 길을 찾고 최선으로 스스로의 삶과 사람을 사랑해내고야 마는 그 성실과 배려에 그만 반해버리고 맙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모르겠다면 마음에 방향을 물어보자. 그리고 마음이 반응하는 곳을 바라보자. 설레는 그곳에 빙긋이 미소 짓고 말하자. “기다려. 내가 곧 도착할 거야.”
p.32

물론, 열정과 선의만으로 모든 선택과 전진이 순탄하다면 그 인생 재미(?) 없을테지만, 작가의 시간에도 당연히 실패와 그로 인한 아픔이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일으킨 좀비 근성, 그것은 어쩌면 질곡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다 싶었습니다. 맞바람을 동력 삼아 전진하는 돛단배처럼.
그리하여, 숯한 물음표들을 넘어 느낌표에 도달하도록 내달리고, 넘어지고 또 내달려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를 응원하며 아직도 나아가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나내진사>를 통해 작가 스스로를 빗대서,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넌저시 고백합니다.
“한번 더 ‘꾸역꾸역 다시 주워서 소중히 끌어안자고,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지켜내자고!”
“나만큼 내 삶에 진심인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살아보자,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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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시크릿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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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 직원이 아이 대신 말했다. "모런 형사님께 손님이 왔습니다." 펜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홀리 매키 양입니다." 

p.12


일명 '더브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로 묶이는 전작 <페이스풀 플레이스>에서 등장했던 스티븐 모런과 홀리 매키가 재등장합니다. 전작을 읽으면 좋았겠지만 아니라도 무방합니다. 다만, 더 풍성한 숨은 재미를 얻고 싶다면 찾아 읽어보길 권합니다. (어쩌면, 읽고나면 언제 담아둔지 기억에도 없지만,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전작을 발견할 수도..)


작가의 전작에서 확인했듯, 깊이 있는 캐릭터 빌드업과 독백을 통한 서스펜스의 구축은 굉장히 인상적이며, 이야기의 재미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솔직히, 타나 렌치의 이야기를 제대로 또박또박(?) 읽으면 약간의 두통이 생기는 듯 합니다. 아마도, 과도하게 공들여 디자인한 이야기와 순간순간 뒤통수를 치는 순간들 때문 일테지만, 그래서 이야기 앞으로 나가는걸 읽으면서도 조바심이 나는 느낌입니다. 덕분에 거의 800페이지를 육박하는 묵직함에도 불구하고, 읽어내는 속도와 이야기의 재미 덕분에 휴가 기간 이틀만에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꿀잼'입니다.



내가 말했다. "나한테 뭘 알려주러 왔다고 했잖아. 수수께끼 놀이할 생각은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가서 다시 생각해봐. 알면 지금 말하고." 

홀리는 내 말을 인정하고 다시 미소를 지을 듯하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p.18


또한, 작가는 수사 형사들 사이 뿐만 아니라, 독자와 이야기 사이의 관계를 빌드업하는데도 제법 공을 들입니다. 물론, 그 빌드업은 독자가 이야기에 푹빠져 따라가게 하는 모멘텀 역할을 제대로 합니다. 거기에는 작가가 독자를 산만하게 만들려고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신뢰 같은  것이 쌓이는 느낌, 어떤 연대감에 도달하게 합니다. 타나 프렌치는 이 연대감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더해서, 작가는 또래들의 우정이라는 그 현실을 직면시키면서 생각해보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마법이 진짜라는 느낌과 이야기의 커다란 요소라는 설득에 순순히 넘어갑니다. 또한 그 우정은 어떻게든, 누구든 정의하고 성적이나 가족, 심지어 그 개인들의 이름보다 더 현실적이 됩니다.

친구가 세계의 전부이자, 존재를 규정하고 경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시절의 인물들, 혹은 독자의 그시절을 떠올리게 까지 합니다. 함께라면 그야말로 '마법'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은 시절을 마주하는 묘한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무방비로 오르게 합니다. 


한가지 약점이라면, 여러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각자의 서사와 사건이 합종연횡한다는 것 정도 입니다. 물론, 작가의 장기가 여기서 제대로 발휘되는데, 결코 그 합종연횡이 혼잡스럽지 않게 잘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장치의 기어박스 같이 직조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정점을 향할 수록 강렬한 무언가에 하드캐리 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잃을 것 많고 증명해내야 할 산적한 이슈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티븐 모런 형사를 내내 응원하게 됩니다. 


홀리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소, 예전 모습과 똑같았다. 그 시절 미소는 어딘가 안쓰러웠고 매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p.15


타나 프렌치의 이전 작품을 즐겨본 독자들에게도, <시크릿 플레이스>로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이런 익숙한 듯 독특한 이야기의  힘으로 끝까지 달려가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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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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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 대한민국헌법 제36조 1항

작가의 전작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네 일상에 똬리 틀고 있는 차별과 배제, 그 민낯을 직면했다면, 가제본으로 만난 일본 소설 제목 같기도 한 <가족각본>은 성소수자 이슈가 만들어내는 균열을 쫓아 한국의 가족제도를 마주합니다.

책의 차례를 들여다보면, 작가가 독자를 이끌고 갈 '우리의' 가족 시스템은 면면은 이러합니다. (가제본은 3장까지만 포함)

프롤로그: 가족이라는 각본
1장: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될까
2장: 결혼과 출산의 절대공식
3장: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못한 출산
4장: 역할은 성별에 따라 평등하게?
5장: 가족각본을 배우는 성교육
6장: 가족각본은 불평등하다
7장: 각본 없는 가족
에필로그: 마피아 게임

우리네 가족 시스템은 모두 '성별'에 기반함을 짚으면서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시스템을 반대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구호는 "남자가 며느리? 여자가 사위?" 같이 그 성별의 파괴로 공포의 단초를 제시한다고 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와 서구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가족의 형성을 들여다보며, 성별로 구분되는 가족, 특히 며느리가 여성인 이유를 들여다보고 (1장), 가족각본을 벗어난 '일탈자'가족이 만들어지고 출산이 이루어지는 것의 역사적, 사회적 고찰을 하며 (2장), 그리고 사생활의 영역일 '출산'이 다른 가족과 이웃의 욕망이 개입되고 국가와 사회의 압박이 미치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3장).

다시 돌아가, 처음에 언급했던 대한민국헌법 제36조 1항에서는, 국가에게 의무지운 가족생활의 성립과 유지의 보장의 기초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입니다. 기초는 개인존엄과 양성평등이 '모두' 포함되야 한다는 것이라, 우리네 '가족각본'을 벗어난 일탈자들의 가족생활은 국가의 보장 대상에 함량미달이라 정의하는 듯 합니다. 여전히 맞닥뜨리고 싸워내야 하는 벽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들을, 우리를 마주해야 할까요?
책에서 작가는 질문을 던지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선듯 답할 수 없는 견고한 '가족각본' 안에 있는 우리는 우물쭈물 하고만 있습니다.

#가족각본 #김지혜 #선량한차별주의자
#창비 #대한민국헌법제1장제2조
#가편집본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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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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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를 처음 만난 건, 정확히 1년 전입니다. 휴가 기간 들른 서점에서 남성잡지에 '휴가용 소설들' 중 하나로 소개되어 킬링타임용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해서 집에 들고 왔습니다. 그렇게 1주일 휴가동안 정신없이(?) 쉬다가 출근 하루 전, 책상 귀퉁이에 누워 있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서점에서 사와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펼쳐들었는데, 새벽녘까지 한달음에 읽어버렸고, 결과적으로 완벽하고 시원한 여름휴가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우연한 기회에 서평단으로 미리 책을 받아 들었습니다. 전작의 붉은 표지만큼이나 인상적인, 화사한 보자기 같은 것으로 사람의 머리를 뒤덮어 감싼 이미지는 꽤나 강렬합니다. 아름답지만, 섬뜩합니다.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건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이었다' (p.5)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소설의 첫문장은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를 향하는 화살촉 같은 것이어서, 나의 독서습관 중 하나는 첫 문장이나 도입부를 긴 호흡으로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살인현장을 묘사하며 시작하는 듯 하다가, 이야기는 공간의 내외를 오가다 다시 현장을 비춥니다. 문장의 호흡은 역시 작가의 전작에서 만난 기시감을 들게 합니다. 상황에 따라 달리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하는 문장은, 독자의 호흡을 쥐락펴락해가며 어느새 이야기 속으로 이끕니다. 역시나 미쓰야 형사와 다도코로 형사 콤비가 느슨하지만 촘촘하게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나갑니다. 그 호흡이 정말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읽는 내내 최근 종영한 드라마 <행복배틀>과 <마당이 있는 집>의 느낌도 어슴프레 떠오르며, 등장 캐릭터들의 행동과 대사를 따라 가며 이런저런 추리를 해봤지만, 여지없이 이번에도 미쓰야 형사의 독특하지만 고집스런 집념은 의외의 결과를 향하고, 이 뒷맛이 전작처럼 묵직하게 독자의 마음을 내리누릅니다. 가히 충격적 결말이라 할 만합니다. 아니,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커버 이미지는 소설의 이야기 속 이미지에 점점 부합해간다 싶도록 적절한 선택이다 싶습니다.


'여름휴가용 소설'이라 불려도 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들, 설정이 맞물려 달려내는 맛이 상당히 시원합니다. 이 여름에 일독을 강력히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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