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시크릿 플레이스 ㅣ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8월
평점 :
대기실 직원이 아이 대신 말했다. "모런 형사님께 손님이 왔습니다." 펜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홀리 매키 양입니다."
p.12
일명 '더브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로 묶이는 전작 <페이스풀 플레이스>에서 등장했던 스티븐 모런과 홀리 매키가 재등장합니다. 전작을 읽으면 좋았겠지만 아니라도 무방합니다. 다만, 더 풍성한 숨은 재미를 얻고 싶다면 찾아 읽어보길 권합니다. (어쩌면, 읽고나면 언제 담아둔지 기억에도 없지만,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전작을 발견할 수도..)
작가의 전작에서 확인했듯, 깊이 있는 캐릭터 빌드업과 독백을 통한 서스펜스의 구축은 굉장히 인상적이며, 이야기의 재미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솔직히, 타나 렌치의 이야기를 제대로 또박또박(?) 읽으면 약간의 두통이 생기는 듯 합니다. 아마도, 과도하게 공들여 디자인한 이야기와 순간순간 뒤통수를 치는 순간들 때문 일테지만, 그래서 이야기 앞으로 나가는걸 읽으면서도 조바심이 나는 느낌입니다. 덕분에 거의 800페이지를 육박하는 묵직함에도 불구하고, 읽어내는 속도와 이야기의 재미 덕분에 휴가 기간 이틀만에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꿀잼'입니다.
내가 말했다. "나한테 뭘 알려주러 왔다고 했잖아. 수수께끼 놀이할 생각은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가서 다시 생각해봐. 알면 지금 말하고."
홀리는 내 말을 인정하고 다시 미소를 지을 듯하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p.18
또한, 작가는 수사 형사들 사이 뿐만 아니라, 독자와 이야기 사이의 관계를 빌드업하는데도 제법 공을 들입니다. 물론, 그 빌드업은 독자가 이야기에 푹빠져 따라가게 하는 모멘텀 역할을 제대로 합니다. 거기에는 작가가 독자를 산만하게 만들려고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신뢰 같은 것이 쌓이는 느낌, 어떤 연대감에 도달하게 합니다. 타나 프렌치는 이 연대감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더해서, 작가는 또래들의 우정이라는 그 현실을 직면시키면서 생각해보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마법이 진짜라는 느낌과 이야기의 커다란 요소라는 설득에 순순히 넘어갑니다. 또한 그 우정은 어떻게든, 누구든 정의하고 성적이나 가족, 심지어 그 개인들의 이름보다 더 현실적이 됩니다.
친구가 세계의 전부이자, 존재를 규정하고 경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시절의 인물들, 혹은 독자의 그시절을 떠올리게 까지 합니다. 함께라면 그야말로 '마법'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은 시절을 마주하는 묘한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무방비로 오르게 합니다.
한가지 약점이라면, 여러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각자의 서사와 사건이 합종연횡한다는 것 정도 입니다. 물론, 작가의 장기가 여기서 제대로 발휘되는데, 결코 그 합종연횡이 혼잡스럽지 않게 잘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장치의 기어박스 같이 직조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정점을 향할 수록 강렬한 무언가에 하드캐리 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잃을 것 많고 증명해내야 할 산적한 이슈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티븐 모런 형사를 내내 응원하게 됩니다.
홀리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소, 예전 모습과 똑같았다. 그 시절 미소는 어딘가 안쓰러웠고 매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p.15
타나 프렌치의 이전 작품을 즐겨본 독자들에게도, <시크릿 플레이스>로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이런 익숙한 듯 독특한 이야기의 힘으로 끝까지 달려가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