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이부치 - 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
최덕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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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2월부터 일본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하고 수십만 명에 이르는 시민을 지속적으로 학살했다. 이를 ‘난징 대학살’이라 한다.
(p.7)
아즈마 시로는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했을 때 6주 동안 30만명 이상의 중국 군인과 시민을 학살한 내용을 일기로 써 놓았다가 50년 후인 1987년 <아즈마 시로 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p.283)

책 제목의 ‘뚜이부치 (對不起)’는 미안하다를 뜻하는 중국말입니다. 일본군으로 난징 대학살에 가담해야만 했던 아즈마 시로가 노년에 다시 중국으로 단체관광여행을 가면서 손자가 적어준 이 말을 되뇌어 연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최덕현 작가의 그래픽노블 <뚜이부치, 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는 아즈마 시로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대학살의 뼈대 위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팩션입니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난징 대학살은 일본군이 중국군과 시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것이지만, 그 죽음의 행렬에 한반도에서 끌려간 무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압제와 전쟁 통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었겠다 싶습니다. 상상도 되지 않는 대학살의 참극을 일본군 장교를 대신 보고 듣고 느끼도록, 이 책은 제법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스케치해냅니다. 여성을 성노리개로 삼고, 참수를 경쟁하며 게임하듯 저지르는 모습에서는 인면수심, 아니 악마들을 마주하는 것이 이런 것 일거란 생각뿐이고 빨리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으면 하는 간절한 속앓이마저 터져 나왔습니다.
작은 희망의 여지들을 곳곳에 배치시켜 숨죽이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보지만, 여지없이 희망은커녕 더 큰 절망과, 심지어 인간에 대한 환멸, 전쟁의 폭력성과 비인간화를 단번에 쏟아내는 상황들이 연거푸 재현되는 장면들에서는 몇 번이고 책을 덮어야 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와 그에 따른 피해자. 그일 후에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과는, 분명히 가해자의 입장과 언어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과 언어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아즈마 시로는 용기를 낸 단 한마디, ‘뚜이부치 (對不起)’ 되뇌입니다. 굳이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1947년 4월의 제주에서 그리고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가 베트남인들에게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사과의 입장과 언어를 준비해서 표현하였나 생각이 깊어집니다. 피해자의 입장과 언어로 그들을 만나고 그들 앞에서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사죄해야만 하는 것, 더 이상 지체되거나 회피되어서는 안되는 것, 인간으로의 도리를 다하는 것.

미안...하...단...
말도... 못 했는데...
(p.227)

우리의 말을 들을 피해자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죄의 말을 준비하는 것. 그 숙제를 품고 마지막 페이지를 무겁게 덮었습니다.

#뚜이부치 #단한마디를위한용기 #對不起
#최덕현작가 #북멘토
#우리의숙제 #피해자의언어 #사죄의언어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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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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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극장>과 <니체 극장>으로 유명한 한겨레신문 기자/논설위원이기도 한 고명섭 작가의 신작입니다. 500페이지를 훌쩍 뛰어넘는 제법 투툼한 책에 우선 압도당할 수도 있으나, 목차를 들여다보면 그럴만도 하다 하며 금새 수긍하게 됩니다. 작가가 101권을 일일이 리뷰하며 그 속에 담겨진 생각들을 드러내는 글을 6개의 장에 나누어 펼쳐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안내하는 여정은, ‘사유의 숲길-생각의 요새-사상의 기원-회통에서 개벽으로-마음과 우주-지혜의 시대’로 연결되며, 성실과 집요로 책들을 들여다보되, 최대한 독자를 배려하며 보폭을 맞추려한 친절함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책을 여는 ‘프롤로그’를 읽는 것으로 이미 마음은 웅장해집니다. 사마천과 마키아벨리의 편지로 그들의 저작물이 어떻게 잉태되어 출산에 이르렀는지, 인류를 이끈 생각의 큰 흐름들 마다 우뚝 서있는 책들은 그 저자들의 곤란함과 혼란스러움에서 태어났음을 차례차례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독서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생각 읽기이고 마음 읽기’여서 이 또한 ‘곤궁한 마음에 생각의 씨를 뿌리는 일’이라 일갈합니다.

‘오래 굶주린 생각이여, 어둠 속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에 닿도록 자라 올라라.’
(p.23)

저자는 이렇듯 우리 독자의 자세를 고양하는 글로 시작해서, 동서고금의 다양한 생각이 담긴 101권의 책들을 읽어내며 그 생각들을 들여다보고 내놓아 나누면서, 독서함이 얼마나 신성하고 유의미한 일인지를 설파하고 또한 격려합니다. 책의 말미에 부록처럼 붙여놓은 ‘도서목록’은 모두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임을 확인할 수 있고, 아직도 얼마나 많은 해내야 할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한 무더기의 숙제를 보따리를 받아든 엄청난 부담감과 더불어 든든한 지원세력 같은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페이지 순서대로 쭉 읽어내도, 장별로 묶어서 읽어내도, 아니면 아무 페이지라도 탁 펴서 읽어내도 나름의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중한 책들의 책입니다. 처서를 지나 가을로 들어가는 지금, 생각의 바다로 첨벙 뛰어들어보길 권합니다.

#생각의요새 #고명섭 #교양인
#독서하는즐거움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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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 토머슨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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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출간되었던 책. 일본 거리 구석구석 토머슨의 유령, 그러니까 토머슨을 일본어로 음독하여 쓴 초예술(HyperArt)이 결합하여 나온 것이 이 책 <초예술 토머슨>이란 종이 묶음에 들러붙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봄직하고 읽음직한 작품들을 내놓기를 즐겨하는 안그라픽스를 통해 한반도에까지 상륙하기에 이르렀고요. 그런데, 큰일입니다. 토머슨들이 가는 곳곳, 식당이며 골목길이며 아파트 담벼락에까지 출몰하고야 맙니다. 이렇게나 해악을 끼치는 본 책 <초예술 토머슨>은 의식하지 못했던 존재들, 어쩌면 유령들?,을 인식하고 마주하고 심지어 간파하거나 간파당하고야 말게 합니다.

관념의 자주성, 로지컬 오토노미 logical autonomy는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반드시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이것은 한심한 육체 관리가 만들어낸 뇌신경의 군살 현상이다. 그런 군살이 붙으면 뇌신경은 대부분 활성화되지 못하고 망가진다. 평소에 뇌가 육체와 제대로 보폭을 맞추면 그런 군살은 뇌에 붙지 않는다. 이를 부연하자면 즉 평상시에도 물건과 자주 교제하면 뇌는 상쾌해진다. 육체가 바로 물건이니까. 그런데 뇌의 군살이라니, 이거 뇌의 토머슨 같은데...
(p.172)

이런 식입니다. 토머슨은 사물이더니 어느새 인류를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1956년작 <신체강탈자의 침입>의 외계인을 대신해서 토머슨이 스멀스멀 인간 세상에 인간 자체에 들러붙는 것, 동일 시 되는 과정을 묘한 공포와 핍진성을 끼얹었듯 말입니다. 뇌의 군살이라는 토머슨이라는 유령이라니 말입니다.

급기야 일본을 벗어나 프랑스와 중국 도처에서도 출몰하는 토머슨들에 대한 보고들을 마주하자니, 정말 큰일이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 보고들이 40여년 전의 것이라면 지금은 얼마나 퍼져있고 우리 인류는 얼마나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억 소리를 내뱉고야 말았습니다. 정말로 이 책, 해악 덩어리입니다.

어른이라면 이런 쓸모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계단 앞에 서보니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이 올라가고 싶어졌습니다. 이 물건은 인간의 행동마저 토머슨화하는 힘을 지닌 듯 합니다.
(p.435)

‘토머슨화’로까지 진화(!)한 그들의 무쓸모의 아름다움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서슴없게 합니다. 사물의 토머슨화로 사물은 최고급 물건이 되게도 하고 말입니다. 수목이 인공물을 집어삼키거나 흡수해버리기까지 하면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확장력을 보고한 부분에서는 마침내 절망적 운명을 실감하고 맙니다.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나 토머슨을 인식해버리게 내버려뒀는지 <초예술 토머슨>이 소름끼치기도 합니다. 이미 하나의 사상이 되어버린 토머슨,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도처에 숨어있는 토머슨들과 토머슨화되고 있는 현장들을 색출해내는 수 밖에.

#초예술토머슨 #아카세가와겐페이 #서하나 #안그라픽스
#Hyperart_Thomasson
#신체강탈자의침입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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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델핀 페레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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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네 시골집, 그러니까 외가댁은 내 어린 시절의 천국 같은 곳이었습니다. 방학기간이나 명절 연휴에는 2박 3일 정도 그곳에 머물며 외사촌들과 까마득한 시간들을 보내곤 했습니다. 특히, 해가 길었던 여름방학의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추억 범벅 오감으로 내 몸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부모님 없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지기라도 한 날들엔 정말이지 끝나지 않기를 매일 밤 기도하며 놀아재꼈습니다.
들판의 꽃과 나무, 산등성이에서 마주한 동물의 발자국 때로는 시체, 해질녘 돌아오는 논두렁을 가로지르는 고라니며, 마당을 가로질러야 있던 화장실과 방 한구석에 작은 문으로 연결된 다락방까지.

여름의 한날, 소년과 엄마가 엄마의 옛집을 방문하며 마주하는 사물들, 사람들, 사건들, 추억들을 여백 가득한 그림들과 담백한 대화들로 보여줍니다. 수채화의 색들이 서로 마주쳐 번지듯 여름과 지금과 과거가 마주치며 묘한 감정을 만들어내고, 어느 순간에 울컥하게도 합니다. 엄마의 흔적,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자리들, 물건들, 공간들, 산과 들. 그렇게 소년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으로 기억될 시간, 하지만 언젠가 흐릿해져 잊혀질지 모를 여름이 흘러갑니다. 소년은 자라나고, 엄마도 자라납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과 사람들을 눈과 마음에 담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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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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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얀 투롭의 화사한 표지그림을 들여다봅니다. 봄볕에 눈이 부셔서인지 여인은 덜 감긴 두 눈으로 꽃 옆에 머뭅니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겨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이내 잿빛 겨울이 되고 맙니다.

 

나는 그 백일홍 나무에 사로잡혀 있었다. (p.9)

그후 나는 여름이 되어 나무가 활짝 꽃을 피우고 화려한 차림으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백일홍 나무에는 어떠한 감동도 일지 않았다. (p.10)

나는 늘 그러듯이 백일홍 나무의 가지를 쓰다듬었다. 가지는 공기보다 더한층 차갑게, ()의 본질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p.11)

그 건물은 운명의 악의(惡意)처럼 늘 사람을 기다리는 듯이 서 있었다. (p.12)

내가 백일홍 나무와 영안실 뒷문에 사로쟙혀 있었던 것처럼, 그도 역시 하나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 같은 요양원의 환자들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는 타인의 죽음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너무 뒤늦게야 알았다. (p.15)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만큼의 고독을 품고, 저마다 폐쇄된 벽 안에 웅크린 채, 자신의 고독의 무게를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p.16)

이 상흔의 자각이 늘 우리의 고독을 채찍질했다. (p.17)

 

청춘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무척이나 커다란 그림자 드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십대의 그 청춘들에 드리운 질병이라는 그림자 보다 더한 것은 질병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병실, 간호사와 의사들, 두 개의 출구, 영안실 그리고 환자들. 흉곽 성형술, 스트렙토마이신, 폐엽 절제술, 객담 검사, 엑스레이 촬영, 외과 진단, 혈침 측정, 카프키 등급 그리고...

 

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오미 시게시, - 오로지 이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p.15)

 

폐결핵로 만난 같은 병실의 환자인 시오미 시게시라는 인물을 지켜보는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아가는 형식의 소설 <풀꽃>은 액자식 구성이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는 나아가며, 4개의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 겨울에서는 시오미 시게시와의 만남에서 이별을, 그리고 2장과 3장에서는 그가 남긴 두 권의 노트 속 이야기를, 마지막 4장은 시오미 시게시가 사랑했던 후지키 지에코 였던 이시이 지에코가 나에게 보내온 답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것이고,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다. 다만 사람은 그것이 언제일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일상 속에서, 살아 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한 채 헛되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p.59)

 

찬란하기만 할 그 시절은, 고독도 아픔과 슬픔도 있었기에 더욱 찬란해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에게 드리운 그림자조차도 젊음이라는 허세로 애써 무시하며 의연한 척 했지만 말입니다.

 

후지키 지에코, - 내가 청춘 시절에 사랑한 것은 이 소녀였다. (p.181)

 

그럼에도 사랑과 낭만을 결코 놓칠 수 없이 가득한 시간, 청춘입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뜨도 말입니다.

허나, 그 찬란한 청춘은 죽음이 오버랩되는 모순과 허상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과 그 시간 속의 사람들. 그 기억이 추억이 되도록,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부탁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는 산 자들의 기억과 함께 살아 있고, 살 자들의 죽음과 함께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죽음을 맞는다. 죽은 자에 대해 쓰는 것은 산 자의 의무인 것이다. (p.305_저자의 후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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