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있었다
이재무 지음 / 열림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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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황홀한 재앙이라고 말하는 이재무 시인의 서정시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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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었다
이재무 지음 / 열림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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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었다>는 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1995) <몸에 피는 꽃>(1996) <시간의 그물>(1997) <저녁 6시>(2007) <경쾌한 유랑>(2011) <즐거운 소란>(2022) 등을 펴내며 약 사십 년 동안 꾸준한 작품활동을 보여온 이재무 시인이 그간 발표한 연시들을 엮은 시집이다. 한국 대표 서정시인 이재무 시인은 이 책에서 수취인 없는 편지를 쓰듯 자신의 평생에 관여해온 '한 사람' 앞에 감희한 마음을 펼쳐놓는다. <한 사람이 있었다>에는 기존 발표한 시와 신작 시 들을 더불어 82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이재무 시인은 시 '모순'에서 "사랑만큼 순수한 모순은 없다"며 "사랑은 황홀한 재앙이듯 / 세계 내 모든 진실한 것은 모순이다"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전하는 이재무 시인의 시가 눈길을 끈다.

이재무 시인은 시 '한 사람 1'에서 "슬픔이 거름이고 힘이고 지혜를 준다는 것과 / 나를 울게 한 이는 나라는 것을 알게 한 사람 / 모국어와 사랑에 빠지게 하고 / 마침내 시를 쓰게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초로 그리움을 심어주고 고통을 안겨주고 부재의 허무를 살게 하며 자신을 깊이 만들었으며 바람을 예민하게 느끼는 감각을 일깨워준 한 사람에게 쓴 시는 이재무 시인의 깊을 서정성을 보여준다.

이재무 시인은 시 "풍경"에서 "마음 다쳐 아플 때 풍경을 바른다 / 꽃향기를 바르고 초록을 바르고 / 햇볕을 바르고 / 빗소리, 새소리를 바르고 / 달빛, 별빛을 바른다"라고 말한다. 마음 부어 아플 때 풍경을 감고, 너에게 넘어져 마음이 피 흘릴 때 풍경 속으로 들어가 풍경이 된다는 이재무 시인의 시는 인간의 감정과 풍경이라는 것의 감각을 더한다.

이재무 시인은 시 '푸른 자전거'에서 "그녀는 자전거를 잘 탔다 / 그녀의 자전거는 세상 얼룩을 닦는 수건이었다"며 "열여섯 그녀가 자전거를 타는 날은 / 세상도 덩달아 열여섯 살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시에서 푸른 자전거는 시인 이재무가 바라본 열여섯 그녀의 청춘의 시간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무 시인은 시 '뒤적이다'에서 "뒤적인다는 것은 / 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 /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 / 새가 공중을 뒤적이며 날고 있다"라고 말한다. '뒤적이다'라는 행위가 자주 생기는 이유는 결국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이라는 이재무 시인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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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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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학자의 시선으로 본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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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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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수십 년간 사람과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물학은 기존의 젠더 불평등에 정당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젠더와 생물학적 성이 관련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은 인간 사회에서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자동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해서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녀 간의 선천적인 차이점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이 문화가 아닌 생물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책 <차이에 관한 생각>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영장류 연구에서 찾는다. 성차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법이 존재해왔지만, 이 책은 기존의 연구나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영장류를 통해 성차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한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진화적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와 비교한다. 이를 통해 널리 받아들여지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믿음들과 권위와 지도력, 협력, 경쟁,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 성 행동에 관한 보편적인 가정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젠더 차이라는 주제는 어느 쪽으로건 감정을 자극한다. 이 분야에서는 누구나 강한 의견을 피력하는데, 동물을 연구하는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상황이다. 영장류학자는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절대로 행동을 옳고 그른 것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연구에는 불가피하게 해석이 포함되지만, 우리는 수컷의 행동을 '역겹다'고 표현하거나 어떤 종의 암컷을 '상스럽다'라고 부르는 일이 절대로 없다. 우리는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런 태도는 박물학자들 사이에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이다. 비록 수컷 사마귀는 교미를 하다가 문자 그대로 머리를 잃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컷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우리는 자신의 짝이 몇 주일 동안 밀폐된 둥지 않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진흙 덩어리를 물어오는 수컷 코뿔새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느다. 우리는 그저 자연이 왜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지 경이롭게 여길 뿐이다."

"영장류학자는 성을 경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영장류학회 회의에서 약 1000번의 강연을 들었지만, "있잖아요, 저는 숲에서 암컷과 수컷 오랑우탄을 추척하다가 그들의 행동이 서로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 대다수 영장류에서 암수의 행동 차이가 얼마나 극명한지를 감안하면, 그런 말을 한 강연자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영장류학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사랑한다. 우리에게 그것은 일용할 양식이다. 그것은 영장류의 사회 생활을 아주 흥미롭게 만든다. 수컷이 중시하는 의제가 따로 있고, 암컷이 중시하는 의제가 따로 있다. 우리의 과제는 양자 사이의 상호 작용을 추론해 내는 것이다. 수컷과 암컷은 가끔 이해가 상충하지만, 상대방이 없으면 진화의 경쟁에서 어느 쪽도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양쪽의 의제는 어느 지점에서 교차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젠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사회가 젠더 역할을 어떻게 만들고,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따르도록 어떻게 압력을 가하는지 쉽게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젠더 개념은 논란이 되지 않지만, 더 급진적인 젠더 개념은 우리 종의 생물학과 충돌한다고 말한다.

"젠더는 각 성이 걸치고 다니는 문화적 외투와 같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관련이 있는데, 그러한 기대는 사회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일부 정의는 이보다 더 급진적인데, 젠더의 본질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의들에는 생물학적 성과는 완전히 별개인 임의적 구성물로 본다. 말하자면, 외투가 혼자서 스스로 돌아다니는데, 그것을 어떻게 꾸미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저자는 사람들은 단지 젠더 정체성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문화적인 것으로 간주하건 않건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따라서 저자는 아이를 젠더 구분 없이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문화와 생물학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유일하게 타당해 보이는 입장은 '상호 작용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상호 작용주의는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 역동적인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고 상정한다. 유전자 자체는 포장도로에 떨어진 씨앗과 같다.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이와 비슷하게 환경도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 거기에서 작용해야 할 생명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자 사이의 상호 작용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대개의 경우 우리는 각자의 기여가 어느 정도인지 밝혀낼 수 없다."

저자는 트랜스젠더는 본질적이고 체질적인 것으로, 여기서 '체질적'인 것이란 단어는 '사회적 구성물'과 반대되는 뜻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본질과 관련이 있는 특성이다. 우리는 트랜스젠더의 원인이 유전자나 호르몬, 자궁 속의 경험, 출생 이후의 조기 경험 중 어떤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이 대개 삶의 이른 시기에 나타나며,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젠더 사회화는 언제나 생식기 해부학을 그 출발적으로 삼지만 트랜스젠더 아이는 자신에게 부과된 기대를 원망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의 사회화는 부모와 자식 간의 협력 과정 대신에 반란과 강압 사이의 성난 전쟁으로 변할 때가 많다. 저자는 자기 사회화는 본성과 양육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대신에 양자를 결합한다고 말한다. 자기 사회화는 내부에서 유래하지만, 외부 세계를 길잡이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아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발달해가게 한다.

"트랜드젠더 아이데게 자신이 느끼는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다. 반대로 부모와 형제, 교사, 또래는 아이가 다른 젠더의 모습과 버릇을 내비칠 때마다 불쾌해한다. 그들은 그런 아이를 처벌하고 조롱하고 훈계하고 괴롭히고 추방한다. 이렇게 강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트랜드젠더 아이는 자신이 느낀 정체성에 따라 완강하게 발달해가는데, 이것은 그들의 젠더를 만드는 것이 환경이 아님을 보여준다. 젠더를 만드는 것은 아이 자신이다."

저자는 강간이 적응이라는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항상 오리나 오랑우탄처럼 강압적 교미를 하는 소수의 동물을 불러내지만 진화의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강압적 교미를 하는 사례가 왜 이 동물들뿐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강간이 그토록 훌륭한 수정 기술이라면, 왜 그토록 희귀하며, 강압적 교미가 자연에 만연해야 마땅할 텐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저자는 가장 가까운 우리 영장류에게서는 강간 적응의 징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우리 조상이 진화한 조건에서 강간은 절대로 현명한 행동이 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거대한 사회에서 익명성은 가해자의 위험을 어즈 정도 줄여주지만, 여전히 강간이 일어난다고 해서 강간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강간이라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우리가 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모델을 제시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연 선택이 강간을 선호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이러한 행동을 하는 남성은 그를 성적 포식자로 변화시키는 특별한 유전적 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강간범은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려야 한다. 하지만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된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게다가 생식이 목적이라면, 남성은 생식 연령 범위에서 벗어나는 소녀나 여성을 강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연인과 아내를 강간해서도 안 되고, 소년과 남성을 강간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사람들마저 강간한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왜 대다수 남성은 강간을 하지 않을까?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하면 이 다수를 늘릴 수 있을지 생각하자. 교육이 중요한데, 특히 성차를 인정하는 교육이 중요하다.(...)

영장류와 사람의 행동에 관한 위의 설명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들은 폭력적 성향이 강한 쪽으로 자라기 쉽다는 사실이다. 아들은 또한 딸보다 훨씬 큰 신체적 힘을 갖게 된다. 모든 사회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이 이중적 잠재력을 이해하고, 젊은 남성을 교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년들은 더 이상 전사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회는 그들의 공격적 충동을 건설적으로 배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 충동은 대단한 성취를 낳을 수도 있고 나쁜 행동을 낳을 수도 있다. 소년들을 남용의 원천이 아니라 힘의 원천이 되도록 만들려면, 그들이 자신의 젠더에 맞는 감정적 기술과 태도를 습득하도록 해야 한다. 소년들은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소년들이 자제력과 명예심, 여성에 대한 존중심을 키우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작은 일로 취급할 게 아니라, 남성다움의 핵심으로 취급해야 한다."

저자는 다른 영장류에서는 양성이 모두 기민하게 권력을 행사하며, 암컷의 지도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수컷이 암컷들 사이의 위계에 관여하는 것처럼 암컷도 수컷들 사이의 위계에 관여한다. 게다가 성별에 관계없이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많은 알파는 서열 이외의 다른 것에도 많이 신경 쓴다.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분쟁을 해결하고, 고통받는 당사자를 위로하고, 화해를 돕고, 안정을 추구한다.

저자는 동성애 행동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말한다. 그런 접근법은 우리가 사람의 실제 행동뿐만 아니라 유전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의심스러운 이분법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더 나은 질문은 사람과 다른 동물이 생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적 활동을 자주 한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화론은 그런 성적 가능성을 당연히 허용한다. 저자는 신체와 감각이 다목적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면, 행동 역시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그 원래 기능은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쓰일지 늘 알려주는 것은 아닌데, 행동은 '동기의 자율성'을 즐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람과 다른 동물의 동성 섹스는 많은 유사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차이점은 성적 행동과 지향성을 나누고 라벨을 사용해 낙인을 찍는 우리의 경향이라고 이야기한다. 동성애에 대한 불관용은 이러한 낙인찍기에서 비롯된다. 다른 영장류들이 구성원을 다수에 순응하는지 살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동기의 자율성은 성 충동을 생식 능력이 없는 젠더 조합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사회생활의 다른 실체와 자유롭게 짝을 맺을 수도 있는데, 그 짝은 바로 동성 간 유대이다. 모든 영장류에서 젊은 수컷은 놀이 상대로 수컷을 찾고, 젊은 암컷은 암컷을 찾는다. 이렇게 성적으로 분리된 사회적 영역들이 생겨나 어른이 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 영역들은 큰 만족과 즐거움을 주며, 가끔은 섹슈얼리티로 흘러가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서 선명하게 구별되는 사회적 영역과 성적 영역의 경계는 인위적인 것이다. 그것은 문화적 발명품이며, 도덕적, 종교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쉽게 허물어진다.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동성애 행동은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마음은 신성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는 이원론은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며, 주요 관심은 사람의 마음보다는 남성의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지성이 생물학보다 높은 수준에 있다고 굳게 믿으려 한 사람들은 항상 남성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견해는 신체가 호르몬 주기를 겪지 않는다면 주장하기 더 쉽다고 이야기한다. 여성의 몸은 피를 흘리는데, 남성은 전통적으로 이를 혐오스럽고 '불순한' 것으로 묘사해왔다. 대대로 남성은 육체(약함)와 감정(비합리적), 여성(유치함), 동물(멍청함)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저자는 남성이 여성과 동물만큼 자신의 몸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대비는 완전한 착각이라고 강조한다. 마음과 뇌와 몸은 하나다. 비물질적인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종교와 철학은 전통적으로 우리를 자연과 연결시키는 대신에 자연과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로 정의했다.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짐승보다 높고 천사보다 가까운 곳에 놓길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매우 억울하게 여긴다. 신체는 우리의 비천한 기원을 너무 많이 상기시키고, 제어할 수 없는 성욕과 필요, 질병, 감정으로 날마다 우리를 귀찮게 한다."

저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과 남성, 아이들의 이러한 혼합은 적어도 삶을 흥미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또한 우리가 여기서 큰 즐거움을 얻는다고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항상 생물학적 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젠더 중립적 사회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놀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주장의 기본 개념은 다른 성이 없거나 적어도 그것에 관심을 덜 기울이면 더 나은 세상이 되리란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목표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성이나 젠저의 존재가 아니라, 그와 관련된 편견과 불평등,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일부 사람들을 배제하는 전통적 이분법의 한계에 있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사회는 모든 젠더 표현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성적 지향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모든 젠더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은 매우 심각하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오래된 성 구분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더 깊은 문제인 사회적 편견과 불공정을 해결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 작용이 반영돼 있다. 생물학은 방정식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의 행동 중에서 엄밀하게 사전 프로그래밍된 것은 거의 없다.

나는 생물학자이지만 인간 문화의 힘을 굳게 믿는다. 나는 젠더 관계가 나라마다 얼마나 다른지 직접 경험했다. 일정한 한계 내에서 젠더 관계는 교육과 사회적 압력, 관습, 본보기에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젠더의 몇몇 측면조차도, 한 젠더에게서 다른 젠더와 동일한 권리와 기회를 박탈할 핑계가 되지 않는다. 나는 젠저 사이에 정신적 우월성이나 선천적 지배성이 있다는 개념을 참을 수가 없으며, 그런 개념을 버리길 희망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상호 사랑과 존중, 사람은 평등하기 위해 똑같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의 이해해 달려 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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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 회사 앞 카페에서 철학자들을 만난다면?
필로소피 미디엄 지음, 박주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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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다양한 심리에 관한 고민들을 동서양 철학자들의 깊은 사유로 풀어내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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