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눈물 -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슌이 전하는 오키나와 '전후'제로년
메도루마 슌 지음, 안행순 옮김 / 논형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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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일본에 관해서 잘 안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바로 이웃한 나라이고,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서로 갈등했던 사이이며,

일본의 국민성이 우리와 매우 다르다는 것 등.

학교에서 국사를 배울 때 가장 비중있게 다루는 나라임에도

일본 자체의 역사에 관해서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

 

오키나와가 독립된 별개 국가였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나는 몰랐다.

그러니 오키나와에서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으며

오키나와인들과 본토인들의 미묘한 관계와

오키나와인들의 복잡한 심경을 어떻게 알았을까.

 

메도루마 슌이라는 소설가에 관해서 먼저 알게됐고

그의 소설이 오키나와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 다음에 알게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책으로 연결됐는데,

일본이 그 나라 안에서도 대단히 왜곡되고 이율배반적인 얼굴과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알기위해서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책이 좀 더 독자를 배려해서 만들어졌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 일본 역사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서

친절하고 세심한 주석 내지는 소개글이 필요했고,  

띄어쓰기가  읽기를 방해할 정도로 지나치게 무시됐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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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새로운 이해 우리시대의 신학총서 10
앙드레 라콕.폴 리꾀르 지음, 김창주 옮김 / 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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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가는 두 챕더를 먼저 읽었고 창세기2-3장의 분석을 읽다가 결국 포기했다. 다시 번역해야 할, 아까운 책! 역자가 전공자이니 원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고, 번역은 역자가 이해했는가와 별도로 전달이 절대 중요한 문제인데, 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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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귀향 -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도 가까운 길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1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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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가 1642년에 그린 탕자 그림은 26년이 흐른 1668년에 매우 다른 분위기와 구성으로 바뀐다. 헨리 나우웬의 렘브란트 해석은 말년의 이 그림을 바탕으로 한다.

 

나우웬은 성직자의 눈으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깊이 읽어내는데, 렘브란트가 오랜 세월을 성경의 이 이야기에 천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렘브란트는 탕자로서 살았고 그 값을 톡톡히 치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철저하게 삶의 바닥까지 내려갔던 것 같다. 그 고통스러운 삶의 끝자락에서 렘브란트는 비로소 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완전히 비워진 삶,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삶, 그 삶의 품이 바로 신의 품이 아닐까.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깨닫는 것만큼 신을 느낀다는 말도 가능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까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의 너그러움이었고, 가장 최근까지 내가 공감했던 것은 큰아들의 분노였다. 이 책을 읽으며 아버지의 너그러움이 이해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하는 말,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큰아들은 이제 결정할 일만 남았다. 계속 노여워할 것인지, 기쁨의 잔치에 함께 할 것인지.

아버지의 너그러움이 이해되고 큰아들의 분노가 근거없는 것임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 것은 내가 나이들었다는 사실의 반증인가. 어쨌든 나우웬의 글을 더 젊었을 때 읽었더라면 아마도 공감의 폭이 적었을 듯 싶다.

 

나우웬의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는 <탕자의 귀향>과 같은 시기에 쓰여진 책인데, 그 즈음 나우웬은 큰 심리적 충격을 겪었던 모양이다. 이 두 책은 같은 경험에서 나온 두 가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글 모두 나우웬의 자기 고백이다.

 

매우 현명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성직자의 고백은 민망하리만치 노골적이다. 이 고매한 성직자가 나처럼 온갖 잡생각들과 유치한 비교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데 대한 분노와 근거없는 망상 같은 감정들로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회의도 들었다.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편협하고 부족하다면 신을 믿기에 앞서 마음공부가 먼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가 마음공부이고 신을 닮으려는 노력 그 자체가 마음공부이니 이 의심은 곧 버렸다.  

 

무례하게 재산을 요구하고 매정하게 그것을 들고 나가 다 써버린 아들, 가족과 자신의 뿌리를 완전히 외면해서 철저하게 자신을 배신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늙고 눈 먼 아버지는 아들을 품에 안고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탕자는 민둥머리로 맨발로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데,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자궁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본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큰아들은 엄격하고 완고한 도덕주의자며 '왜 죄인들과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느냐'고 예수님께 따졌던 바리새인이고 '바른'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그 도덕의 뒷면은 분노임을... 큰아들은 기쁨을 느낄 수 없어서, 어쩌면 탕자보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더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삶은 매일이 잔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탕자 이야기의 요체라고 나는 이해했다. 이것은 나우웬이 긴 고통의 끝에서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기도 하지만 나우웬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다른 게 마땅하다. 그러나 나우웬의 글을 통해서 탕자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일까?

기쁨은 작은 반짝임,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아주 귀한 것.

마음 안에 기쁨이 반짝일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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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하는 말들 - 2006-2007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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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서 다 읽고 다시 읽는 중이다. 시가 아니어도 내가 사는 하루, 내가 하는 일, 내 행동과 마음가짐에 대입해보고픈 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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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피언 왕자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4
C. S.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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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세계를 그렸다고 하지만 이교도적인 그리스로마의 신화 세계가 버무려져 있는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다시 신자로 돌아갔다는 저자의 정신적 경험이 모순적 두 세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양립시킬 수 있는 배경이었나 싶다. 이 편은 상상력이 유난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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