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가 쓴 여행서답게 건축 이야기가 구체적이다.
유명한 관광 포인트만 산발적으로 나열하는 여행서를 읽다가
이 책을 펼치고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역사적으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바로 이거였어, 하는 기쁨이 마구 일어난다.
이 책의 묘미는 짧은 전반부에 있다.
저자는 책 첫 페이지에서 땅의 형태를 사람의 피부에 비유하면서
지형이 도시의 구조를 인식하고 정의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피부의 굴곡을 따라, 이곳에 마을이 저곳에 성벽이 형성되면서 차츰 도시가 형성된다.
이렇게 역사의 흔적이 지형에 새겨지며 도시에는 주름이 생긴다.
바르셀로나를 고대 로마의 주름과, 중세, 근대, 현대의 주름으로 설명한
저자의 비유가 정말 참신하다.
책의 4/5정도를 차지하는 후반부는 바르셀로나를 걸으면서 읽어내는
말하자면 답사 안내서쯤 되는데,
건축학도답게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간간히 섞어가면서 도시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게 구성돼 있다.
두툼한 여행서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짓눌려서
과연 내가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좀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의 내면)을 알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과연 여행서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약간 망설이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을 들고 저자가 제안하는 그 길로 나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여행서는 무엇보다 친절한 지도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 책에 실린 지도로는 절대, 절대, 길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저자는 건축학도로서의 지적인 욕구와
여행자에게 길을 안내하는 '도시를 잘 아는 친구'로서의 애정
둘 사이에서 전자 쪽에 더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