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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사의 단청 세계 - 불교건축에 펼친 화엄의 빛
노재학 지음 / 미술문화 / 2019년 2월
평점 :
책값이 미안해질 정도로 밀도 높은 책이다.
우선, 풍부하고 희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대단히 중요한 작업물이다. 지금까지 많은 절을 다녔지만 좀처럼 눈길이 닿지 않았던 천정과 벽, 지붕, 구석구석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작품들이 숨어있는 줄을 비로소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진부하더라도, 여기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글.
책은 보는 것 이전에 읽는 것이고, 문장은 단순한 단어의 집합이 아니어서, 독자는 글로 저자의 마음을 읽는다. 하나의 정신 세계,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무형의 세계를 말이다. 노재학씨는 서문에서, 절로 사진을 찍으러 갈 때면 언제나 정장 차림을 했다고 한다. 절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서문의 두 번째 줄에서 밝힌 이 말에 이미 나는 저자에게 매료당했다. 저자에게서 사진 작업은 '찍는' 행위가 아닌 '감탄'과 '경건'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나 큰 대상 앞에서-가령 우주라든지, 신이라든지-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느낌이 실은 모든 종교의 핵심일 거라 짐작한다. 저자의 경건한 발걸음을 뒤따라가며 특별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구경했고, 덕분에 많이 배웠다.
이 책을 꿰뚫는 대 명제는, 사찰 장식은 본질적으로 불국토를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법당을 장식한 연꽃이며 탱화, 절을 구성하는 건축적 구조와 구조물 하나하나가 모두 불교 교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법당 또는 절 자체가 하나의 화엄 세계여서, 천정에 그린 연꽃은 현실의 꽃이 아니라 불보살을 상징하는 '화엄의 꽃'이다. 이 명제 하나만 기억하고 읽는다면, 어려운 내용과 분량이 주는 저항감을 견디고 마지막 장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다.
처음 책을 받아서 휘리릭 넘겨볼 때는 사진의 질이 좀 아쉬웠다. 다 읽고 나서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사진의 질을 높이려면 아마도 책값이 훨씬 높아지겠다 싶다.
불교에 대해 기초적이나마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글 읽기가 즐거웠다. 그동안 현실의 절집에서 경험한 이런 저런 일들, 불교 정신의 왜곡과 부패함에 분노하고 등을 돌렸더랬다. 불교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가 싶기도 하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많이 풀렸다. 사실, 무엇을 믿는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믿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부처님 앞에서 경건하게 옷깃을 여미는 사람이 있기에 나같은 사람은 그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자리한 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돈이 안 될 게 분명해 보이는 이런 책들을 꾸준히 내고 있는 출판사, 미술문화를 최근에 알게 됐다. 기본을 잃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하고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