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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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정말 어렵게 어렵게 조금씩 나아간다, 고 느끼며 작품을 읽었다. 그만큼 어느 한 부분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고, 상반되는 철학들 사이에서 균형을 최대한 유지했다. 그러나 작품 안에 담긴 작가의 뜻은 분명하고 간단했다. 삶이 명분에 앞선다는 것. 작가는 이 작품에 앞서 다른 여러 글에서도 일관되게 이러한 가치관을 유지하는 듯이 보인다.

 

<남한산성>에서의 무게중심은 한 나라를 존폐 위기로 몰고간 사건에 있지 않고, 그 위태로움 앞에서 각기 다른 태로로 응전하는 여러 인물들에 있다. 인조, 최명길, 김상헌, 서날쇠, 이시백, 김류, 사공, 그리고 그밖의 인물들... 삶의 위기 앞에서 그들이 취하는 태도는 지위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서 달라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삶과 명분으로 나뉘었다. 

 

명분이란 실상 사대부에게나 중요한 것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대부의 진영에서 과감히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은 삶의 중요성을 대변한 인물처럼 보이는데, 이렇게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만으로는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김상헌이 사공과 사공의 딸 나루에게 갖는 애틋한 마음과 서날쇠에게 보내는 믿음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에서처럼 현실에서도 명분과 삶의 길은 어느 순간, 어느 길목에서 맞닿아 있고, 그 지점이 저마다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쓰라린 갈등과 회한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남한산성>을 읽으며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하루 하루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씁쓸하게 되돌아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한 나라의 왕씩이나 되는 사람이 "나는 살고자 한다"고 소박하게 실토하는 그 말에서 어쩌면 큰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고자 한다. 산다는 것. 양파의 껍질은 까도 까도 끝이 없다지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끊임없이 양파를 까는 행위와도 닮았다. 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기로 한 인조의 결정은 남한산성에서의 겨울에서 다음해 봄까지의 하루 하루를 어렵게 통과하며 명분을 버리고 또 버린 결과였다. 명분의 껍질을 벗겨내고 남은 것은 '무'였다. 결국 우리의 하루 하루는 그렇게 삶에서 끊임없이 '덜' 중요한 것을 버리고 가장 깊고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내려가는 행위가 아닐까. 그리고 결국은 '무'에 도달한다. 아무 것도 없는 자리로.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숭고한 무엇을 만난다. 인조와 최명길과 사공과 백성들은 그것을 '목숨'이라고 보았다. 김상헌은 그 자리에서도 마지막까지 '명분'을 지켰으나, 명분을 받치고 있는 그 자리가 삶의 자리임을 결코 '못' 보지 않았다.  

 

한 명분이 떠난 자리에 다른 명분이 들어서고, 이 명분이 떠나면 또 하나의 명분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은 대를 이어 지금까지 살아왔다. 결국 삶이란, 아무 것도 없는 자리 그 자체인 것이고, 그 자리에 우리는 서날쇠처럼 밭에 똥물을 뿌리며 다시 농사를 짓는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눈물겨운 내일의 밥을 입에 떠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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