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탈로 칼비노 전집 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거미들이 실제로 굴을 만들고 뚜껑 달린 집을 지을까? 거미가 집을 짓는 곳으로 가려면 아마도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오솔길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특별한 세계로 이어지는 특별한 오솔길이 말이다.  

 

나는 개정판이 나오기 전 2008년에 출판된 책으로 읽었는데, 책 뒤표지에 적힌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라는 책 소개가 개정판에는 삭제되었기를 바란다. 이 소설은 전혀 아름답지 않으며, 더구나 단순히 성장이야기라고 부를 수만도 없는 작품이다.

 

칼비노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자신의 문학관에 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서문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하지만 작가의 말 없이도 작품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법이고, 내가 그 이야기를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의문이다. 대강 정리를 해보자면:

 

- 칼비노에 따르면, 그 당시 이탈리아는 전쟁이 막 종료되고 그 경험들이 문학적으로 '폭발'하던 시기였으며, 문학은 '예술적 행위이기 이전에 생래적이고 실존적이고 총체적인 행위'였다. 문학은, 요즈음 직픔들이 흔히 그렇듯이, 단순히 관념이나 개인적인 내밀한 감정에 집중하는 용도가 아니었다. 신사실주의는 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필연적으로 등장했어야 하는 최적의 표현양식이 아니었나 싶다.

 

- 칼비노는 이탈리아의 지역적 특징을 작품 속에서 사실적으로 구현하고자 했고 특히 언어를 통해 이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번역문에서는 그것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이것은 번역의 태생적인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번역서를 읽는 우리 못지않게 원서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 작품이 쉽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은 아닐 거라고 짐작한다. 칼비노 왈,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어는 '집에서 이탈리아어로 말하지 않는' 사람의 이탈리아어다."라고 했으니. 그는 가능한 한 언어를 낯설게 사용함으로써 독자에게 또 그 자신에게 낯선 세계, 낯선 사고방식, 낯선 감정, 하여튼 어떤 낯선 것을 열어보이고 싶어했던 것 같다. 마치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처럼 말이다.

 

- 이념적인 것들, 즉 공산주의와 파시즘, 민족주의 같은 시대적 흐름은 세찼고 그 속에서 휩쓸리는 개개인들의 사정은 복잡했다. 시대적인 것과 사적인 것들의 혼란 속에서 칼비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지 않겠다는,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아이들의 세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외로운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 장치였다. 작가는 이 작품의 인물 킴처럼 '인간에게 큰 관심을 품고' 있었고 '모든 것의 설명은 철학적 범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움직이고 있는 세포덩어리들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에서 논리성과 확실성을 찾고 싶어' 했지만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몰려'들었던 것인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칼비노는 그 어떤 것도 해석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껄끄러운 문장들, 생소한 시대배경(작품 이해를 위해서 주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호감 가지 않는 주인공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었던 것은 작가가 말하려는 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었고, 작가가 쉬운 답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정답을 원한다.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이것은 사람의 본능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삶의 지표로 삼을만한 것을 책 속에서 찾고자 열심히 책을 판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혼란을 견디는 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에 쉽게 동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도 참고 견디며 우리의 정신을 찬 바람에 단련시키는 것, 그것 말이다. 시대는 언제나 혼란했다. 그리고 인생 자체는 언제나 혼란스럽다. 그 속에서 우리의 최선은 차분하게 세상을 바라보려고 애를 쓰는 것, 그 정도 아닐까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만 계속해서 소외감을 느끼고 그렇다고 어린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퇴행할 수도 없는, 주인공 핀의 모습에서 인간의 맨 얼굴을 발견한다. 그래서 마음 약한 독자로서, 작품 말미의 이 구절로 나름 위안을 삼는다. ... 핀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촌의 손, 빵처럼 커다란 그의 손을 잡고 걸었다.... '빵처럼 커다란 손'을 내밀어줄 사람은 있다. 우리 곁에.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 손의 임자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