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자락을 담근 조용한 호수, 사위가 어슴푸레한 이른 새벽이다. 두 사람이 작은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다. 푸른 산 그림자가 드리운 물은 하늘빛을 받아 살짝 보랏빛을 띠었다. 물 표면은 거울처럼 매끈하고 대기는 싸늘하다.  












유리 슐레비츠는 이 그림책에 글을 최소한만 남겨놓았다. 그림책의 첫 장을 열면 하늘도 짙고 푸르고 물도 그렇다. 장을 넘기면 새벽빛은 조금씩 밝아지고, 산 등성이와 호수가 점점 뚜렷해진다. 호수에는 산 그림자가 비치고, 호숫가 나무 아래 할아버지와 손자가 잠들어 있다. 하늘에는 달빛이 환하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데, 문득 실바람이 불어 호숫물을 살짝 흔들며 하루를 깨운다. 느릿하고 나른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박쥐 한 마리가 외로이 허공을 맴돌며 개구리가 한 마리 또 한 마리 물에 뛰어든다. 새가 지저귀고 어디선가 다른 새가 화답하듯 지저귄다. 이제 사람도 잠이 깰 시간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깨우고 모닥불을 피워서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두 사람은 담요를 개고 잠자리를 정리한 뒤에 호수에 배를 띄운다. 배는 작고 낡았다. 삐걱 삐걱 노를 젓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다. 배는 호수의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고 한순간 산과 호수는 초록이 된다. 


새벽에 대한 기억이 있다. 검푸른 새벽의 색깔, 코와 피부로 느껴지는 싸늘한 새벽의 기운, 잠이 덜 깬 몸의 찌뿌둥함, 갈라지는 목소리와 뻑뻑한 눈꺼풀, 무거운 발에 신발을 꿰어 신고 문을 나설 때 만나는 익숙한 길의 낯선 느낌, 온 세상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았는데 도로에는 차가 다니고 버스에도 부스스한 얼굴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같은 것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깨끗하고 경건한 새벽의 느낌을 기억한다.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묵직한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득 걱정과 투쟁과 계산의 아우성이 그치며 마치 영원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어둑하고 고요한 공간이 열리듯, 새벽도 그렇다. 나는 놀라고 기뻐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 안긴다. 아우성은 아직 잠들어있다. 새벽은 한없이 고요하고 깨끗해서 신성이 머무는 시간이다.


새벽은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언어를 초월한 모습으로 그이는 찾아온다. 사랑의 열병으로 들뜬 젊은 연인에게 새벽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로 찾아온다. 연인의 뜨거운 이마를 찬 손으로 짚어주려고 새벽은 푸르게 찾아온다.


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

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

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

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포루그 파로흐자드) 일부


  

푸른 새벽은 아프게 온다. 한 계절을 더 피 흘려도 좋겠다고 결심하는 이 새벽은 결연하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새벽에 들은 노래 3(한강) 일부



새벽은 끝내 찾아오는 시간이다. 죽어 가는 이도 살아가는 이도 낮과 밤의 긴 시간을 밀고 나가서 맞이하는 해방의 시간이다.


다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

새벽이 올 때까지(윤동주) 전문

      


새벽은 모두에게 다르게 온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푸르고 차고 고요하게. 빛으로 온다. 공기로 온다. 어머니가 아픈 아이의 뜨거운 이마를 차가운 손으로 덮어주듯, 번뇌로 끓는 우리의 이마를 찬 손으로 식혀주러 새벽은 온다. 아직 자는 이는 편안한 잠의 세계 속에 조금 더 머물라고 가만히 이불을 당겨준다. 잠 깬 이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귀를 덮어주며 푸르고 고요한 품으로 감싸안는다. 새벽은 그렇게 온다. 언제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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