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 한자 문화권에서의 '불교'의 탄생
후나야마 도루 지음, 이향철 옮김 / 푸른역사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번역론이라고 하면 언제나 영미권 언어를 생각하게 된다. 영어라든지 프랑스어라든지 독일어라든지. 불경은 (대개는 한문에서 번역된) 한글본을 읽었는데 그것이 '번역'되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인도어들로 쓰여진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기까지의 경로, 번역자들, 번역 작업의 형태, 번역의 결과물들을 다룬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과연 '번역이란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서 그 당시 한문 번역자들이 내놓은 흥미로운 해결책들과 한역이 중국어에 미친 영향까지, 그리고 불교가 전파되면서 중국 문화와 불교 자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논의한다. 


불교라는 형이상학적인 세계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는 언어와 번역자만 관여하지 않는다. 번역은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것이고, 세계관과 세계관이 만나는 일이다. 한 세계관에 없는 개념이 다른 세계관에는 있고, 한 세계관의 사고와 정서의 문법이 다른 세계관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번역은 그것들의 접접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세계관의 모습을 바꾸어놓게 된다. 불경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중국인들의 사고가 변화했고, 반대로 불교 또한 그 변화 속에서 중국화했다. 


이 책은 불경 번역과 관련된 다채롭고 흥미로운 현상들을 자료를 바탕으로 논증하고 있다.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는 '엄청난 학문적 역량'이 바탕이 된 글이며 정말 잘 쓰인 글이다. 


한편으로, 역자의 말마따나 한국인으로서는 마음이 좀 '복잡'해진다. 저자가 이 책 전편을 통해 출전으로 제시하는 일본의 불경 '다이쇼장'에 수록된 많은 경전들이 실은 '고려팔만대장경'을 저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과 함께 <번역어 성립 사정>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번역은 정신 문화의 문제이며, 인간이 저마다 다르듯 문화도 저마다 달라서 두 문화가 서로 만날 때는 필경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데, 번역은 말하자면 자판을 두드리는 인간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변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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