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책 정리하기 4탄: 창가의 토토

 

"아이들이 다 크고 이제는 영영 읽지 않을 어린이 청소년 책들을 서가에서 정리하자니 책들에게 미안해서 내가 읽을 요량으로 몇 권을 추렸다. 아이들 책들 중에 일부는 지나치게 단순한 면이 있기도 해서 열심히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읽지 않고 정리해버렸으면 아까웠을 뻔했다."

 

공교롭다고 해야 하나?  토토는 바로 전에 읽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와 영혼의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아이다. 기질적으로 너무나도 흡사한 두 아이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환경에 놓여있다. 노래하는 작은 새와 같았던 제제가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별처럼 빛났다면, 봄날의 나비 같은 토토는 너그럽고 호의적인 어른들 속에서 싱싱하게 자란다.

 

사람들은 인간이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의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는 얘기일 텐데, 기질은 옳고 그름에서 벗어난 생물학적인 자질임에도 사람들은 엉뚱하게 이것을 도덕적으로 정의하는 것 같다. 넌 나쁜 아이야, 넌 착한 아이야,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한번 나쁜 아이가 되면 계속 나쁜 아이로만 살 수 밖에 없다. 문화권, 시대, 부모에 따라서 아이는 나쁘거나 착하다고 판단되고, 이 판단은 '기질은 안 변해'라는 말로 영구히 굳어져 버린다.  

이렇게 해서 제제는 작은 악마가 되었고 토토는 '사실은 착한'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맞는 말처럼도 들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제가 다른 제제가 될 수 없고 토토 역시 다른 토토가 될 수 없으니까. 노래하는 작은 새가 불행히도 폭풍우를 만난다고 해도 뱀이 될 리 없다.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순수하면서 너무나 연약하기에.     

   

하여간 <창가의 토토>를 읽으며 여러가지로 마음이 무거웠다. 20세기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생각났고, 그 속에서 아이를 키운 지난날들이 떠올랐고, 한없이 눈이 어두웠던 부모로서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모와 내 아이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불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거기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도 못했고, 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똑같은 그 열차가 선로를 달리고 있다.

 

그래서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아이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p.s. 번역에 마음이 갔다. 2000년을 코 앞에 둔 '1999년 저물어가는 한 해'에 옮긴이의 말을 썼다고 나와 있으니 번역한 지가 20년 전인데 그래서인지 옛스런 느낌이 살짝 났지만 그것조차도 정감이 느껴지는 참 자연스럽게 잘 옮겨진 번역문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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