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책 정리하기 2탄: 켄즈케 왕국

 

"아이들이 다 크고 이제는 영영 읽지 않을 어린이 청소년 책들을 서가에서 정리하자니 책들에게 미안해서 내가 읽을 요량으로 몇 권을 추렸다. 아이들 책들 중에 일부는 지나치게 단순한 면이 있기도 해서 열심히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읽지 않고 무조건 정리해버렸으면 아까웠을 뻔했다." 

 

마이클 모퍼고. 이 작가를 어째서 몰랐을까, 책을 읽으며 자책했다. (책꽂이에서 이 책을 볼 때마다 참 재미없겠다고 생각했던 건, 표지 탓이 99퍼센트다. 너무 유명해서 식상할대로 식상한 저 파도 그림이 책의 내용까지 선입견을 갖게 만든 것 같다.) 열두 살 소년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모험이야기를 나는 <파이이야기>와 <모비딕>의 어린이 버전으로 부르고 싶다. 

 

소년은 폭풍우 치는 밤에 바다에 빠지고, 죽음의 경계까지 다가간 소년에게 새로운 삶의 차원이 열린다. 이야기는 분명 허구지만 매우 사실적이고, 사실적 세계와 환상의 세계의 경계선에 미묘하게 걸쳐진 이 가상의 세계 속에서 작가는 소년과 노인의 우정, 사십 년의 시간적 도약, 두 가지 삶 앞에서의 고통스러운 선택을 이야기한다.

 

이 모험이야기의 저변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흐른다. 그 사랑은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 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데서 시작되어 작은 물줄기를 만들며 천천히 흘러 도달하게 되는 깊은 공감이 아닐까 한다.

 

나한테 네 이야기를 해줘. 네 이야기... 내가 들을게... 어쩌면 내 이야기도 해줄지 몰라...

 

우리는 대부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백분의 일쯤을 겨우 알았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가능한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그렇게 느꼈다.

 

소설에서 노인은 남고 소년은 떠났지만, 나는 이 책을 내 서가에서 떠나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