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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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중 4편을 읽었다: 호르몬을 춰줘요, 적어도 두 번, 물질계, 스프링클러.

 

앞의 두 작품은 소설집의 첫번째와 두번째에 배치돼 있는데, 둘 다 난해했다. 인터섹스(남녀 두 성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사람)와 성인 여자의 청소년 성추행이라는 민감한 문제들을 대담하게 다뤄서 놀라워하며 읽었다.

 

주제도 생소하지만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낯설었고 문체도 고차방정식처럼 어려웠다. 한편으로 이 어려움은 작가의 유보적 태도에서도 기인하는데, 문제를 쉽게 설명하려 들지 않겠다는 이 자세는 글 안에서도 보였지만 작가 후기에서 명시된다.     

 

인터섹스를 소재로 다룬 <호르몬을 춰줘요>의 초등학교 6학년 구도림은 성에 대한 이분법에 근간을 둔 우리의 성 관념을 전복하는 캐릭터며, 한마디로 사랑스럽다. 예전 어떤 남성 작가가 그랬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절반은 남성이라고. 세상은 그렇게 절반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참 복잡한 세상이다.

 

성인 여성이 청소년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이야기를 풀어낸 <적어도 두 번>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난해한 문체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변명을 할 때 일부러 복잡하고 애매한 어법을 구사하는데, 그렇게 하면 문제를 교묘히 흐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화자의 사유적이고 완곡하며 심리적으로 무고한 어법은 그런 계산 아래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파고며 줄파추 같은 이질적인 이름 붙이기는 성에 대한 우리의 방어 기제를 기습적으로 무너뜨려서 당장에 아무 판단도 할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작품을 읽고 나서 한동안 정리가 되지 않았고 어리둥절 했다.

무너진 폐허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말하자면, 기존의 성 관념을 처음부터 곰곰히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이, 권위의 있고 없음이 가장 기본적인 옳고 그름과 어떻게 연관지어지고 서로를 어떻게 물들이는지를.

뒤늦게 작가가 작품에 집어넣은 힌트를 보았다: 지위-자위. 이 두 단어를 열쇠 삼아서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뜻일 것이다. 고도의 언어유희로 흐려지는 장면들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진짜 봐야 할 것만을 보게 만드는지 모른다. 

 

<물질계>와 <스프링클러>는 위의 두 작품에 비하면 평범하고 쉬웠다. 마침내 알 듯한 익숙한 화법과 예상되는 흐름을 만나니 쉽게 읽혀서 일단 좋았다. 단편집의 전체적 구성으로 보자면 강약을 조절해주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아쉬웠다. 작가가 너무 쉽게 타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과 첫 두 작품처럼 지독해도 좋았을 텐데 하는 바람 때문에.

 

마지막으로, 문장.

틀림없이 오랜 시간 갈고 닦았을 게 틀림없다. 적어도 문장 때문에 글을 망칠 일은 절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는 난해한 문제를 '어떻게 한번 설명해보려고' 시도했고 '알 수 없음을 알 수 없음으로 남겨'두려고 했다고 후기에 적었다. 어려운 문제는 '알 수' 없어서 끝까지 풀기도 어렵고 어렵사리 낸 답도 의심스럽다. 작가가 문제풀이의 중간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느낌을 받았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관찰하고 진술하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선택일지 모르고, 내가 느끼기에 작가는 적어도 이 선택지는 버린 것 같다. 

작가가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추지 말고 대담하게 더 밀고 나가 어딘가에 닿았으면 좋겠다. 무모하게라도 어떤 해법, 어떤 의견까지 이르기를 독자로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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