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세트 - 전10권 - 개정판 홍명희의 임꺽정 1
홍명희 지음, 박재동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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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에 있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부럽지 않다. 살아서 펄떡대는 것 같은 인물묘사, 풍부한 민속학적 자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다채로운 우리말 표현들.

 

단테가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써서 (그때까지 빈약한 언어에 불과했던) 이탈리아어를 풍성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키웠듯, 한국어가 <임꺽정>을 통해서 화려하게 비상하지 않았나 싶다. 홍명희는 진정한 언어의 고수다!

 

작품 속에서 생생한 역사적 정보와 옛날 풍속과 민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역사시간에 차라리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다. 많이 배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의와 인권에 대한 저자의 사고가 도적 임꺽정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이랄까. 

사회적 부당함과 개인적 불만이 애매하게 뒤섞이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되기 어려운데, 거기에 대한 성찰은 없다.   

 

임꺽정을 읽으며 신이 났던 것은 사회의 불의를 시원하게 한 방에 해결해주는 영웅을 기대했기 때문인데 그 영웅이 실은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멈칫, 하게 된다. 이렇게 시시한 영웅이라니.

 

작품의 주인공이 반드시 정의롭고 옳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주인공의 내면에서 선악의 갈등이 없다는 것,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대리만족만 시켜주는 주인공 내지는 작품)이 실망스러웠다.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의 주인공들도 (현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정의로운 영웅들이 아니어서 몰입에 제동이 걸리기는 했었다. 인권과 정의의 대한 철학적 사유는 긴 역사를 통해 느리게 발전해서 지금에 왔다.

하지만 홍명희는 호메로스에 비하면 완전 현대인이 아닌가. <임꺽정>은 시대를 잘못 만나 도적이 된 잠재적 영웅의 이야기에서 멈추고, 위대한 이야기까지는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문학의 최고봉이 될 수는 없는, 유명인들의 찬사가 조금은 과분하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드는,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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