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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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드보통은 철학자라기보다 철학적인 인문학자 같다. 그의 글은 지적인 통찰, 문학적 감수성, 논리적 사고가 이상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 정신도 일종의 동시화 현상에 의해서 그와 같은 균형에 근접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대한 해법을 정리해놓은 글이다.

불안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 알랭 드 보통이 염두에 두고 있는 불안의 원인이 되는 두 축은 사랑-시대적 맥락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서, 그는 돈과 명성과 영향력이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 '사랑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요소인 시대적인 맥락으로 말하자면, 현대는 능력과 생물학이 우리의 가치판단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조종하는 것이 모두가 유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언뜻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 같지만 실은 참 무시무시한 생각이기도 하다. 능력과 생물학이 X과 Y축이 돼서 그려내는 인간세상에서 인간다움은 그 어떤 변수로도 작용할 수 없다. 중용-이 필요하다. 능력과 생물학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단지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우리 안에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 있다고 여지를 남겨두는 것,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절대 단정하지 말 것.  

 

두 번째 파트인 <해법>은 약간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으로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주거나 통제할 수 있게 해주기는 하겠으나, 읽으면서 좀 막연하고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 마디로, <원인>파트에서만큼 분석이 날카롭지 않았다. 

그러나 예술의 대목에서 제인 오스틴과 존 러스킨을 읽는 것만으로 내 개인적 실망감은 상쇄됐다. 이 파트에서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을 고르라면: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불안을 문화적 맥락으로 잘 분석한 글 덕분에 나와 내가 속한 사회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실망스러운 대목과 저자의 생각이 너무 단순화되고 단정적으로 보이는 대목이 가끔 있었지만, 불안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이렇게 긴 호흡으로 짜임새있게 써낸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명민한(!) 사람의 통찰력(!) 있는 생각을 유려한 글(!)을 통해 읽는 3중의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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