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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바다 냄새, 수런거리는 바람, 겨울의 날카롭고 차가운공기, 그 전부를 느끼고 싶어요. 아까우니까."
(14p)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는 여자.
28살의 유가리 타마키는 글리오블라스토마, 고아종이라는 발음하기도 쉽지 않고 들어보지도 못한 최악의 뇌종양이라는 병명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있다.
파도 소리가 좋다는 수련의 우스이 소마의 말에 그녀는 파도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카운트다운하는 것같아 싫다고 말하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르키며
"이 안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요. 언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반드시 폭발하는 시한폭탄이."
라고 말한다.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남은 시간이 파도에 침식되는 기분이 들어요. 뇌가 속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기분이." (16p)
누군가에게는 파도 소리가 추억을 떠올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라면 또 누군가에게는 째각째각 생명의 시간이 줄어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카운트다운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니...이 문구는 시작부터 뭉클함과 가슴 아픈 스토리를 예고하는 듯했다.
죽음이 가까워진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능한 제거하는 치료인 완화 치료를 받고 있는 유카리.
수술도, 방사선 치료도 할 수 없는 불치병의 상태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어떤 심정일까?
'죽음'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공포감과 삶에 대한 허무함뿐 아니라 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져서 오늘 잠들면 내일 눈을 뜰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면....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 그녀에게 점점 마음이 가는 우스이에게 그녀를 살려야할 지 말아야할 지 고민을 하게 되는 위급한 상황이 닥쳤다.
갑자기 쓰러진 유카리는 연명치료거부 환자인 것이다.
하지만 우스이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지만 할 수 없다는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 그녀의 의사와 병원의 방침을 어기고 그녀의 살리게 된다.
죽음의 순간에서 깨어난 유카라는 우스이에게
"죽는 게..., 사라지는 게..., 너무 무서워."
라고 말하는데,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에 안고 사는 그녀의 이 말은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죽음을 앞두고 초연해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체념한 뒤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담담하게 시간을 보낼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간다.
시한폭탄을 안고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고된 상태로 살아가다 맞이 하는 죽음과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살아가다 맞이 하는 죽음은 삶을 살아감에 무게가 다를 것이다.
기한이 정해진 상태로 고칠 수 없는 병을 안고 호화롭지만 자유가 없는 공간에 살아가는 삶이란 그녀가 말한 것처럼 '다이아몬드 새장'이 아닐까?
가족을 버린 아버지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하는 의사인 우스이의 마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그런 그를 옥죄고 있는 쇠사슬을 풀어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하는 유카라는 우스이를 도와주려 하나 쉽게 되지 않고 오해만 사게 되는데...
'다이아몬드 새장'과 환자의 희망을 들을 들어주는 병원이 아닌 돈을 내는 사람(가족)의 희망을 들어주는 병원, 연명 치료 거부, 죽음 등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담고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무겁게만 슬프게만 풀어내지 않고 있었다.
"전부 당신 덕분이야.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살아 있어. 지금 나는 여기에 있고 아주 행복해. 그것은 당신이 나를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이야." (173p)
쇠사슬을 풀고 행복이라는 감정에 다가서게 되는 두 사람이지만 결국 실습 기간의 종료와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나아가려는 그의 앞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여긴 유카리의 생각때문에 결국 헤어지게 된다.
소설은 총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의 만남과 각자가 안고 있는 고통에서의 벗어남 그리고 이별과 죽음 등.
하지만 미스터리함을 담은 이 소설의 제목과 작가의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의 흥미로움로 지루할 틈없이 책장이 넘어갔다.
2장에서 전개되는 반전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관전포인트이기도 했다.
뻔한 스토리와 결말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속에 어떠한 메세지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성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만남과 이별, 죽음이 미스터리함과 결합하는 순간 반전의 소설로 거듭나게 됨을 보여준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몰입도와 가독성이 좋은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