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자 - 승자가 지워버린 이름
김문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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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 중 한 사람인 의자왕.
그의 이름 뒤에 늘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삼천 궁녀'와 '낙화암'
나라보다는 유희를 즐기고 전시 상황에서도 병약하고 결단이 없이 뒷걸음질친 왕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알려져있는 불운의 왕인 부여의자.

시호를 받지 못한 백제의 최후의 왕.
그는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닌 패망한 나라를 보며 개탄하고 끝까지 백성만큼은 불쌍히 여기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백제의 운명이 다했단 말인가? 백성들이 피를 흘리는 것이 더 이상 부질없는 것입니까? 정녕 이 방법 밖에 없다면 부처님! 저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모든 죄는 제가 안고 가겠나이다. 불구덩이에 떨어져 천만 겁이라도 죄를 받겠나이다. 백성들을 살펴 주십시오 (24p)

비록 소설 속의 한 구절이지만 나당연합군에 의해 성이 함락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여의자가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백성들만큼은 끝까지 보호하고 싶었던 간절함을 잘 담아내고 있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의 도읍인 사비성이 함락당할 위기에 놓인 풍전등화와 같은 국운 앞에 사비성 내에서는 왕위를 차지하려는 왕자와 신하의 대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부여의자>는 백제를 둘러싼 주변국의 정세와 전시 상황 속에서의 각국의 심리전과 배신과 복수 등이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긴장감도 놓치지 않은 스토리 구성을 보이고 있다.

승자에 의해 지워버린 이름 '부여의자'

역사의 기록이 그러하듯 패자는 말이 없다. 아니 패자의 기록은 사라지거나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부여의자의 경우도 왕권 강화의 노력과 담대하고 강건한 모습을 담은 기록보다는 유희에 빠져서 정국은 돌보지 않는 무능한 왕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과연 어떤 모습이 진실인걸까?

<부여의자>는 의자왕에게 덧쓰워진 '방탕한 군주'라는 오명을 벗기고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우리의 사료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사서를 뒤지고 역사의 공백은 탁월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백제 최후의 광경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소설은 의자왕의 실체를 바로 알리고자 함을 목적으로 쓰여졌음을 밝히면서도 의자왕뿐 아니라 전시 상황에서의 각국의 장수들의 모습과 전쟁태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역사의 뒷 안길에서 조연이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를 보았을 지 모를 상황의 아찔함과 왕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음에 두려움이 없는 장수들의 기개함을 보는 것은 소설의 읽는 또 하나의 포인트이기도 했다.

소설이기에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허구이지만 사실같이 느껴지고 사실이라 여겼는데 허구이기도 한 내용들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역사 소설의 경우는 사실에 바탕하면서도 극적 요소를 제공하기 위한 각색이 있기에 쓰는 이의 의도를 잘 파악하며 맥을 잡고 읽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승자의 기록에 실리지 않은 백제 패망의 미스터리를 밝힌 <부여의자>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백제를 다시금 재조명하여 사람들에게 좀 더 알려지기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른 궁녀들을 위해 사비성에 남은 내관과 궁인들이 군량 창고에 불을 지른 후 태자암에 올라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본 부여의자.
 
의자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 백성들이여! 태자암이 낙화암이 되었구나. 저 낙화가 설움에 겨워 다시 꽃으로 피어날 땅이여. 백마강 굽이칠 때마다 피맺힌 원혼들이 울면서 흐를 땅이여. 어찌하여 나는 이 땅의 백성들을 지키지 못하고 쫓겨라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288p)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백성의 모습과 울분에 찬 부여의자의 목놓은 외침은 먹먹함과 여운으로 한 동안 책장을 덮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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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18-08-09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의자‘는 시호가 아니라 이름이었군요...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요ㅎㅎ

한스푼의시간 2018-08-09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보며 시호를 받지 못함을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