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길 원한 빙허각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부모님이 준 이름은 이선정, 그녀 스스로가 지은 이름은 빙허각.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이름이란다.

그녀 스스로가 지은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이선정 아닌 빙허각은 조선의 여느 사대부의 여식과 달리 학문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식견도 남달랐다.
고집이 세고 학식도 뛰어나며, 책읽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좋지만은 않았기에 정혼시기를 앞둔 그녀의 집안으로 보자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였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남존여비 사상의 영향으로 사대부 여성의 경우는 조신하게 생활하면서 결혼전에는 부모님밑에서 예절 교육을 받은 후 결혼 후에는 출가외인이 되어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같은 생활을 하면서 보아도 보지 못한 척, 들어도 듣지 못한 척 시부모님과 배우자를 보필하는 것이 큰 역할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시기였다.

이선정은 남다른 면모를 보이며, 조선의 제도와 사회적인 면 등에 의문점을 가지기도 했다.
시집 간 작은 성이 자진하는 일로 선정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지만 청에서 건너온 책 속의 진귀한 이야기들을 눈으로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연경에 가고픈 꿈을 꾸고 결국 세손의 허락하에 연경에 가게 되는 모습과 천문학과 농업 등 실학에 관심을 보이는 등 남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도 시련이 찾아 왔으니, 자식을 연이어 잃는 슬픔을 겪게 된다.
어미에게 있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은 어떠한 고통보다도 잔인하고 힘든 법으로 그 부분을 보는 내 마음이 짠하였다.

수동적인 삶을 살기를 선택한 여인이 아닌 빙허각의 이름을 스스로 지음에서도 볼 수 있 듯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여 책읽기를 좋아하고 생활에 편리함을 줄 수 있는 면을 먼저 생각하는 등의 유일한 여성 실학자의 면모를 삶의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은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실학이라는 부분을 관심있게 생각해보게 할 뿐 아니라 한 여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성취 등의 인생 전반의 흐름과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였다.

진취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 빙허각
이선정이라는 부모가 주신 이름보다 빙허각이라는 자신이 지은 이름을 더욱 알리고 떠난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멋진 여성이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특별하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행복한 순간들 -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 어디에 가지 않아도, 무엇을 사지 않아도, 함께하지 않아도
이민주 지음 / 비사이드 / 2018년 12월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모두가 떠나고 난 후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잠깐동안의 여유일지라도 내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커피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는 그 중 카페라떼를 좋아한다.
(사실 믹스커피를 따라오지는 못함^^)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함께이기에 많은 종류의 커피 중 즐겨마시는 것 중 하나이다.

커피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도 커피처럼 때로는 부드럽고 달달했다가 때로는 쓰기도 하는 등의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라테에 바닐라 시럽 추가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어요

모두가 라테에 바닐라 시럽을 추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행복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디에 가지 않고, 무엇을 사지 않고도 그저 좋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그 속에 빠져 있는 것이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저마다 다르기에 사랑이나 행복에 관한 에세이들이 때로는 읽는 이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저는 꽤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라서 이런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프롤로그 중)

너무도 평범하고 일탈이라고 해봐야 할 일을 미룬 채 드라마나 본 정도라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은 나의 지난 과거의 모습이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범생'으로 살면서 친구들과 늦게까지 논다거나 여행을 간 본 적도 없이 생활을 하였던 그녀와 나.
다른 이들은 이런 우리를 보면서 재미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해보지 못한 것이 많기에 지금은 오히려 그 해보지 못한 것을 하나 하나 해보는 재미를 느끼며 지내고 있다.
물론 결혼과 육아로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재미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혼자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느끼고 깨닫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있다.

책 속에서 상상력을 얻고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귀찮다고 모진 말로 엄마에게 말하고는 매일 후회하는 그녀의 일상 속 행복 발견이 그림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는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를 읽는 동안 나의 일상도 돌아보게 되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도 없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어제와 조금은 다른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특별하지 않아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이지만 그때는 조금은 다른 기분으로 반응을 하며 보냈을지 모른다.

그래도 오늘이 좋았다.
지나간 어제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아닌 현재 내가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중요하고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부터 행복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파산된 은행 속 대여금고를 둘러싼 진실

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업무를 맡는 두 여성.
이들 사이의 공통분모라고 하면 같은 공간의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와 대여금고.
소설은 시작부터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언가를 확보해야하는 여성은 숨조차 쉬는 것이 어려울만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모습은 읽는 나조차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1978년과 1998년이라는 시간을 번걸아가며 상황과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드릴로 뚫려진 대여금고
금고라고 하면 분명 열쇠가 있을터인데 이렇게 드릴로 뚫어서 금고를 망가트려서 그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꺼내야하는 것일까?
이유는 어딘가에 열쇠는 있을테지만 그곳이 어딘지 아무도 모를 뿐 아니라 물건을 넣어둔 사람이 죽었거나, 은행이 파산하면서 모든 직원들이 해고되는 바람에 마스터키마저 잃어버렸다니 무력을 사용해서 금고를 여는 방법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대여금고를 둘러싼 오랜 세월 감춰진 진실.
수 많은 금고 중 드릴로 뚫린 금고는 10개, 나머지 금고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
파산된 은행 안에 보관된 대여금고속 물건들은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채 바깥으로 내놓일 상황에 처하는데...

1978년 파산직전의 은행의 비서로 고용된 베아트리스, 1998년 은행 설계도로 담당하게된 건축공학기술자 아이리스.
이 두 여성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번걸아가면서 진행되기에 한 소설 속 두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547이라는 숫자와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라는 작은 글자들이 적힌 놋쇠 열쇠를 우연하게 손에 쥐게 되는 아이리스, 이것이 그녀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20년전의 미스터리함이 그녀로 인해 풀릴 것인지 아님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소설에 몰입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베아트리스는 대여금고와 관련된 특별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맥스에게 듣게 되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담겨 있음이 이후에 밝혀지지 않을까는 기대감이 들게 했다.

'데드키'란 뭘까?
연결점이 없이 다른 두 시기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될 것같은 소설은 아이리스가 먼지투성이의 건물 안의 접수 직원의 책상에서 파일과 1978년 12월28일에 맞춰져있는 도장을 발견하는 부분에서 감춰진 진실파헤치기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잠시도 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돈 많은 놈들 곁에는 가지 말아요. 절대 이길 수 없으니까요." (396p)

당장 빠져나와야 해요.(473p)

서로 다른 시간 속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위험을 경고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이들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베이트리스와 아이리스, 두 여성이 하려는 일이 분명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임을 느끼게 해 준다.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면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꺼려하는 이들에 의한 협박이나 위협이 있기 마련이다.
미스터리한 요소가 가득한 <데드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심리적인 부분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돌책임에도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빨랐으며, 지루함보다는 중간 중간 긴장감을 선사하기에 끝을 알기 전까지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심리스릴러라 말하고 싶다.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만화 봤니? - [본격 한중일 세계사4]

본격 한중일 세계사 4 - 태평천국 Downfall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본격 한중일 세계사 그 네 번째 이야기는 '태평천국'을 다루고 있다.
사실 앞서 출간된 3권의 책들을 읽지 못한 상태였기에 앞의 내용을 모를 경우 이해가 어려운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보는 순간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과 앞의 내용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역사적으로 가까운 듯 먼 나라이기도 한 세 나라가 얽힌 세계사.
아시아 지역으로는 양대 산맥이 아닌 세 국가의 이해 관계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고대에서부터 얽히고 설킨 상태로 이해관계로 인한 침략 전쟁이 수도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관계는 현대에 와서도 그 명맥이 이어져서는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으로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며 눈치 작전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평천국운동은 중국사에 있어서도 격동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세계사적으로 볼 때도 서구 열강의 이해 관계에 의한 다양한 전쟁과 조약의 체결 등으로 중국 뿐 아니라 주변국에도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이 책에서 잘 그려내고 있었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하더라도 복잡한 이해 관계로 인한 많은 종류의 전쟁과 조약의 이름만 들어도 그냥 책을 덮고 싶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굽시니스트님의 글과 그림 덕분에 어쩌면 문자 그대로만 보자면 이해하기도 머릿 속으로 그려보기도 어려웠던 부분을 세세하게 표현해주면서 사건의 흐름 뿐 아니라 당시의 강대국과 주변국들의 시대상과 이해 관계를 볼 수 있어 역사를 단순히 암기가 아닌 이해를 통해 본다면 보다 흥미롭게 느낄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역사는 알아야 하는 것임에도 오래도록 습관처럼 여겨왔던 암기식 학습으로 인해 따분하며 어려운 과목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따로 국밥처럼 생각해왔다.
이 책을 통해 큰 사건을 중심으로 한 여러 나라의 상황과 그 결과 변화되어지는 사회상들을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이해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서구 열강이라는 거대한 침략자들로 인한 시대의 태풍앞에 이대로 속수무책 무너질 것인지....
점점 가열되어가는 열강의 침탈에 어떻게 맞서 싸워나갈지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

어떤 미련이그들을 '사자'로 만들었나?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ㅣ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이 서류에 날인하는 순간, 사쿠라는 사신 아르바이트로 채용돼. 기간은 반년. 근무지는 이 동네 부근. 내가 선배 사수로서 지도를 맡을 거니까 잘 부탁해! 아, 덧붙여 급료는 일당을 먼저 지급할 거야. 질문 있어?"
(17p)

이 얼마나 황당한 고용인가?
심사숙고해서 지원한 아르바이트도 아니요. 뭔가에 홀린 듯이 속사포처럼 이루어진 이름도 이상한 '사신 아르바이트'
시작부터 재미있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을 만났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이색적인 일자리
근무시간은 있으나 마나, 시간 외 수당은 없음, 경우에 따라 조기 출근과 잔업은 있음, 근무 스케줄 조정은 불가, 복리 후생이나 휴가는 꿈도 못꾸는 상황...
표면적으로 보자면 근로기준법 위반도 아주 심한 위반으로 적용조차 불가능한 노동 착취라고 할 수 있다.

이 조건들을 듣고 황당해하는 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한 하나모리. 그런 그녀가 말한다.
" 아, 조건은 최악이지만 근무 기간을 채우면 어떤 소원이든 딱 하나 이루어지는 '희망'을 신청할 수 있어. 그것만은 유념해둬."
(20p)

도대체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게 뭘하는 아르바이트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만 나열되고 있는 상황.
조건을 듣는 이만큼이나 소설을 읽는 독자의 한 사람인 나 역시도 황당하면서도 궁금했다.

첫 업무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인 아사쓰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업무 파악도 안된 상태에서 시작한 첫 업무는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명칭과 결부되지 않는 일이라 어안이 벙벙한 그.
아픈 동생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는 아사쓰키의 고민을 잘 해결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건 온기라 말하는 아사쓰키, 그녀와 단 둘이 이야기하는 오늘 밤을 소중히 간직하라 말하는 하나모리.
사쿠라에게는 모든 상황이 정리가 안되고 혼란스럽기만 하는데....

계속해서 머릿 속을 맴도는 단어는 '사신 아르바이트'
사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느낌이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사자'는 죽음이 찾아오는 걸 피할 수 없어. 그리고 추가시간에 뭘 어떻게 하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 (65p)

미련을 품은 죽은 사람들 중에서 드물게 탄생하는 '사자' , 이 세상에 남은 가엾은 '사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업무를 하는 '사신'
사자와 사신의 관계는 이렇게 형성되었으며, 그런 사자와 사신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인 것이다.

미련이 남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머물러있는 사자을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사자들의 다양한 사연들, 사자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업무를 완수하게 되면 들어준다는 '희망' 소원.
사쿠라의 아사쓰키와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한 고군분투 사신 아르바이트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만이 아닌 잔잔한 감동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와의 사신을 주제로 하는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혹 이 세상에도 보이지 않지만 '사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미련이 남아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