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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모에 - 혼이여 타올라라!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예순을 바라보는, 아직은 50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자를 통해 나를 돌아보았다면 그것은 비약일까.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오로지 가정일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수 십년을 살아온 평범한 여자 도시코.
그런 도시코의 남편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미망인이 된다. 예고없이 닥치는 일은 쉽지 않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되새길새도 없이 미국에서 들이닥친 아들은 집과 유산을 주장하고, 한술 더떠 10년 동안 불륜을 저지른 남편의 비밀까지 드러나면서 도시코는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도시코는 마침내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생애 처음으로 가출을 한다. 2박 3일, 캡슐 호텔에서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에서 도시코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이 나갔던 메밀국수 모임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친구들, 인생이 막막한 아들 내외, 그 리고 남편의 내연녀와 겪게 되는 일상을 통해서 도시코는 비로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과 그 시간을 통해 만들어 진 자신의 현재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면서 거기서 만나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힘겨운 싸움을 한다.
남편,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한 여자, 남편도 자식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도시코는 뒤늦게 원치 않았던 홀로 서기를 연습하면서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었던가 싶을만큼 잊고 살았던 자신을 하나씩 되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이 겪은 혼란으로부터 편안해지면서 비로서 도시코라는 사람 한 개인으로 홀로 서기에 성공한다.
글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친정 부모님은 전업 주부로 지내는 나를 볼 적마다 매우...정말 매우 안타까워 하신다. 기대에 어긋남 없이 자랐고, 배울만큼 배운 딸이 집에서 전업 주부로 능력을 썪힌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전업 주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또 나는 현재의 내 모습에 만족한다. 내 스스로 삶의 의미를 가족에게서 찾고 있으니까. 그런데 도시코의 삶을 보면서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살짝 두려움까지 느꼈다. 도시코의 모습이 20년후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과장이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삶은 어떡해야 하는 건가.
도시코와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서글프다. 마음은 늙지를 않는데 몸은 나이를 먹는다. 마음은 젊을적 그대로인데 몸은 그 마음을 따라주지 못한다. 도시코와 그 친구들, 이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노인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활은 아직 젊다. 나이 먹은 사람을 보는 젊은 사람들의 눈은 가끔 무섭기까지 하다. 나도 나이를 먹고 동시에 늙어가고 있다. 50대, 60대 그 이후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늘 마음은 똑같을테니까. 나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나인거처럼.
도시코는 나에게 말한다. 네 자신을 놓지 말라고. 지나간 시간은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게 인생이고,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부디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만약에 나에게 도시코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남편의 불륜 앞에서도, 자식들의 무시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자식이나 남편한테 모든걸 걸고 있는 지금의 나는 바뀌어야 하는건가. 갑자기 내 삶에 대해 진지해진다.
도시코는 30대의 나에게 숙제를 던졌다. 현명한 삶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