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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통 아기 할머니 - 좋은책어린이문고 국내창작 2 ㅣ 좋은책어린이문고
윤수천 지음, 남은미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중학교땐가 고등때인가 모실 형편이 되지 못했던 외삼촌들 때문에 외할아버지께서 가실 곳이 마땅치 않으셨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발만 동동 구르면서 속상해 하셨지만 선뜻 집으로 모시고 오겠다는 말씀을 아빠께 드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사정을 알게 된 아빠는 삼촌들을 나무라시면서 기꺼이 외할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오셨다.
우리집에 계시는 동안 아빠는 할아버지께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빼놓지 않으셨고 손, 발톰도 깎아 드렸었다.
남동생 방을 함께 썼던 할아버지는 가끔 바지에 실례를 하셔서 냄새가 심하게 나던 날도 있었는데 남동생은 조용히 할아버지 옷을 갈아입혀 드렸었다. 나는 가끔씩 계란국을 끓여서 할아버지 밥상을 봐드리곤 했는데 할 줄 아는게 계란국 뿐이라는게 어린 마음에도 참 죄송했었다.
<심술통 아기 할머니>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주인공 지혜의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
점점 어린 아이처럼 되어가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지혜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아이처럼 떼를 쓰고, 아이 흉내를 내는 할머니를 두고 지혜의 엄마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아이처럼 되간다는 말을 한다.
지혜는 엄마의 말을 믿었지만 어느날 학교에서 그런 지혜 할머니의 모습을 들은 친구는 치매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지혜는 할머니가 싫어지기 시작하고 친구들에게도 할머니를 보이기 싫다.
그렇지만 지혜의 아빠는 자신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신 어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 하며 벅에 똥칠하까지 하며 아이처럼 떼쓰는 할머니의 요구를 거리낌없이 들어주신다. 지혜의 엄마도 할머니의 힘든 요구를 묵묵히 따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의 기력은 다해가지만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는듯이 전에 없이 정신이 또렷해지는 날이 잦아진다. 그리고 겨울 방학중의 어느날 할머니는 먼 곳으로 떠나시고, 지혜는 봄에 할머니와 봤던 나비를 생각하며 할머니를 그린다.
요즘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노인 치매다. 집안에 치매에 걸리신 어른이 있다면 참 우울한 이야기 일텐데
지혜의 가족 이야기는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마도 치매 어머니를 향한 지혜의 아빠 때문일거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어머니에게 마다않고 뭐든지 다 들어주는 지혜 아빠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치매 노인 간병이 힘들혜 아빠는 아이같은 요구만 늘어놓는 할머니를 위해밤을 새우는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적엔 너무나 슬퍼해서 또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 옛날의 우리 외할아버지와 우리 아빠가 떠오르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 일거다.
지혜의 가족을 보노라면 잊고 있었던 가족간의 사랑과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짚어 보게 된다.
아이들 책에서 흔히 만나기 어려운 치매라는 소재속에 열 한살 소녀의 심리와 가족간의 따뜻함이 녹아 있다.
철 모르는 아이에게는 내리 사랑이 무엇인지, 철은 들었지만 세상사에 찌들어 도리를 잊어가는 어른에게는 경종을 울린다.가족이 모두 함께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