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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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 몇 년 사이에 책 제목에 산티아고라는 지명이 들어간 책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여행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 책들은 내 목록에서 제외되었지만 말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내가 직접 가서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 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쓴 여행기를 읽는 것이 내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순례기라면 어떨까. 그저 단순한 여행이 아닌 깨닫기 위해 나를 희생하며 걷는 길이라면. 지금의 나태해진 나로서는 동경하고 상상할 수밖에 없는 고행의 길 말이다.
작가 서영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을 담아낸 책이다. 다른 책들을 눈에 담지 않았기에 이 책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순례기라는 것으로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실 천주교 신자라 자처하면서도 산티아고의 의미를 몰랐던 나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할 말이 없지만.
작가는 처음 부분에서 어떻게 산티아고로 가는 방향표가 자신에게 나타났는지 설명한다. 바뀌지 않는 주위 풍경, 내려놓고 싶은 자신의 짐, 벗어나고 싶은 인연의 끈 등 해가 바뀌면서 고독감과 허무함이 어떻게 그녀를 잠식해 들어갔는지를. 그러다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건네진 Y의 산티아고에 가자는 말에 이미 작가는 그 길에 들어서 버렸다. 마치 운명처럼, 어떤 절대자가 있어 그 손으로 그녀를 산티아고로 이끈 것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어왔던 길. 그 길은 너무나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작가는 동행인 치타(Y의 예명)와 함께 산티아고 까지 40여 일을 걸으면서 깨달은 바와 느낀 점들을 책 속에 소상히 적어놓았다. 마치 내가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사진들과 약간의 팁도 함께 담아놓았다.
걷는 다는 것은 인생과도 같다. 걷는 동안에 방향을 바로 잡는 다면 목표한 곳에 도착할 수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돌아오기도 힘들뿐더러 영영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길에 떠있는 노란 화살표들을 보며 그리 생각했을까? 앞서간 누군가가 알려주는 친절한 방향 표시가 있기에 순례자들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길에서 만난 수많은 착한 사마리안인들로 인해 사소한 것도 감사하는 마음과 그들의 삶을 축복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이 길에는 있었던 것이다.
순례는 나 자신을 버리는 고행의 길이다. 걷는 것에 돈도 값비싼 물건도 필요가 없다.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육체와 정신뿐이다. 짐 되는 것은 모두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작가도 걸으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스스로 버린 물건들과 어디선가 잃어버린 물건들로 짐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충만해졌다. 몸은 고되지만 생각은 많아지고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도 생겨났다. 작가의 변화가 글에서 느껴져서 그런지 내 마음도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꼭 그 자리에 있는 마냥.
하지만 작가의 깨달음이란 거의 특정 종교적인 것이라 타 종교의 독자들은 조금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작가의 인생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그녀가 언급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너무나 단편적으로 적혀 있어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소설만 읽어 대서 모든 일들을 소상히 알려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문득 내가 서 있는 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길이 어디로 연결 되어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어딘가 노란 화살표가 있어 나를 잘 이끌어 줄 거란 바람을 가지고서. 또 언젠가 모든 것에 감사하며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나에게도 찾아와 주기를 하는 소망도 가져 본다.
++동행인 치타가 말한 “우리 천주교 쪽에서는 적선을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자립정신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해요”이란 말은 모든 천주교인들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자에게 자립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작가나 독자들이 그에 대한 오해를 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