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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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는 솔직히 [파수꾼] 출간에 맞춰 읽게 된 소설입니다. [파수꾼]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앵무새 죽이기]를 먼저 읽지 않고서는 [파수꾼]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하자면 두 권을 모두 읽었는데 제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다 보니 소술에 대한 기억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나이가 부쩍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라는 문장과 같이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성상 소설의 형식을 가집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형식은 아니지만 성장 소설은 보통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이들의 천진 난만한 시선에서 어른들의 세상은 온통 혼란스럽고 복잡하기 그지 없는 이해 불가한 세계 입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을 배우게 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또 다른 형식은 아이들은 이미 동화책과는 딴판인 현실의 정서와 감정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어른들이 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신출내기가 아니며 어른들의 모순과 세상의 양면성에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비웃는 적극적 관찰자이자 동시에 참여자 입니다. 전자가 교육적, 비극적, 순응적 이라면 후자는 비판적, 풍자적, 희극적, 그리고 도발적 성격이 강합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당연히 전자에 속하는 소설입니다.

 

 

[앵무새 죽이기]를 막상 읽어 보니 불공평하게 학대 받고 차별 받는 흑인을 위해 사회의 잘못된 관념과 편견에 도전하는 백인 변호사의 용기와 신념이 이 소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포일러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일반 대중이 이 소설하면 떠오르는 연상들이 상당 부분 왜곡되고 과장 되어 있음을 [파수꾼]을 읽어 보면 쉽게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은 담담하지만 솔직하고, 체제 순응적이지만 불의에 대한 반성과 정의의 의지가 담긴 미국 남부 사회에 대한 보고서이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착한 소설입니다. 바로 이 소설의 최대 장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지적하는 한계는 1960년대 남부 출신 작가가 1930년대 남부 사회를 그리는 소설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세계관적 한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문장, 플롯, 묘사, 인물, 그리고 번역까지 모두 마음에 듭니다. 작가 하퍼리의 완벽성에 존경심이 들 정도이니까요. 

 

 

가치관의 한계의 한 예를 들자면 소설에 등장하는듀보스는 늙고 몸이 아프지만 고집이 세고 인종에 대한 편견이 강한 할머니입니다. 듀보스 할머니가 백인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 당한 흑인을 변호하는 아빠 애티커스 핀치를 검둥이 애인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자 화가 난 셈은 할머니의 정원을 망가뜨려 버립니다. 셈은 할머니에 대한 본노가 전혀 사그러 들지 않았으나 아빠의 지시로 억지로 할머니께 사과 드리고 한달 동안 책을 읽어 드리는 약속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한 달 후 듀보스 할머니의 죽음은 아빠 애티커스의 입을 통해 담담하게 독자에게 전달 되는데 할머니의 죽음의 원인은 극심한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불가피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약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모르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르핀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듀보스 할머니는 고집불통, 인종차별주의자였지만 아빠 애티커스는 할머니의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셈에게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 드리라는 벌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관점에 쉽게 동의 할 수는 없습니다. 듀보스 할머니의 용기는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키고자 필요했던 덕목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겠지만 남부 지주의 전형적인 인종차별주의자로 자신의 잘못된 신념과 용기가 타인의 무고한 희생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면 이는 폐기 처분해야 마땅한 악덕에 불과 합니다. 인간은 선악을 모두 소유한 양면적인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이 사실이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습니다. 내가 핀치 애티커스였다면 내 아이들을 그런 할망구한테는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앵무새 죽이기]의 보편적 가치는 소설 마지막 장의 애티커지 핀치의 대사에서 잘 드러 납니다. 그리고 주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반드시 [파수꾼]을 읽으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모두를 이미 읽으셨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하퍼리의 촘촘하고 단단하게 얽힌 인간 세상의 첫 장으로 들어갈 시간 입니다.  

 

스카웃, 결국 우리가 잘 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단다]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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