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제 3세계, 특히 테러 = 이슬람교라는 왜곡 된 꼬리표에 고통받는 이슬람 관점에서 바라본 9.11 이후의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와 이슬람에 대한 무지, 몰이해와 편견데 대한 비판적 보고서이다. 사실 모스크에서의 기도, 코란 경독과 같은 기본적인 이슬람교도로서의 신앙 생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주인공 찬게즈를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 사실 그는 술까지 마신다. 하지만 주인공 찬게즈가 사실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술마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하는 걸 봐서는 이슬람인들이 술을 먹지 않는다는 점은 또다른 그들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겠다.

 

"솔직히 파키스탄인들 상당수가 술은 마신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술이 불법인 것은 대충, 당신데 나라에서 마리화나가 불법인 것과 똑같은 효과라고 보면 돼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p51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기껏 잘 봐주더라도 세속적인 이슬람교도에 아메리칸 드림에 목마른 "더 미국인처럼 행동하고 또 말하려고 했던" (P60) 아시아계 젊은인데 불과한 찬게즈가 단지 자신이 수염을 길렀다는 이유만으로도 미국인들에게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9.11 이후 미국 사회의 집단적 광기 - 미국민들이 듣기에는 거북하고 절대 인정하지 않는 진실이지만 미국 본토가 공격을 당했다고 해서 아프카니스탄, 이라크를 무력으로 침공하고 관타나모 수용소에 테러 용의자들을 기본적인 인권이나 헌법도 무시한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하고, 학대하는 행위를 광기가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 잘 모르겠다 -  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반대 급부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9.11 이후 미국의 광기어린 애국심과 반성없는 분노를 통하여 찬게즈는 자신이 동경해 마지 않았던 미국의 부끄럼 없는 자기 중심적 세계관의 민낯과 정면으로 마주서게 된다.

 

"그 공격후로 당신네 나라 국기가 뉴욕을 침략했어요. ... (중간생략) 그 국기들 모두가 선언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미국 - 뉴욕이 아니란 말이죠. 전혀 다른 의미니까요. - 이야. 세계가 지금까지 알았던 강력한 문명인 미국이라고. 당신들은 우리를 무시했어. 우리의 분노를 조심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p72  

 

이슬람 형제국인 아프카니스탄 침공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조국 파키스탄의 참담한 현실과, 인도와의 무력 충돌로 전운의 기운이 감도는 파키스탄에서 가족들을 남겨둔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자신에 대한 경멸감은 처음에는 찬게즈를 무력감에 빠지게 하지만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출판 경영자 후안바우티스타의 도움으로 찬게즈는 지금까지의 예니체리 -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군대로 훈련받고 양성된 기독교 소년들 - 로 살아온 거짓된 삶을 벗어 던지고 주체적인 자아 정체성을 찾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미국에서 명문대학, 고연봉 직장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파키스탄 작가의 9.11 테러 직후 미국 사회에 대한 해부와 진단은 흥미롭고 상당부분 유의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감동이나 공감의 수준까지 가기에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2프로 부족하다. 일단 찬게즈와 에리카와의 사랑은 작품 전체 구성과 주제에 잘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역자는 에리카를 과거의 영광가 노스텔지에 사로 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미국의 알레고리로 해석하고 있지만 도식적이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찬게즈라는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는 다소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평면적이고 단선적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왔으나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적 편견과 가난한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통하여 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유색인종 - 물론 정치적으로 올바름과는 거리가 먼 표현이다. - 젊은이의 모습은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한번 이상은 나왔을 법한 익숙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이후, 미국 사회의 진실과 비판에 대한 절제 있으면서도 날카로움는 잃지 않는 이 소설의 최대 장점은 희석되지 않고 오롯이 남아있다.     

 

추가로 다음의 글을 허용하는 미국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사회적 관용성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둠의 반대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미국의 또다른 긍정적 모습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 보건 데 부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 (중간 생략)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공격의 희생자들을 생각한 게 아니에요. .... (중간생략)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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