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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ㅣ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평점 :
역자 박명숙씨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대해 “방대한 자료 수집과 치밀한 현장 답사를 통한 직접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탄생한 다큐멘터리적인 면모를 지닌 작품이다. 라고 평가 했다. 이 글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면직물, 모직물, 그리고 각종 여성복에 방대한 자료와 자세한 설명만으로도 19세기 파리 중산층 이상의 패션 트렌드와 의복 문화에 대해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나 같은 남자 독자들한테는 독서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백화점 내부와 파리 거리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19세기 후반 파리의 역동적인 상업적인 변화와 삶의 활기 및 흥분으로 몇 페이지를 채울 정도로 작가 에밀 졸라는 사전 준비에 철저했던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가 19세기 파리의 치밀한 묘사와 관찰만으로 끝났다면 뭔가 아쉬운 구석이 남는 풍속사로 머물렀을 것이다. 에밀 졸라는 위대한 소설가이다. 당연히 이 작품에는 소설의 구성요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과 사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그 시대를 담는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하며 이 점에서 이 소설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19세기 중반의 파리는 생산력의 증가로 인한 풍요로운 재화의 소비로 대표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상업주의의 용광로 였던 것 같다. 우선적으로 새 시대는 구 시대와의 충돌과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드니즈의 큰 아버지 보뒤 집안과 부라 양감의 부디크적 소상인 집단은 처음에는 정면으로 백화점과 경쟁하려 하지만 이 경쟁은 부질없는 패배의 결과를 끝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비와 욕망의 창출구였던 백화점이 최대 소비층인 중산층 이상의 여인들의 욕망을 항상 충족 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리한 과소비로 가산을 탕진 해 버린 마르티 부인과 물욕의 노예가 되어 버린 드 보브 부인의 초라한 모습은 현재 소비 사회의 소외된 중산층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한편 거짓된 미소와 친절로 여인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보다 높은 지위와 보수를 위해서라면 직장 동료에 대한 험담과 모함도 서슴지 않는 백화점 직원들의 모습은 비정한 경쟁 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 에밀 졸라는 이 새로운 시대에 전적으로 비판적이었을까? 답은 아닐 것이다. 우선 작가는 새로운 시대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모습에 긍정적이다. 부작용은 있을 지언 정 새로운 시대의 활력과 혁신의 공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느낌은 이 책 곳곳에서 숨김없이 드러난다. 바로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의 소유자이자 경영자인 ‘옥타브 무레’ 가 19세기 중반 서유럽 사회의 새로운 아이콘인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그러 했듯이 옥타브 무레는 자신의 성공과 혁신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이용하고 배신함과 동시에 타인의 파멸과 실패를 동정하지 않는 무자비함을 숨기지 않았던 독재자였다. 이 시점에서 에밀 졸라는 ‘드니즈’ 라는 인물로 구 시대와의 화해와 아름다운 이별을 시도한다. 새로운 삶에 대한 행복, 즐거움, 희망의 긍정적이면서 지혜로운 사고와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의 정서를 겸비한 드니즈는 무레의 약점을 보완 해 줄 수 있는 좋은 반려자이자 동지로서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이 둘의 로맨스적 결합이 모든 것을 해결 해 줄 수 없음을 작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해피 엔딩이다. 하지만 나는 드니즈의 큰 아버지인 보뒤 집안의 몰락 (사업의 파산과 사촌 주느비에브와 큰어머니 엘리자베스의 죽음), 로비노의 자실 기도, 부라 영감의 파산 앞에서 무레와의 간극을 전혀 좁히지 못하는 드니즈의 무력한 역할은 이 둘의 결합만으로 시대와 세대간의 갈등의 화해와 봉합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강한 전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소설은 현대 사외의 거울’ 이라는 야심 찬 목표로 ‘루공-마카르’ 총서라는 이름 하에 22년 동안 20권의 소설을 집필 해 낸 에밀 졸라의 왕성한 창작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