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융 How To Read 시리즈
데이비드 테이시 지음, 박현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어 보니 발칙한 상상력의 문학도라는 표현은 프로이트 보다는 칼 구스타프 융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흔히 모호한 철학적 원리가 지배하는 시적이고 문학적인 분야로 바꾸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융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아동기의 근친상간의 치정극으로만 단순하게 몰아가는 것에 불편을 느끼고 그와 결별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발칙한 상상력의 문학도라는 표현도 융한테 적합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영혼의 제사장 또는 연금술사 라는 표현이 융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융은 무의식의 세계를 프로이트 처럼 욕망이 아닌 원형 키워드로 접근 한다. 원형은 곧 집단적인 무의식의 영역이며 동시에 종교적 정신세계의 산물이다. 융에게 자아(ego)’는 의식의 중심이고 자기(self)’는 의식과 무의식을 합친 전체의 개념이며 그 중간의 무의식 (원형,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의 세계가 존재한다.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로운 균형이 (‘개성화 과정: 자아가 무의식의 갈등과 대립을 관리) 이상적이지만 이 균형이 깨지면서 히스테리와 같은 정신 질환 문제가 발생하며 심각한 경우 전쟁이나 학살 같은 집단적 해리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융에 의하면 현대 사회는 과거의 원초적이고 영적인 집단 의식이 부재한 채 자아라는 시공간 개념이 확실한 합리성에 발목이 잡혀 상징적인 인간이 삶 (초월)을 거부하는 진부한 사회로 전락해 버린다. 인간은 이 진부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회가 선호하는 부정적인 극단적인 초월 형식에 의존하게 되며 이는 개인적으로는 신경증, 정신병을, 집단적으로는 전쟁의 형식으로 발현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 의하면 융은 인간 정신의 밝음과 어두움의 균형을 주장하고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의 정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신비하고 영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심리학자이자 예언자적 역할을 상실한 세속적인 종교를 거부하고 새로운 영혼을 구원받고자 했던 성직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한 권의 책만으로는 융의 이론과 사상은 첫째, 산만하고 모호하며, 둘째, 전혀 흥미롭지 않다앞으로도 그의 저서를 찾아서 읽을 기회는 요원할 것 같지만 어디서 다시 만날 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리뷰로 남기는 것도 그에 대한 마지막 예의가 아닌 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