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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이미 제목에서 예상했어야 했다.
번역작가의 동유럽여행기의 제목으로 저 유명한 헝가리의 매운 스튜요리인 '굴라쉬'를 선택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얼마 전부터 출판되기 시작하는 여행기는 요리와 접목하여 2인1조 장애물 경기를 하듯이 그렇게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제목에 버젓히 요리이름을 올려놓았음에도 이 여행기에는 요리가 메인으로 등장하는 그런 에세이는 아니다.
다만, 저자의 직업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언어 마술사로서의 놀라운 모습이랄까.
책을 읽는 내내 내 코끝을 간질였던 것은 여행기 속 곳곳에 숨어 있는 혹은 적나라하면서도 절묘한 저자의 음식과 관련된 표현기법이었다.
"그녀는 물냉면속의 삶은 달걀처럼 말쑥해 보인다", "키가 크고 늘씬한 여자애가 인절미의 콩가루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주먹밥의 밥알처럼 찐득한 호기심", "커피는 노파의 쓸개즙처럼 텁텁했다", "미쯔꼬의 둔부는 그야말로 찐빵처럼 희고 둥글고 푹신해"
이 책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계획을 갖고 저자가 의도하는대로 짜여져 진행되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못하나 박지 않아도 잘 짜맞춘 가구가 오히려 더 멋스럽고 튼튼하고 가구로서의 가치를 지니듯이 말이다.
아침과 점심 중간쯤에 아점으로 선택하는 ‘굴라쉬 브런치’는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로움이라는 인생의 향기를 감지할 수 있다.
프라하와 크로아티아, 그리고 슬로베니아, 동유럽 세 나라의 여행기를 담은 이 책은 여타의 여행기처럼 사진을 많이 담고 있거나, 꼭 들러봐야 할 유명관광지, 혹은 그 고장의 요리에 천착하지 않아 좋다.
독서여행기라는 부제에 걸맞으면서도 저자의 직업에서 연유하는 다방면에 걸친 인문학적인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여행기록은 아주 색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위트와 비틀기가 돋보이는 유쾌한 글을 쓰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은 단지 소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보후밀 흐라발, 지젝, 미야자키 감독, 가브리엘, ....헉헉
그녀가 이 책에서 거론하고 있는 지식인, 예술인들은 다 나열하기 벅찰 정도로 많다. 뿐인가, 책, 영화, 뮤지컬, 음반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예술적 소양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할 정도이다.
정말 부끄럽게도(나는 부끄러웠다, 진실로)몇 명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
정말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많아서 아직도 더 느끼고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은 새로운 자극이 되어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약 한 달간의 기간 동안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한 저자와 그녀의 동행자 비노양의 여행지에서의 모습은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기도 하고,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즐기면서 여행을 만끽하는 최고의 여행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행지에서 저자가 끌어올린, 행복이란, 슬픔이란, 여행이란, 삶이란, 가족이란,,,등등에 대한 단상들은 깊은 사유와 성찰속에서 얻어진 것임을 쉽게 눈치챌 수가 있었다.
이제 겨우 30대 싱글 여성의 정신세계가 이토록이나 깊고 넓을 수 있다니..
그러면서도 생을 이렇게나 긍정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니. 그녀말대로 시시한 여행은 없다.
글을 통해서 그녀의 일상이 보여주는 삶의 향기가 그 어떤 선지자의 말보다 가깝게 와 닿는다.
언어의 마술사라고 깊이 탄복하며 읽어가던 중에 ‘나와바리, 간지’와 같은 단어가 툭! 튀어 나왔을 때는 젊은 아이들의 감성이라고 이해하고자 하였으나 살짝 거슬리는 마음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대 초반에 많이 하는 외국에서 일본사람인 척 하기..나도 외국여행시 해본적이 있기에 키들거리는 두 여행자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나, 활자화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 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이탈리아를 도착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그녀의 이탈리아 여행기도 출간이 될려는지...사뭇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