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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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특히 장편보다는 단편을, 단편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최근 읽었던 단편집들 중
손에 꼽을만큼 좋았다.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다 읽고나니 결국 이 책 속의 단편들을 통해 작가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타인을(그의 마음을, 지난 시간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 것, 특히 이미 누군가를 이해 하기엔 늦어버린 순간에 깨닫게 되는 이해의 순간과 그 마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헤어진 연인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선배, 불량 학생,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으로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어떤 마음, 그저 자식들의 엄마로만 평생을 살아오신 우리 모두의 엄마..
어쩌면 이해보다는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익숙했던 그들에 대해 다른 시각과 마음을 갖게되는
이해의 순간을, 그 마음들을 들여다 보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 대해 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 해보게 되는 글들.
어떤 작품은 아주 쉬운 일상어 표현으로 공감이 되게 풀어놓았고, 어떤 이야기들은 추상화처럼 난해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로 이해를 확신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책 제목과 같은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미모의 여배우였던 이모가 유부남인 감독과 사랑의 도피처로 선택한 제주도의 작은 집에서 뜨겁게 사랑하며 보냈던 오래전 어느 해 4월부터 7월까지 석달,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채 그 마음에 기댄 그리움으로 평생을 견디며 살아온 이모의 쓸쓸한 사랑을 이해하게 된 조카의 애잔한 마음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제주도에서, 서로의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믿었던 그 작은 집의 지붕을 때리며 땅에 떨어지던 빗소리가 사월에는 미, 칠월에는 솔의 음으로 들렸다는 이모의 말.
달이 바뀌며 달라진 빗소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온 두사람이 조금씩 현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미래엔 함께 한 수 있는 선택지가 없음을 받아들이게 된 그 마음의 변화가 만들어낸 다른 음이 아니었을까..
지나버린 사랑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더
많고, 또다른 사랑으로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뜨겁게 사랑했던 그사람과 그 시절의 내 모습보다, 지붕을 두드리며 내리던 빗소리의 음으로
기억 속에 남은 추억은 평생 하나뿐인 사랑으로 단단하게 각인 되기도 한다.
단편을 읽고나니 제목도 너무 좋았지만 그 속에 담긴 쓸쓸한 여운이 내 마음에도 오래 남게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재혼을 반대했던 딸이 성인이 되어 엄마를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과 다른 어법을 가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도,
쌍둥이 딸과 자폐를 가진 아들을 둔 엄마의 좌절과
희망을 오가는 마음도,
늙은 엄마가 부끄러워 졸업식에도 오지 못하게 했던
아들이 늦은 밤 괴성을 낸다는 터널을 찾아 뒤늦게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느끼는 자책도,
이혼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며 살다가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된 엄마의 책을 읽으며 이혼을 삶의 실패로
여기다 쓸쓸히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들의 마음도,
결손가정에서 자란 문제아를 이해 하기위해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담임의 노력도..
모두 다 그럴법 하다는 공감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여지 없이 쓸쓸해진다.
결국 삶이란 어쩌면 끊임없이 타인들을 내 식으로
오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신 뒤엔 엄마가 나오는 이야기에는
여지 없이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힘든데, 이 책 속엔
유난히 엄마가 자주 등장해서 많이 힘들기도 했다.
‘딸과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친구처럼 자매처럼 딸들에게 더없이 친밀한
존재였던 엄마.
상실의 고통보다 그리움이 더 커지는 날이 오면 그땐
좀 더 편하게 이 책을 다시 읽을수 있을까?
다시 한번 김연수 작가의 단편을 좋아하게 만든 책.
성실한 작업으로 다작하는 그의 다음 작품(에세이라면 더 좋겠지만^^)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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