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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책 제목인 비행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으로 남은 구름,
그리고 운(행운)이 없다는 뜻.
책에 수록된 단편들을 읽고나니 두개의 뜻을 가진
‘비행운‘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를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평범하면서 그다지 운이 없거나 꽤 불행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구름처럼 마음 속에 아픔이 새겨진 채 살고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준 선배를 오랫동안 짝사랑 했으나 그에게 믿음을 배반 당하고, 그렇게 아픈 마음으로 돌아오던 길에 불현듯 어린 시절 자신을 짝사랑해서 상처 받았던 남학생을 떠올리며 새삼스런 자책으로 아파하는 여대생,
한밤중에 재개발 공사 구역에 떨어뜨린 결혼반지를
찾으러 들어갔다가 쓰러진채 썩은 나무자재에서 나오는 벌레들을 보며 아무도 듣지 못하는 허공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임신부,
철거 아파트에 유일하게 남아있다가 태풍과 함께 아파트를 삼킬듯 차오르는 폭우를 피해 엄마의 시신과 함께 뗏목을 타고 달아나는 백수 청년,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기대가 분노와 다툼으로 바뀌어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친구들,
친구 결혼식날 좀 더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네일숍에 들렀지만 카드 발급 사은품인 여행트렁크를 들고 다니느라 결국 비싼 돈을 들인 손톱도 외모도 망가져버리고 마는 사회 초년생,
다단계에 휘말려 착한 후배의 삶을 망가뜨린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선배 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있는
어느 후배까지..
평범하지만 누리는 기쁨보다 상실의 아픔에 더 익숙한 그들은 되새길수록 아픈 과거의 상처로 고통 받고,
녹록치 않은 현실의 고난에 조금씩 무너지며,
자신들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것이 뻔한 미래를 짐작하면서도 버티듯 살아간다.
담담하지만 온통 잿빛인 그들의 이야기는 서글프고 막막하며, 나아질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밀도 높은 문장 때문인지 그들이 겪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결국 오늘과 다를리 없는 내일을 또 견디며
살아가게 될,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마침표 다음에 이어질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더
편안하고 기쁠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뛰어난 묘사력과 현실감 있는 문장력을 지닌 작가가 보여줄 다음 작품은 좀 더
밝고 따뜻한 이야기였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