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나만의 걸작을 만드는 컬러링북
데이비드 존스.데이지 실 지음, 경규림 옮김 / 씨네21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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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구스타프 클림트》, 《아서 래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르데코 패션》 등 총 다섯 권의 책으로 나만의 걸작을 만들어보는 컬러링북 시리즈!

내가 하니포터 서평단으로 받은 책은 황금빛 장식성이 눈부신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가 수록된 컬러링북이다.

몇 작품이 들어있는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을 비롯해 새로 알게 된 작품까지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다. 황금빛으로 찬란이는 아름다움, 그 속에 깃든 사랑과 슬픔.


'색채로 표현된 슈베르트의 음악'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선보인 구스타프 클림프는 아르누보(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장식 양식으로 새로운 예술을 뜻함)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결성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다.

클림프의 작품에 대해 언급할 때면 찬란한 황금빛과 관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과시적인 표정의 여인들과 너무 화려한 색채와 장식에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선호하지 않는 작품을 그리는 화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년 전엔가 독서모임에서 화가들의 그림을 설명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에서 아주 조금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영화 <우먼 인 골드>를 재미있게 본 경험이 더해져서 이번에는 한 장씩 자세히 넘기면서 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선호하는 색감과 스타일의 그림 하나를 만나게 되는 행운까지 누렸다 ㅎㅎ

제목은 <물의 요정>(은물고기)로 지금 계절과 어울리면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각 장마다 작품설명과 채색 가이드가 수록돼 있어서 주변에 있는 색연필, 수성사인펜 등을 이용해서 어려워보이는 작품 컬러링에 대한 장벽 진입을 낮췄다. 그래도 좀 복잡해보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복잡해질 때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무념무상으로 컬러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이 여름에 어울리는 작품- <게를라흐의 알레고리를 위한 여름 삽화> <푸른 강 위의 마을> <금붕어> <물의요정> -부터 색칠해보고 싶다.

혹시 좋은 작품이 나오면 한 장씩 뜯어낼 수 있으니 벽에 걸어두고 나만의 컬러링 작품을 감상해볼지도 모르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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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 - 기후위기 탈출로 가는 작지만 놀라운 실천들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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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고 황당해 보이는 생각들이 지구를 구한다!"


지구를 구한다는 씩씩한 말처럼 이 책은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가지'를 담고 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기후 위기에 빠진 지구를 살린다는 의지는 너무 순진하고 해맑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기 위한 개인적인 실천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친환경 제품이나 텀블러 사용, 물건 재활용을 하고 자동차 보다는 도보로 이동하면서 '나는 환경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에 만족하여 지구를 살리기 위한 본질적인 고민보다 지엽적인 부분만 강조하여 실제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었다.


더럽거나 위험한 물질에 노출되지 않으며 그러한 장소에서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연관성을 인지할 수 없다. 법적인 규제와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환경 오염은 반복되면서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기에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만 실제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개인의 노력은 어떠한 소용도 없다는 냉소로 흘러가면 지구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씩씩한 용기는 개인적인 실천과 공동체의 의지가 병들어가는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따뜻한 희망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오랫동안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환경 책(『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물건10』 『지구인의 도시 사용법』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여우와 토종씨의 행방불명』 등의 저서가 있음)을 쓰고 있는 박경화 작가는 2019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과 2015년 'SBS 물환경대상 '두루미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기후위기, 에너지 고갈, 넘쳐나는 쓰레기 등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환경문제는 너무나 무겁고 막막해요. 이러한 문제 뒤 이어지는 갈등과 불평등 문제도 복잡하지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요. 하지만 무기력하게 걱정만 할 수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서 지구촌 곳곳에서 행동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어요.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작가의 말

 


 실제로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방법들은 기발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생각에서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 방법들이다. 크게 10가지 방법이 소개되어 있으며 각각의 챕터에 사례와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각 챕터의 마무리 장에는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생각 키우기>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10가지 방법은 어려운 실천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소와 방식으로 가능한 방법들을 담고 있어서 부담 없이 들어가서 동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고 있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잘 알지 못했던 '도시광산' '공정무역' '탄소중립' 부분은 눈여겨 읽어볼 만 하다.


특히 7장 '도시광산'에서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전자제품들을 만드는 핵심 광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채취하거나 생산하여 판매하는 광물이 그 나라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과 보호 장비 하나 없는 굴속에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으면서도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는 빈곤의 굴레를 볼 수 있다.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네 살 어린아이도 광물을 골라내거나 땅을 파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값싼 노동력이며 저항할 수 없는 약자이기 때문..

4장 '도시재생'은 지방에 빈집이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고 5장 '생태도시'에서는 지속가능한 도시는 결국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인구 증가로 도시가 무분별하게 확장되거나 인구 감소로 도시가 쇠퇴하면서 주거 환경이 노후화디고 열악해졌을 때, 또는 산업 구조의 변화로 건물이나 시설물의 용도가 달라졌을 때 등 다양한 이유로 변화가 필요해지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여 경제, 사회,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도시 개발 사업이에요. 또 도시의 주요 건물이나 거리를 새롭게 꾸며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에요.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10

 

 

마지막 10장 '탄소중립 사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년 간 놓쳤던 부분이라 더욱 시급하게 다가온다. 날마다 전기를 쓰고 있으며 냉방과 난방 등 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략 30년 후인 2050년 탄소중립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노력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머나먼 미래처럼 들린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은 무역 경제에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빠르게 대책을 세워야 할 부분이다. 한국형 RE100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했지만 뚜렷한 방안이나 결과가 없이 지나가 버렸다. 제조업의 수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엄청 시급한 문제 아닐까 싶은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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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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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내버려둔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고대와 현대의 폐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진가를 인정받아 복원된 곳도 있고, 완전히 황폐해진 곳도 있다.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격려한다.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서문


버려지고 잊혀진 장소들에는 늘 이야기가 남아있다. 한때는 찬란하게 빛나는 장면으로 그려졌을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되어 빈약한 뼈대만 남게 되고, 마침내 그마저도 부서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죽음은 두 가지 형태로 완성되는 것 같다. 물리적 형태의 상실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기억의 상실로. 사람 뿐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도 마찬기지로 그렇게 죽어간다.

이 책에는 세계가 흥망성쇠를 이루고 변화하는 동안 잊혀지고 버려진 40개의 폐허가 나온다. 한때는 세계의 중심처럼 빛나다가 쇠락하고 부서진 폐허를 총 5장에 담고 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예정된 수순대로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를 소개한다.

튀르키예의 뷔위카다 보육원, 폴란드의 자르노비에츠 원자력발전소, 노르웨이의 피라미덴, 포르투칼의 도나시카성, 아이티의 상수시 궁전, 덴마크의 루베이르크누드 등대, 이탈리아의 사메자노성.​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에는 제목처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들이다.

독일 '책의 도시'인 뷘스도르프에 남아있는 '붉은 군대'의 흔적, 문명의 중심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올라, '환희의 성채'가 맞은 인과응보의 역사를 남긴 인도의 만두, 지진과 홍수와 기근으로 주민들이 탈출하여 마침내 텅 비어버린 후에 영화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크라모, 한때 호황을 누리던 광산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뒤 쇠락한 스웨덴의 그렌게스베리, 뮤지션들이 많이 찾았지만 허리케인과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로 위험지역이 되어버린 서인도제도의 플리머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이아몬드로 한때 가장 부유했던 나미비아의 모래사막 등의 폐허가 나온다.

<시간의 무게에 잠식된다>에는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에 대한 내용이다. 미국의 샌터클로스는 1950년대 크게 번성했지만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던 66번 국도가 다른 도로에 대체되다가 1985년에 공식 폐쇄되면서 마을도 함께 몰락했다. ‘크리스마스의 수호성인’을 연상시키던 샌터클로스는 이제 ‘크리스마스 유령’을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찬란한 영광의 잔해>는 과거에는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장소들을 소개한다. 소금 사막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근처네는 '열차들의 무덤'이 있다. 영국이 추석 등의 천연자원을 운송할 목적으로 철도를 세우고 주유 환승역을 우유니에 건설했었는데 인공 질산염의 등장으로 초석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철도 산업이 쇠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유니 근처는 기차 폐기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성지순례와 노예 매매가 교차했던 수단의 수아킨. 노예 매매라는 무시무시한 평판으로 유명했으니 찬란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에서는 차별과 혐오를 엿볼 수 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스벨트 섬에 세워진 천연두 병원과 이탈리아의 볼테라 정신병원, 여성을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집안의 재산처럼 여기는 우간다의 야캄펜섬.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영화 <코코>가 떠올랐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읽어가는 과정에서 폐허에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자연을 존중할 줄 모르고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공간과 장소들은 부서지고 잊혀지면서 그런 점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소개된 폐허들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1개 뿐이다. 폐허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 작가인 트래비스 앨버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폐허에 담겨 있는 이야기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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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밝은 검정으로 - 타투로 새긴 삶의 빛과 그림자
류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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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새기는 상처로 고통의 순간을 통과해야 완성된다. 자신의 몸에 고통을 새기고 흔적을 남기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래도 타투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은 많이 사라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작년에 소설가 성해나의 <오즈>에서 과거의 아픈 상처에 아름다운 타투를 새기는 장면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존엄이 짓밟히고 파괴된 삶을 살았던 노인의 몸에 새겨진 지옥의 무늬 같은 상처에 새로운 그림이 덧입혀질 때 새롭게 태어나는 빛을 본 듯도 했다. <오즈>의 노인처럼 존엄이 짓밟히는 종류는 아니지만 내 몸에도 상처가 많다. 개에게 물렸다가 생긴 상처, 교통사고로 패인 상처...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것들은 모두 흉터로 자리잡았다. 모두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로 몸이 자라면서 흉터는 내 몸이 자랄수록 작아지고 조금씩 다른 모양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나의 상처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류한경 작가의 첫 사진집 『가장 밝은 검정으로』 은 1년 반 동안 인터뷰이 10명의 타투와 몸을 찍은 결과물이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카메라에 비친 타투는 강렬한 빛으로 생긴 실루엣 같기도 했다. 그 빛은 어디서 왔고, 그들 몸에 드리운 무늬는 무엇의 그림자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빛은 그들의 삶이고 그림자는 그들이 짊어진 삶의 하중이었다. 타투는 그들이 경험한 억압을 들려줬따. 타투 이야기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10명의 타투와 인터뷰를 보면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개인적인 상처도 있고 남과 다른 정체성으로 받은 상처도 있다. 몸에 새긴 타투가 힘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 흉터를 떠올렸다. 흉터에 타투를 새기면 상처의 깊이도 조금씩 얕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고.

몸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데 타투도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타투는 나의 의지로 신체를 변형하는 행위다. 몸을 자발적으로 바꿈으로써 몸에 대한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려는 퀴어들이 저항의 의미로 타투를 많이 새기는 것 같다. 규범을 탈출하고 싶은 갈망도 반영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타투가 남성으로 패싱되는 사람에겐 쉽게 용인되는 반면, 여성으로 패싱되는 사람에겐 용인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만큼 여성으로 패싱되는 사람들이 규범에 균열을 내는 무기로 타투를 활용하기도 한다.

가장 밝은 검정으로/ 시인 김선오

책을 읽으면서 시인의 인터뷰는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시인 김선오는 타투의 반영구적인 속성이 두렵지 않다는 말 속에 몸은 너무 찰나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해도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고 했다. "몸이 유한하니까 타투의 속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 시의 구절처럼 들렸다.

비건 식당 운영자 단지앙은 "억굴과 손을 뺀 거의 모든 부위를 타투로 채울 생각"이라고 "나이가 들수록 잊어버리는 게 많아지니까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계속 새기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 많은데 잊어버려도 남길 기억을 새긴다는 그의 말에 이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쌓아온 서사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깨끗함'의 기준을 한참 벗어나 있다. 이미 얼룩진 몸인데, 타투를 한들 뭐가 대수인가. 나는 자신의 삶과 몸을 주체적으로 재해석할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겐 타투가 그 수단이었다.

가장 밝은 검정으로/ 작가 홍승은

한국에서 타투는 아직도 불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받고 있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이 하면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의 타투이스트들이 있으며 국민 4명 중 1명은 반영구화장이나 몸에 타투를 새길 정도로 타투에 열광적이면서도 타투를 터부시하는 나라. 이런 모순이 해결되어 타투가 법제화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시술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고통의 순간의 거친 다음에 얻게 되는 자신만의 영구적인 흉터. 그것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으니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현재의 나를 붙잡고 있는 과거의) 억압과 족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여전히 내 상처에 타투를 새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의 인터뷰이들이 하는 말들은 좋다.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투쟁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멈추지 않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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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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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필수노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구성원들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들. 하지만 그 노동이 정말 우리 사회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그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물류 창고에서 장시간 동선이나 화장실 시간을 체크당하며 일하던 노동자의 사망, 휴대폰 앱이 등장하면서 실시간으로 노동을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불이익에 받을 환경에 처한 배달 노동자들의 반복되는 사고, 코로나가 대유행할 때도 제대로 된 방역조치 없이 기계 앞에서 반복적인 일을 해야 했던 정육공장에서 질병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비롯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수없는 형태로 필수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자신이 선택한 일인데 왜 불만인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일 밖에 못 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에 정부의 규정과 규제를 탓하는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 소리를 내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많다. 노동자가 강자이고 장애인이 강자라는 말이 떠올라서 씁쓸하다.

예전에 학교에 다녔을 때 선생님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 지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면 미래의 배우자 얼굴이 바뀐다.. 공부 못하면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한다.,,그런 분위기에서 좋지 못하다고 인식되는 직업은 천대당하고 그들이 받는 열악한 대우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선망받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기준으로 사람을 각각의 소득계층과 각각의 직업 경로로 밀어 넣는다. 센델이 지적한 대로 이 시스템은 일류대학 학위가 없고 근 몇십 년간 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만 있는 노동자계급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깎아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초고학력으로 성공한 사회의 '승자들'에게는 빛나는 도덕적 자격을 쥐여주며 "성공을 오로지 저 자신이 노력한 결과요, 제 미덕의 척도로 여기라고, 그리고 불우한 사람을 깔보라고" 부추겨왔다.

더티 워크

이 책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 앞에 놓인 좁은 선택지가 보인다. 개인의 재능과 능력만으로는 성공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걸 환경이 말해준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그런 말까지 들으면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마이클 센델이 말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오만"의 정점에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과도한 입시경쟁은 능력주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이 코스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으로 더렵다고 여겨 스스로 절대 하려고 하지 않는 이른바 '더티 워크'를 하는 사람마저 능력주의를 우러러본다. 노동의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능력주의에 대한 선망만 가득해진다.

일반 시민들에게 비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했던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하찮거나 더러운 일, 다른 일을 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하는 일, 자신이 선택했으니 당연한 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더티 워크'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노동 가운데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 이다.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더러운 일을 누군가가 떠맡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의 '무의식적 위임'을 받고 있는 노동.

이 책에서 다루는 더티 워크는 아래와 같다.

- 구치소나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 미국의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드론으로 표적살인을 수행하는 일

- 공장식 대량도축을 하는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 시추선 생존 노동자들이 처한 현장과 그들을 둘러싼 모순된 시선들

- 실리콘밸리이 자랑하는 최첨담의 빛나는 발전 뒤에 숨은 어두운 이면

더티워크는 여러 속성을 가지고 있다. 타인이나 자연 세계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것과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

구치소나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서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숨겨진 고문이다. 교도관들은 가해자이자 그 노동을 담당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피해자이다. 심리상담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해고를 당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었고 이를 밝혔을 때 자신이 교도소에서 처하게 되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더티 워크는 정해진 숙명이 아니다. 정부의 규정과 규제가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왔는데 그것은 더티워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벌어지고 있는 환경이 자신들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 시민들의 묵인에서 비롯되었다. 말이나 글로 전해듣는 것은 실제 현장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의 충격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중에서 정육공장에서 일했던 여자 노동자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슬프고 처참했다. 멕시코의 빈곤 가정이자 알콜 중독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틈만 나면 죽이려고 했던 가정에서 자란 열두살 플로르는 친모와 연락이 되어 백인이 주인인 목장 한켠에 마련된 숙소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계부는 플로르가 공짜로 살면 안 된다며 섹스를 요구했다. 플로르가 저항하며 친모에게 사실을 말하자 친모는 오히려 플로의 뺨을 때리며 화를 낸다. 그리고 계부는 플로르를 쫓아낸다. 이후 여러 험난한 여정을 거쳐 정육공장에서 일하게 된 플로르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닭을 죽이는 기계 앞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현대적 기계화는 그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지만 노동자의 삶은 피폐하게 만들었다. 생닭 걸이 라인에서 한 사람이 1분에 걸어야 하는 생닭은 65마리였다.

1906년 업턴 싱클레어의 정글 발표 이후 육류검사법이 도입되었고 비위생적인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육산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농무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간 산업 현장에 감찰관 파견하여 도축된 고기 조사. 문제 있는 고기를 라인에서 제거했다.

그러다가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기존 시스템을 '현대적이고 과학적으로' 간소화하면서 위생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이윤의 극대화만 힘썼다. 공장 가동 속도 높이고 현지 파견 인력을 줄이고. 폐기처분되어야 할 닭들이 소비자에게 팔렸다.

클린턴 행정부에 와서는 '해썹' 도입으로 실제로는 품질 인증 권한을 회사 측에 넘기고 연방 감찰관 역할을 무작위 추출 검사로 축소했을 뿐이다. 감시가 줄어들면 편법을 쓰면 된다. 정육회사들은 고기에 과초산이나 염소 뿌리기 시작했다. 불결한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뿌린 화학 약품 스프레이. 병든 동물도 불결한 환경도 개선할 수 없지만 유일한 장점 저렴함 방법으로 생산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 과초산 노출로 인한 공장의 공기 오염과 노동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지 않았다.

필수노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더러운 존재처럼 취급받는다. 윤리의 소비적 양면성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이용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만으로 안 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에 속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줄 회비를 내고 고기를 줄이고. 그러면서도 정육공장의 환경을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내 자신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나는 아니니 상관 없으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으니 괜찮다는 위선적인 자기위안이었을 것이다.

정육공장의 필수노동자들이 더러운 존재가 된 느낌을 강요받는 동안, 금융이나 컴퓨터공학 분야의 필수적이지 않은 노동자, 이른바 "노트북을 가진 사람들"은 정육공장의 현실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안전하게 머물렀다. 프레시다이렉트, 인스타카트 같은 배달회사 덕분에 이제는 고기를 먹기 위해 굳이 정육점 주인이나 슈퍼마켓 점원과 접촉하지 않아도 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단 몇 번의 클릭이나 터치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원하는 만큼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다. 그 고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더티 워크

우리가 날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도 우리는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한다.

글로벌 테크 공급 사슬은 깨끗하지 않다. 노트북과 휴대전화에 쓰이는 충전용 이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코발트는 세계 생산량 절반 이상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콜웨지 광산에서 생산된다. 하루 열두 시간에서 열네 시간씩 일하면서 극악한 환경에서 폐질환을 일으키는 유해 화학물질을 마시면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는 아동도 많다.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없는 작업장에서 붕괴되어 죽는 일이 다반사다. 영세 광부가 긁어낸 광물은 회사 사들이고 그중 일부는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애플 기업의 제품이 들어간다.

우리 모두를 대신해 더티 워크를 수행 중인 대리인들인 더티 워커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더티 워크의 핵심 특징 가운데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초한 노동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개인의 노력의 무력하지만 집단의 힘은 그렇지 않다. 암묵적 동의는 숙명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교도소를 붐비게 만든 징벌적 양형 정책이 인기를 잃어갔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태도도 도축 노동자가 처한 비참한 환경을 문제 삼기보다 유기농 고기를 집착하는 소비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는 했어도 바뀌기 시작했다. 화석연료에 대해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것이 필요하다.

더티 워크는 법과 정책의 산물이요, 예산 편성의 산물이며, 그 밖에 우리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여러 결정의 산물이다. 그런 결정 중 하나는, 더티 워크가 무고한 사람들과 환경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위해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다.

더티 워크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특권층과 비특권층이 살아가는 세계는 점점 분리되어 갈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누가 더럽다고 인식되어 누구나 피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노동을 하게 될 지는 명백히 눈에 보인다. 경제적 특권에 따라 결정되는 직업. 더티 워크는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고립된 장소로 이동하여 대다수 구성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춰질 것이다. 교도소나 정육공장이나 드론 표적살인 같은 문제들이 주목 받을 때는 규정과 규제를 담당하는 윗사람들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현장에서 일하는 더티 워커들이 비난 받는다. 그리고 우리처럼 일반 시민들은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그들을 비난하는데 합류한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더티 워크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할 때 스캔들처럼 취급하여 흥미 위주로 취재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면서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러렛 휴스는 '수동적 민주주의자'라는 말을 썼는데, 겉보기에는 계몽된 태도를 가졌지만 즐겁고 무심한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할 의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변에서 비도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휴스는 지적했다. 깨어있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하거나 행동하기 꺼리는 수많은 수동적 민주주의자들 (나를 포함해서)이 알아야 할 사실은 더티 워크에 몰려 있는 모든 문제는 살아있는 인간들이 다시 논의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공론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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