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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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창문을 살짝 열었더니 강한 바람과 들이치면서 전원이 꺼져 있던 선풍기 날개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태풍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요사이 비가 참 자주 내린다. 장마철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비가 내릴 수 있지만 패턴이 다른 것 같다. 며칠 동안 무더운 열대야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고 있다. '장마'는 '여름철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후 패턴이 바테뀌면서 장마가 아닌 기간에도 폭우나 오래 비가 내리는 날들이 생기고 있다.

장맛비는 대양의 수증기가 계절풍을 타고 아시아 대륙의 열기를 찾아가는 대규모 지구촌 행사다. 여름이 되면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지고 열의 적도는 북반구로 옮겨온다. 육지가 많이 몰려 있는 북반구는 바다가 많은 남반구보다 빠르게 달아오른다. 특히 아시아 대륙은 광활한 만큼 다른 지역보다 더욱 빠르게 달아오른다. 더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변에서 바람이 모여든다.

날씨의 음악

사람들은 장마가 아니라 아열대성 우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기상청에서는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 패턴을 분석한 결과 아열대화되고 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날씨는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날씨는 확인하는 것은 일상 속 친숙한 습관이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류가 진화해 오는 동안 날씨의 리듬은 우리 몸속에 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날씨의 음악』의 저자 이우진은 연세대학교에서 천문기상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대기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기상학자로 바송을 통해 기상 현상을 해설하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상 칼럼을 기고해 왔다고 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한겨레》에 <이우진의 햇빛>이라는 칼럼을 쓰는 도중에 편집자로부터 날씨와 음악을 연결 지어 책을 써보자는 제의를 받고 집필했다고 한다.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 저자의 글은 부드럽게 잘 읽힌다. 날씨와 음악의 알레고리 가운데 역사적 사건이나 그림도 나오고 일상사와 멋진 풍광과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도 담겨 있다.

책의 목차를 보면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의 목차가 유독 길다. 작가는 4계절을 4악장에 빗대어 2악장인 여름이 기후 위기로 인해 점점 길어진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자연은 '긴장과 이완,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한 편의 완전한 교향악'을 들려주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전에는 악장마다 연주 시간이 비슷했지만 최근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그 길이도 달라지는 추세다. 봄을 노래하는 1악장은 짧아지고, 대신 2악장의 여름은 점점 길어진다. 악장을 다시 육등분한 절기는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기후와는 맞아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조금씩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기후가 변화한 탓이다. 거기에 날씨까지 춤을 추면서 우리가 체감하는 계절의 시작과 끝도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일 년 전체를 통틀어 보면 자연이 긴장과 이완,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한 편의 완전한 교향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걸 알 수 있다.

날씨의 음악

음악의 선율같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자이자 현장 전문가로서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와 토네이도, 태풍, 우박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한 지역에 대한 우려에 대한 글도 보인다.

여름철 열돔 현상에 대해서는 냄비에 찬물을 넣고 아래에서 불을 때고 수온이 올라가고 공기의 순환이 막혀서 식지 않는 열기와 열대야로 설명하면서 온난화의 원리와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러한 원리로 인해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 온도를 높이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는 한 곳에 폭염과 가뭄을 주는 동시에 다른 곳에는 홍수를 불러오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말하고 있다.

감수성이 돋보이는 시적인 문장에 현재 심각한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주고 있으며 기상학자가 하는 일도 이야기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날씨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시적 감수성에 전문적인 설명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그 일에 몰두해온 사람이 가지는 재능일 것이다. 장마, 혹은 우기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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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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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나는 박서련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아니, 그 전에도 봤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고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작품집에 수록되어 내게 각인된 소설의 제목은 <당신의 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이었는데, 작중 화자가 정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재미있게 맞물려 갔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가 게임 화면 속에 뜨는 글자를 타고 흐를 때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들이 남에게 뒤쳐져서 무시를 당하거나 자신감이 깎이지 않도록 화자인 엄마는 끊임없이 아들의 모든 것을 체크하고 관리한다. 성적은 기본이고 신체사이즈까지도 관리하는 엄마의 관리는 완벽에 가깝다. 그럼에도 아들은 만족할 수 없다. 하나가 갖춰지면 다른 부분에서 결핍이 나기 마련이니까. 결핍은 경쟁사회에서 뒤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는 아들이 뒤처져서 자신감을 잃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아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게임을 자신을 먼저 배워서 아들에게 가르쳐주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아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키우려고 했던 엄마의 노력은 어떤 식으로 보상받는지, 소설의 마지막이 압권이다.

그 다음에 읽은 소설은 『채공녀 강주룡』이었다. 아 이 소설은 처음부터 소름 끼치도록 압권이다.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그 장면에 대한 묘사를 말로 옮길 만한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마르타의 일』은 권여선의 『레몬』과 비슷한 결을 지닌 소설이었는데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나, 나, 마들렌』으로 이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작가가 문학잡지와 영화제에 기고했던 소설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나, 나, 마들렌>은 지난 겨울에 <창비>에 수록되어 있어서 먼저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다른 '나'가 생기는 이유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일곱 편의 소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박서련 작가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등장 인물들, 그러니까 동시에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녀는 동시에 도처에 공재 가능했다"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박서련 작가는 작중 인물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소설을 쓸 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생각일지 궁금했다. 설마 그의 방에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있지는 않겠지, 하면서 슬쩍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정도로.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는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감염자를 피해 도망다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감염자만 피해다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감염자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여자는 과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젤로의 변성기>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년 주인공 목소리 때문에 유명해진 50대 여자 성우가 순정만화처럼 생긴 미모의 20대 신인 성우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생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50대의 몸은 현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성장은 이어진다.

표제작 <나, 나, 마들렌>은 자고 일어나니 또 다른 '나'가 생겨버린 상황으로 이야기를 열어간다. 일관되지 못한 신념과 흔들리는 신념이 솟아날 때마다 분열하는 또 다른 나의 탄생. 담담하게 그려낸 마지막 장면이 눈으로 본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나와 클레어>, <세네갈식 부고>, <김수진의 경우>, <마치 당신 같은 신>도 이야기를 읽는 맛이 있는 소설들이다. 재미있는 스토리에 성기지 않은 문제의식까지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위태로운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분열과 소멸의 과정이 필요할까.

책을 다 읽고 표지 그림을 보니 '나'가 세 명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나'가 생겨날지 알 수는 없는 마들렌의 친구인 감자 친구 '나'.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분열과 소멸을 거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진심에 닿으려고 할 수록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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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터러시 -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힘
김유익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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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가 30년을 넘은 이 시점에서 상호 우호적인 이상적인 외교의 길이 답답하게 막혀있는 것만 같다.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 대신 감정적인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강경한 안보의식이 경제의 길을 막아서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수교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이다.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색 국면에서 양국 항공사들은 중국과 한국을 수요가 줄어서 노선을 조정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널리 퍼져있는 혐중정서는 중국인들을 자기 우월적이고 맹복적인 애국주의자로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거나 도움을 받고 자해공갈을 하는 단편적인 동영상을 반복재생하며 그런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모습이 마치 모든 중국인의 특성인것처럼 납작하게 해석하여 버린다. 이러한 혐중정서는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세계는 각자 떨어진 섬이 아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딱 들어맞도록 사소해보이는 부분이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물며 우리나라와 가까이 있으면서 오랜 역사 동안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았던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김유익

서울에서 태어나 다국적 기업의 금융 IT 컨설턴트로 일하며 서울, 홍콩, 베이징, 도쿄, 싱가포르 등 여러 대도시에서 거주했다. 2012년, 생태 농업 등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활동가로 커리어를 전환해 일본의 자급자족생활센터와 서울의 하자센터에서 일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에서 청년들을 위한 생활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 마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차이나 리터러시

저자는 광저구 근교에서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생활에 기반을 둔 지식과 문화를 통한 여러 아이디어를 이 책에 담았다. 그는 한국이 가진 특수한 지정한적 위치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문명, 여러 세력과의 교역과 교류를 이어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책에 담긴 내용들은 때로는 동의되지 않는 점도 있었고 좀더 자세하게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저자도 책의 '들어가는 글'에 그러한 점이 염려되었던지 이런 말을 꺼내고 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생소한 중국, 생생한 중국인 이야기'에서는 송나라가 최고 리즈 시절로 꼽히는 이유와 홍콩과 대만, 중국의 SF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2부 '추상적인 거약을 넘어 새로운 보편으로'에서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도그마, 중국의 검열과 규제 등 중국 사회의 정책과 한계를 이야기한다.

3부 '도그마 너머의 중국과 한국을 만나다' 편에서는 혐중 정서의 또 다른 원인을 '르상티망'에서 찾는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는데 르상티망은 숙명적으로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상대에게 품은 원한을 뜻한다고 한다. 이 장에서는 중국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라고 제시하면서 한국 청년들이 미국이나 서구 사회로 진출하는 것처럼 중국으로 진출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중국을 찾아내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4부 '두려움과 부러운 사이에서 발견한 새로움'에서는 지금 중화민족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와 '민족주의' 대신 '지역'과 '사람'을 만나자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에서는 인터넷에서 촉발된 한복이나 김치 논쟁으로 인해 민족주의 감정 충돌이 발원지가 되었다. 저자는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양국 민족주의의 충돌은 파편적이고 선정적이기 때문에 매우 격렬해보이지만 소수의 계층에 불과하여 반한 기류를 형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문제를 삼고자 하는 내용은 전체 계층으로 확산되어 거의 모든 중국인이 알게 되고 기류를 형성하게 된다. 현재 반중정책을 드러내면서 실행하고 있는 현 정부의 외교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책 내용 중에 중국 내에서 보도되는 한국 뉴스가 부정적인 면모 일색이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중국 언론은 K컬처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분석도 곁들였다고 한다. 이런 의식은 중국인들이 일본 국가는 싫어하지만 일본 문화를 세련된 것으로 묘사하는 것과 반대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젊은이들은 한국 사회를 자신들에게 소개된 '도가니, 소원, 기생충,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는 사회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굵직한 외교 문제 뿐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미디어에서도 이런 왜곡으로 인한 편견이 심해진다면 반한 감정은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든 국가든, 어느 대상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해석해버리면 편리하다. 시간을 들여서 노력하지 않고 단정짓고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견으로 쌓아올린 기준의 잣대로 납작하게 눌러버린 대상과의 관계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입체적으로 제대로 읽어내는 힘은 필요하다. 저자 본인이 전문가는 아니라도 했지만 이러한 납작 대상화가 가지는 위험성을 일깨우고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각성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읽어볼만 한 책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와 중국 SF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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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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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기질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보통 수준의 예민도를 지닌 사람들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남들이 볼 때는 별 것 아닌 일들을 쉽게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은 덜 예민한 사람들의 차이를 카메라와 마이크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덜 예민한 사람에 비해 예민한 사람들은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와 같다"고 한다. 당연히 남이 그냥 넘기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고 생각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의 에너지는 쉽게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 작은 부분 하나도 지나치지 못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기질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도 쉽지 않고 쉽게 우울해하고 불안해질 수 있다. 만약 예민한 기질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오랜 기간 동안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면 우울증이나 강박관념의 문제로 심각해질 수도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클로닝거 교수의 기질 및 성격 이론을 보면, 예민한 사람들은 위험 회피 기질과 사회적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위험회피 기질은 내성적이고 걱정이 많다.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조심성이 많아서 실수가 적은 대신에 지나치게 걱정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건강 염려증'이나 위험한 일을 피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민감성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에 민감해서 눈치를 너무 많이 보게 되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나친 죄의식을 갖기도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불안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해주고 안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있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이러한 존재를 '안전기지'라고 하는데, 애착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유아기 때 초기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긍정적인 대인 관계를 맺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유아기 때 그런 관계를 맺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안전기지'를 만들면 된다. 책에서는 친구나 담당의사, 취미활동, 반려동물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졌거나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예민성을 조절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도 어릴 때부터 불안도가 높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데다 늘 다른 형제들보다 부족하다고 혼내거나 지적하는 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를 많이 봤으며 부모님의 잦은 불화, 수시로 터지는 오빠의 폭력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몸집이 작고 소심하고 불안감이 너무 높아서 어릴 때부터 수면 장애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택시에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났는데 택시운전사가 집 근처에 그냥 내려놓고 가버렸다. 혼날까봐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숨기고 있다가 저녁에 상처를 보게 된 엄마에게 혼이 났다. 아프지 않냐는 말 한마디 없이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라는 비난을 받고 밤새 혼자서 끙끙 앓았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그대로 갔다.

그때의 경험은 큰 상처로 남았고 그때부터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고립감을 느끼게 되니 극단적인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상처로 얼룩진 내 기억과 달리 어머니는 나를 응석받이로 키웠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다혈질에 기분이 쉽게 바뀌는 어머니는 기분이 좋을 때는 칭찬을 했다가 갑자기 화를 내고는 했는데 본인은 좋은 부분만 기억하고 계신 것 같았다. 지금도 다른 모녀와 달리 거리감이 느껴지고 친정에 가도 불편한 마음이 들어 잘 가지 않게 된다. 특히 첫째가 과잉행동으로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그때 의사선생님이 나의 어린 시절을 갑자기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일들을 쏟아내듯 말하다가 눈물을 흘렸는데, 통곡까지 해버렸다. 아마 그분이 처음으로 나의 상처에 대해 물어봐줘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쏟아버린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과거를 되풀이하다보니 우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죄책감이 늘었고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객관적으로 내 상황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는 걱정이 정말 벌어질 일인지, 나와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정말 나에게 향한 것인지, 내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공정한지 등등에 대해. 지금도 가끔은 과거가 몰려와서 우울로 끌고 갈 때가 있지만 떨쳐내는 시간이 빨라졌다. 가족과는 관계는 여전히 편하지 않지만 그런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안한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되도록 빨리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안전기지'를 찾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해서 불안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이러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대인관계의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에게서 받은 트라우마는 편안한 대인관계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안정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에게 잘 맞습니다. 갑자기 화를 내고 폭력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편안한 대인관계를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편안한 대인관계는 자신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안전기지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안전기지를 만들 수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이 책은 1부 '불안편', 2부 '우울편', 3부 '트라우마편', 4부 '분노편', 5부 '실전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는 제목 그대로 '불안편'에서는 불안도가 높아서 걱정이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사례와 해결 방법을 풀어내었고, '우울편'에서는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에 맞추며 살아오다가 인생의 목표를 잃고 우울증에 걸린 사례들이 나온다. '트라우마편'은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사례, '분노편'은 신체적인 부상이나 어린 시절 경험으로 인해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사례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실전편'에서는 예민한 성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즉 예민함을 장점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나쁜 기억 대신 좋은 기억을 만들고 좋은 생활리듬을 만들고 방어기제를 알아보고 가족과 분리 개별화를 하는 것!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다면 정말 좋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족 중에 매우 예민한 사람이 있다면 시간을 내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봅시다. 좋은 기억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만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식사를 하거나 여행할 장소를 정할 때 예민한 분의 의견을 항상 듣고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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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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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가 빠져나간 장소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그 빈 곳을 채운다고..

그래서 사람이 많이 보여있던 장소에 귀신 이야기를 비롯한 괴담이 많은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사람이 많이 있다가 빠져나가는 장소들을 떠올려 보았다.

지하철역, 시장, 마트, 백화점, 공장, 놀이동산, 클럽, 수영장, 그리고 학교.

사람들이 있을 때는 평범하게 다가오는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을 빼고나니 낯설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를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가 등장한다. 그중에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해가 떠있는 동안에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학교에서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빈 교실과 복도, 화장실, 운동장이 남는다. 사람이 없는 곳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채운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기 시작한다. 한때는 사람이었던 때의 이야기를.


공포성장설 엔솔러지 『스터디 위X』은 오랜만에 보 학교 괴담으로 6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학교가 배경인 만큼 소설에는 입시 경쟁, 학교 폭력, 성적 서열화, 왕따, SNS의 폐해 같은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카톡 감옥>(윤치규)는 실제로 눈앞에 무서운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는 소설로 제목 그대로 단체 카톡방이 초대된 아이들에게 감옥같은 공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방에서 빠져나가면 끝없이 계속 초대하는 사이버폭력인 카톡 폭력인데, 그 방을 만든 아이의 말과 행동이 무섭다. 만약 영상물로 만든다면 카톡 소리와 빠르게 움직이는 카톡 화면 만으로도 굉장한 긴장감을 줄 것 같다.

<영고 1830>(권여름)는 성적 서열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명문고로 불리는 영고에 입학하지만 학 한년에 8반, 한 반에 30명이 있는 이 학교에서 학번 1830은 성적이 꼴찌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입학생을 성적 순으로 학번을 매기는 이 학교에서 매년 1830번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슬픈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수구 아이>(나푸름)는 첫 장면과 누군가에게 들은 장면이 섬뜩하다. 하지만 진실을 밝힐수록 섬뜩했던 장면은 슬픈 장면으로 바뀌어 간다. 하수구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누구이며 누가 그런 이름을 붙여줬을까.

<우리가 이곳에서>(은모든)은 몽환적이고 동화적이다. 수업 중인 교실에서 반장 윤재가 교사 미진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소설의 시작이다. 미진의 첫사랑은 어떻게 되었는지, 윤재는 왜 미진에게 자꾸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지...끝까지 읽고 나면 아련한 느낌이 든다.

<그런 애>(조진주)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는 솔희와 그런 솔희를 바라보는 반 아이들과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SNS는자신나의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이면서도 가장 자신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공간이 아닐까.

책에 담긴 6편의 소설에는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과는 아주 많이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는 분위기가 숨어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과 그 시절의 학생들을 둘러싼 표피는 달라졌지만 공동체의 내부에 떠다니고 있는 긴장과 불안, 활기찬 에너지가 뒤섞인 그런 공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가끔 아이들과 교실에 남아서 놀 때가 있었다. 한참 수다를 떨면서 과자를 먹다가 우연히 시작되었던 무서운 이야기에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던 학교가 배경일 때가 많았다. 만년 2등이 1등을 옥상에서 밀어서 죽인 다음부터 나타나는 1등 귀신, 학교 앞 사거리에서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비가 오는 날마다 다시 교실로 찾아온다는 학생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그때 무서운 이야기를 참 좋아해서 많이 보고 들었는데, 이번에 내가 읽으려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스터디 위드X』가제본을 딸이 보더니 재미있겠다며 기말고사 끝나면 자기도 봐야겠다며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뻤다. 그리고 열일곱 살이었던 내가 잠깐 떠올라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구석이 드러난다. 불편해서 드러내지 않는 어두운 구석의 이야기는 괴담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이렇게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라고.

#창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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