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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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가 빠져나간 장소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그 빈 곳을 채운다고..

그래서 사람이 많이 보여있던 장소에 귀신 이야기를 비롯한 괴담이 많은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사람이 많이 있다가 빠져나가는 장소들을 떠올려 보았다.

지하철역, 시장, 마트, 백화점, 공장, 놀이동산, 클럽, 수영장, 그리고 학교.

사람들이 있을 때는 평범하게 다가오는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을 빼고나니 낯설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를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가 등장한다. 그중에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해가 떠있는 동안에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학교에서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빈 교실과 복도, 화장실, 운동장이 남는다. 사람이 없는 곳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채운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기 시작한다. 한때는 사람이었던 때의 이야기를.


공포성장설 엔솔러지 『스터디 위X』은 오랜만에 보 학교 괴담으로 6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학교가 배경인 만큼 소설에는 입시 경쟁, 학교 폭력, 성적 서열화, 왕따, SNS의 폐해 같은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카톡 감옥>(윤치규)는 실제로 눈앞에 무서운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는 소설로 제목 그대로 단체 카톡방이 초대된 아이들에게 감옥같은 공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방에서 빠져나가면 끝없이 계속 초대하는 사이버폭력인 카톡 폭력인데, 그 방을 만든 아이의 말과 행동이 무섭다. 만약 영상물로 만든다면 카톡 소리와 빠르게 움직이는 카톡 화면 만으로도 굉장한 긴장감을 줄 것 같다.

<영고 1830>(권여름)는 성적 서열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명문고로 불리는 영고에 입학하지만 학 한년에 8반, 한 반에 30명이 있는 이 학교에서 학번 1830은 성적이 꼴찌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입학생을 성적 순으로 학번을 매기는 이 학교에서 매년 1830번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슬픈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수구 아이>(나푸름)는 첫 장면과 누군가에게 들은 장면이 섬뜩하다. 하지만 진실을 밝힐수록 섬뜩했던 장면은 슬픈 장면으로 바뀌어 간다. 하수구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누구이며 누가 그런 이름을 붙여줬을까.

<우리가 이곳에서>(은모든)은 몽환적이고 동화적이다. 수업 중인 교실에서 반장 윤재가 교사 미진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소설의 시작이다. 미진의 첫사랑은 어떻게 되었는지, 윤재는 왜 미진에게 자꾸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지...끝까지 읽고 나면 아련한 느낌이 든다.

<그런 애>(조진주)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는 솔희와 그런 솔희를 바라보는 반 아이들과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SNS는자신나의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이면서도 가장 자신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공간이 아닐까.

책에 담긴 6편의 소설에는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과는 아주 많이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는 분위기가 숨어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과 그 시절의 학생들을 둘러싼 표피는 달라졌지만 공동체의 내부에 떠다니고 있는 긴장과 불안, 활기찬 에너지가 뒤섞인 그런 공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가끔 아이들과 교실에 남아서 놀 때가 있었다. 한참 수다를 떨면서 과자를 먹다가 우연히 시작되었던 무서운 이야기에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던 학교가 배경일 때가 많았다. 만년 2등이 1등을 옥상에서 밀어서 죽인 다음부터 나타나는 1등 귀신, 학교 앞 사거리에서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비가 오는 날마다 다시 교실로 찾아온다는 학생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그때 무서운 이야기를 참 좋아해서 많이 보고 들었는데, 이번에 내가 읽으려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스터디 위드X』가제본을 딸이 보더니 재미있겠다며 기말고사 끝나면 자기도 봐야겠다며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뻤다. 그리고 열일곱 살이었던 내가 잠깐 떠올라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구석이 드러난다. 불편해서 드러내지 않는 어두운 구석의 이야기는 괴담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이렇게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라고.

#창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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