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에세이는 씩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
명랑하고 긍정적인 작가의 글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가다가 시원하고 맑은 시냇물과 만나는 기분이 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에 SBS아나운서로 입사한다. 마지막 뉴스 방송 클로징에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눈물을 닦는 박선영 아나운서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의 팟캐스트가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일이라고 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상상 속 아나운서의 모습과 현실 속 아나운서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 입사 1년 만에 다른 직업을 몰래 알아보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서 불행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결국 작가는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뒤 퇴사를 선택한다.
자신의 불행을 실패하고 생각했던 작가는 "퇴사는 마음이 가난했고 행복하지 않았던 내가 나를 지키고 다시 한 번 생명력을 틔워보려고 했떤 꽤나 절박했던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에 아나운서가 되었고 어린 시절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모든 것이 빨랐던 작가의 삶은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어린 나이에 성공했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의 평가는 자신의 행복과 크게 않는다. 내게 있는 행복의 가치는 자신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이다.
불행의 감정을 실패에서 찾았으며 그 원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 작가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겠다는 선언도 한다. 아직 어린데,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책임진다는 말이 멋지게 들렸다.
20대 중반에 퇴사를 결심하고 자신의 시간을 써서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한 작가에게는 누구보다 멋진 부모님들도 함께 했다.
나는 특히 "날개 달았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렴."이라고 보낸 엄마의 문자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자식이 하는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는 그 말이 자유를 향해 새로운 길로 나아가다가 넘어지더라도 언제든지 돌아올 곳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든든한 믿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토록 씩씩하고 명랑한 20대를 보내고 있는 작가를 보면서 아직도 그늘에 묻혀 있는 나의 20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각자 1인분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던 우리 가족은 실패는 곧 끝이라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 한 점 주지 못한 채 살았다. 직장이 없는 시기에는 비난이 쏟아졌고 그로 인해 연락이 자주 끊겼다. 힘든 마음을 털어낼 수 있는 가족이 없었던 탓에 불행의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워진 시기였다. 그런 20대 때 나는 자주 아팠고 파괴되었다는 감정을 느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지금은 내게도 10대, 20대 아이들이 있다. 내가 받았던 상처를 아이들에게 혹여라도 되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주 감정을 정리하고 일관성 없는 태도는 진작에 버렸다.
나는 이 책에 대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린 나이에 아나운서가 되었고 퇴사했다가 블로그에 글을 써서 책을 출간했으며 로스쿨 자격 시험을 준비하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유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어떤 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아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든든한 믿음으로 지탱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날개 달았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렴.'
순간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런 맥락도 없는 뜬금없는 말. 날개가 뭘 의미하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내게 무슨 날개가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퇴사한 나는 날개가 떨어진 상태가 아니었을까. 퇴사한 내게 무슨 날개가 있다는 건지, 수수께끼 같은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날개?' 하고 물으니 잠시 뒤 엄마는 달랑 두 글자를 보내왔다.
'자유.'
도망치는 게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