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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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순식간에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구멍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던질 것인가.

만약 그 구멍의 존재를 알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찾을까, 찾을 수 없도록 숨길까.

희연이 속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까만 구멍을 향해 던진 돌멩이는 잠깐 떠 있다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빨려 들어갔다. 그 뒤로 돌멩이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구멍을 향해 던진 모든 것들은 부서지면서 사라졌다. 돌멩이에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구멍을 응시하던 필희도 그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 구멍의 존재를 알게 된 필희의 실종 이후 희연은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품고 살아가게 된다.

필희는 까만 구멍을 골똘히 쳐다봤다. 희영이 던진 돌이 공중에 떠 있다가 가루가 되어 빨려 들어가는 걸 숨죽이고 응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라졌다. 희영이 던진 돌처럼 감쪽같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미확인 홀/ 김유원



『미확인 홀』은 작고 평온한 마을에 생긴 정체불명의 구멍과 관련된 인물들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서사는 상실로 인한 상처에 기인하고 있다. 동시에 상처는 상실의 범위를 넓혀간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상처이기에 허공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것처럼 위태로운 순간들이 쌓이면서 삶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사라진 사람은 아무 말도 없고 남아있는 사람은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의 상실은 고독하다. 깊은 상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얼마 되지 않을 터이니.

은수리에서 처음 미확인 홀을 발견한 희영은 절친 필희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필희는 홀에 던진 돌멩이가 사라지는 순간을 오래 응시했다. 그리고 다음날 실종되었다. 홀로 빨려들어갔는지 다른 곳으로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필희가 '사라졌다'는 사실만의 중요한 것이다.

필희가 사라진 뒤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오직 '사라진' 필희에게 집중되어 버렸다. 세월이 흐르고 다른 일을 해도 마지막에는 필희의 부재가 당연한 수순처럼 삶의 중심에 고여 있었다. 너무 오래 고여 있어서 그것이 자신들의 삶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오랫동안 아팠다.

상실에서 오는 상처를 숨기면서 매끈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꾸몄던 희연의 가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블랙홀'이라는 단어가 적힌 쪽지 한장에서 시작된다. 희연에게만 상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희연의 남편, 사라진 필희의 동생 필성. 은정의 아빠와 도망친 순옥.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 활발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을 피해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길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과거의 상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얼굴 뒤에도 상실과 상처는 존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삶은 상실로 인한 공동까지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상처가 깊은 사람일수록 비어있는 공동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상실을 오래 겪은 사람일수록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 속에 호수 밑으로 사라지는 일몰의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아파서 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일들이 떠올랐다.

필성은 말했다. 매미가 울면 매미를 봐야 한다고.

매미가 울면 매미를 봐야죠. 매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요. 저러다가 미쳐서 죽는 거라고요.

미확인 홀/ 김유원

소설을 읽으면서 필성의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매미의 울음을 탓하기 전에 우는 매미를 봐야 하는데, 다른 이의 상실과 상처를 들여다보려는 노력 없이 그 일은 쉽지 않다. 지금도 수많은 매미들의 울고 있는데 그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탓하는 소리들만 많은 것 같다. 너무 쉽게 잊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오래도록 겪는 상실은 고독하지만 여럿이 나누는 상실은 덜 고독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부수고 빨아들이는 미확인 홀의 존재가 남은 사람들의 삶까지 사라지게 하지 않도록 연결의 고리들이 단단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미확인 홀』은 희연이 은수리에게 처음 발견한 블랙홀 이후 필희의 실종,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는 싱크홀과 비슷한 미확인 홀이라는 시작으로 다소 미스터리하게 시작하지만 서사의 내부는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 차있다. 따뜻한 봄볕 아래에서 펼치면 좋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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