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서 작가는 처음에는 결정하는 저울질이 물건의 유용성과 예산을 비교하는 데서 시작되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추억의 가치나 브랜드의 윤리성, 여성으로서 느끼는 사회적 압박 같은 것들이 올라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올라가는 물건들과 반대로 올라갔지만 내리는 것들. 그러게 올리고 내리는 저울질의 반복 속에서 작가의 사유는 성장하고 바뀌고 넓어졌나보다.
이다희 번역가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를 번역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필한 고 이윤기 번역가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번역하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라온 이다희 번역가는 아버지 생전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첫 권을 함께 작업하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혼자서 6년 동안 작업하여 총 10권을 완간했다고 한다.
작품에 번역가의 이름은 작게 기록되지만 번역에 따라 작품은 크게 달라진다. 오역과 어색한 번역은 작품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의 양쪽 어깨는 참으로 무거울 것 같다.
몇 년 전 여름 <하얀 국화>를 읽고 한동안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그 책의 번역가가 바로 이다희였다. 아버지와 딸, 두 분 모두 어쩌면 이렇게 훌륭한 번역을 하는 건지 존경스럽다..
누구가 물건을 고를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가성비라는 말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요즘 소비생활 속에서도 가성비 외에 나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만드는 또다른 기준 같은 것.
이다희 번역가는 첫눈에 반한 물건을 선택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책상을 사러 갔을 때의 일화는 귀엽고 따뜻한 그림처럼 그려진다. 소공녀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것 같은 덮개가 있는 책상을 고르는 아이. 나는 살아가면서 그런 적이 별로 없기에 아이의 의견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흔쾌히 받아들여주시는 부모님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물건을 사는 마음은 바이올린, 책상, 종이에 이어 집까지 이어진다. 이다희 번역가가 저울에 올린 물건들은 가성비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별로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금방 써버려서 사라지는 물건이 아닌 이상 물건은 오래도록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좋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낡은 물건들이 꽤 많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성비나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샀던 물건들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오랜 결혼이 끌고 온 그림자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 후 재택근무를 하며 꾸준히 일을 했지만 돈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가성비로 거의 들여놓은 물건들이다. 그나마 내가 좋아해서 고르는 물건이라면 책과 커피 정도인 것 같다. 외모를 꾸미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옷도 신발도 별로 없다.
요즘은 필요하면 당근에서 가장 마음에 들면서 가성비가 좋은 물건을 선택한다. 녹색당에 가입하면서부터는 더욱 새로운 옷은 아예 사지 않는다. 옷도 가방도 오래된 것들 뿐이지만 나는 책은 읽고 싶은 순간 바로 사는 편이다. 그게 부담스러울 때는 이렇게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그리고 커피에는 진심이어서 향과 산미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만들거나 드리퍼나 클로버로 원두를 내려 마신다. 나이가 들면서 필요한 물건은 최소한으로 내게 기쁨을 주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저울에 올려놓아야 할 물건들의 목록이 좀더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