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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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에 시작된 독거 생활로 인해 작가의 스타벅스 일기가 탄생했다.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딸 정하가 독립한 다음 혼자 집에 남게 된 작가는 '절망의 늪에 빠진 기분'을 느꼈다. 만사 무기력하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고 식욕도 없는 등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고, 현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게 되는 철저한 집순이가 되었다. 게다가 일은 쌓이는데 마감이 가까운 글도 써지지 않는 이른바 '빈둥지증후군'이었다. 다행히 더 늦기 전에 작가는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를 찾았고, 그때부터 스타벅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매장 직원이나 주변 손님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자유롭고, 오픈된 장소여서 혼자 있는 방종을 막아주어 공부나 작업이 능률적이었다.

나는 나무늘보보다 움직임이 적은 인간이었는데, 스타벅스에 다니는 덕분에 매일 최소한 왕복 2킬로미터 이상 걷게 됐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빈둥지증후군도 낫고 일석삼조.

나의 스타벅스 일기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스타벅스 일기

이 책은 작가가 스타벅스에 출근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담았다. 계절별로 따뜻하고 재미있고 아차했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나도 동네 스타벅스의 풍경과 그곳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리 동네에는 두 개의 스타벅스가 있다. 이름은 같지만 인테리어와 분위기,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나 직원들의 성향이나 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집에서 좀 더 떨어진 스타벅스는 넓은 내부에 음악소리가 크고 직원들의 목소리가 메뉴얼에 따른 것처럼 균일하다. 그리고 젊은 카공족이 많다. 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스타벅스는 규모가 넓지 않고 음악소리도 작고 직원들은 동네 카페처럼 친근하다. 이곳은 카공족보다는 수다족이 많은 편이다.

나는 스타벅스를 출퇴근하듯 간 적이 없지만 만약 그렇게 자주 갔더라도 작가처럼 스타벅스 일기를 쓸 생각은 못했을 것 같다. 늘 글을 읽고 다듬고 만지는 사람은 주변 풍경도 글처럼 읽고 다듬고 만지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작가는 옆 테이블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스벅 베이비시터’를 자처하기도 하고, 당근마켓 게시판에서 이어폰을 잃어버린 사람의 호소를 보고 일면식 없는 사람의 물건을 찾아주러 매장 앞 버스 정류장으로 출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출한 딸을 찾아 스타벅스에 왔다가 무시만 당하고 돌아선 옆자리 중년 여성을 안타깝게 보다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엄마로서의 동병상련을 나누기 하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구절을 떠올리며 스타벅스 별 모으기도 한다.

작가의 직업이 번역가인지라 스타벅스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겪는 와중에 일을 하는 장면들도 곳곳에 나온다. 작가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일본 소설을 스타벅스에서 번역하고 있는 장면이 재미있었는데 그 이유는 번역 내용과 주변 사람들의 수다에 섞인 내용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말해보자. 작가가 번역한 페이지에는 취준생이 된 주인공 커플은 버스를 타는 대신 스타벅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마시며 집까지 걸어가는게 큰 즐거움인데 부모님의 생활비 지원이 끊기자 스타벅스 커피는 편의점 커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 의기소침했지만 드디어 취업에 성공하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귀가한다. 그러면서 남자는 "나의 목표는 너와의 현상유지야"라고 늘 말했지만 꽃다발을 현상 유지하지 하기는 어려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작가가 오랜만에 이런 연애소설을 번역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 여성들이 누구네 남편 바람피운다는 내용의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작가는 꽃다발 같은 사랑을 번역했지만 중년 여성들의 "꽃다발 같은 사랑은 결국 만지자마자 바스러지는 드라이플라워의 말로를 맞이한 것"이라는 시선 변화라는 웃픈 결말로 나아간다.

겨울에서 시작되어 가을에 마무리한 이 일기장에는 익숙한 스타벅스 메뉴와 함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느슨하면서 따뜻한 관계가 그려져있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이 책을 읽으면 미소가 살포시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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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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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식의 책을 처음 읽어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글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가진 세 사람이 서로의 일기를 읽고 팟캐스트에서 수다를 떠는 형식.

이 책은 2021년 가을에 시작한 팟캐스트 〈일기떨기〉의 회차 가운데서 좀더 깊이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골라서 ‘나와 인생’‘우리와 관계’‘취미와 취향’에 관해 묶고, 다듬어서 새로운 대담으로 꺼내 놓았다. 솔직한 이야기 속에 다르면서도 닮은 서로의 말들이 서로 부대끼며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1부 "이번 생엔 이렇게 살 수밖에" 에는 누구 하나 좋다는 사람 없이 후회막심인 이십 대를 뒤로하고 이젠 “지나치게 하나의 나에게 집중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무장한 세 사람의 인생관이, 2부 "기대 않던 마음에도" 에는 결혼에 관심 없는 세 사람의 결혼식 로망을 비롯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적 고백이 담겨 있다. 그리고 3부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방법" 에는 이들 세 사람이 밝힌 지금의 삶을 가치 있게 돌보는 방법이 담겼다.

그럼 여기에 나오는 세 사람은 누구인다. 나는 이 중에서 천선란만 알고 있지만 세 사람을 모두 소개해보자면,

《천 개의 파랑》《나인》《노랜드》《이끼숲》에서 우주와 회복의 서사를 경이로운 통찰과 상상으로 구현해내는 SF 소설가 천선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아무튼, 아이돌》을 통해 한 해의 플레이리스트만 1700곡에 달하는 아이돌 덕후이자 십수 년 차 참된 일기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 에세이스트 윤혜은, 주짓수부터 제과제빵, 점심시간에 하는 요가까지 다부진 취미 부자 편집자 윤소진이다. 모두 글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로 일기의 내공과 입담의 내공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세 사람의 일기를 읽고 수다를 듣는 동안 나는 그들이 점점 더 부러워졌다. 나는 그 시기에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으며 이렇게 살아가지 못했나 싶어서. 동일한 형태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생각을 일기에 솔직하게 쓰고 여럿 속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일기에서조차 나는 솔직하지 못했고 나의 생각을 숨겼다. 그리고 이제는 솔직하게 쓰고 말하자고 결심을 한 지금 나이에 와서는, 글과 말의 알맹이가 쪼그라들어서 쓸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했었더라면, 이런 말을 내뱉게 하는 후회는 언제나 내 몸 구석마다 커피 찌꺼기처럼 남아있어서, 가끔 나는 나를 살아가는 시간들이 쓰다.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물론 너무 급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 미성숙할 때 도전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오랫동안 타오르지 않을 것도 알고요. 분명 어느 순간 나는 모든 불을 잠시 끄고 딱 하나의 불씨만 키워둘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조금 더 대범해지는 것 같아요.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따뜻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읽다가 나의 후회 가득한 시간들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서 시간을 쓰게 물들이고 있을 때 천선란 작가의 "어느 순간 나는 모든 불을 잠시 끄고 딱 하나의 불씨만 키워둘 거라는 사실" 이라는 말을 읽고, 들었다. 그순간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면서 쓴 시간들이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시간이 되었다는 듯 일기장 없이 일기를 쓰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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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헤리티지 - 공단과 구디 사이에서 발견한 한국 사회의 내일
박진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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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구로동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을 통해 보이는 것처럼 열악한 노동환경의 구로공단으로 대표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구로동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입주해 있던 기업들이 하나둘 줄어가기 시작하면서 1995년에는 노동자 수가 4만 2천명까지 줄어들었다. 1970년대 후반에 약 11만 명이 구로공단에서 종사하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노동자 감소 폭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와서는 정부 주도로 IT 첨단 산업 단지로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구로단지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동시에 많은 부분들이 변해갔다.

오래되고 낡은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형 공장들이 세워졌고 제조업 중심이었던 산업은 출판, 영상, 방송통신, 정보서비스업으로 변해갔다. 좁고 어둡고 분진 날리는 열악한 환경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열악한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살게 되었다는 것도 내가 아는 사실. 자,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사실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다. 그럼 이제부터 그로동에서 태어나 24년을 살고 있는 구로동 토박이인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내가 아는 기본 정보와 구로동이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나는 구로동에 산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다른 곳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내게 '우리 동네'는 언제나 구로동이었고, 가장 잘 아는 동네 또한 구로동이었다. 그렇게 구로동은 내 몸과 마음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나 또한 구로동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며 살아왔다. 내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있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러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다. 나에게 구로동은 그런 동네다.

구로동 헤리티지

구로동에 대한 이미지로 동네를 판단하는 곳과 구로동에 살면서 동네를 느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는,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의 시선으로 스치거나 들여다보는 것과 그 지역의 일부로서 시간을 부딪히며 살아온 내부의 시선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외부의 시선으로 평가받으면 지표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몇 개의 키워드로 분석하는 외부의 시선과 달리, 내가 살아가는 곳에는 키워드로 분석할 수 없는 시간의 흔적들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로동에서 낳고 자란 작가는 사람들이 외부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인 '구로공단, 디지털 단지 중국인' 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수긍하면서도 자신이 경험한 구로동을 그것만으로 떠올리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는 세 가지 키워드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와 담론이 존재한다는 상기시키며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를 익숙하지만 낯설게 산책하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이 책은 그 이면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미지 너머의 구로동과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동네 사냐"라는 질문에 "구로동 살아요" 라는 짧은 답변과 함께 생략했던 말을 복원하는 과정이자, 익숙하지만 낯설게 동네를 탐험하는 산책기이다.

구로동 헤리티지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구로동에서 살아가는 작가와 작가 주변이 이야기를 담아냈다. 구로동의 모습과 그것을 관통하는 이야기, 자신이 체감한 구로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았다. 구로동에서 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생생한 구로동의 이야기가 편안한 시선 속에 흘러가는 부분이다. 2부는 구로동에서 일을 하거나 했거나 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3부는 중국인 밀집 지역으로 알려진 구로동의 이방인과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담과 동네를 다니면서 느꼈던 수많은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구치소였던 자리에 (고도제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초고층 아파트가 생겨나고 공단이 아닌 초고층 공장들이 들어서는 외적 풍경과 더불어 부모님이 말하는 구로동과 자신이 알고 있는 구로동의 간극, 노동과 민주 운동에 대한 생각까지 더듬어볼 수 있다.

구로동을 외부의 매끈한 시선으로 훑어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부의 날 것 그대로의 시선에서는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라면 구로공단 시절과 변하지 않는 사회의 태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산업 역군으로 치켜세우면서도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노동 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면 목소리를 누르기에 바빴던 것은 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바뀌고 초고층 건물들이 세워진 다음에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산업 단지의 구성원이 젊고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빠르고 일자리 창출이 이어진다는 점은 역동성의 요소로 여겨지지만 비정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는 노동 환경을 보면 씁쓸해진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했던 40여 년 전 여공드의 삶과, 최저 임금을 간신히 준수하는 월급으로 장시간 노동에 임하는 디지털 단지 노동자의 삶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누군가는 "그래도 옛날보다 좋아졌지"라고 말하겠지만, 정말로 모두가 노동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구로동 헤리티지

나는 이방인과 소수자에 대한 3부를 읽으면서 차별과 혐오가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며 상업적으로 이용하는지, 그렇게 양산된 차별과 혐오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종착지에는 어떤 사회가 존재하고 있을지. 작가는 홍세화 작가의 "강자의 폭력이 구조적이고 일상적이라면 약자의 폭력은 삽화적이고 선정적이기에 더 쉽게 표면으로 드러난다" 는 주장을 인용하며, 재외 동포의 폭력적인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불안을 심어 주는 관련 영화가 만들어 내는 혐오 시선을 비판한다. 혐오를 담아 공포를 심어주는 영화들에는 범죄의 원인을 악한 소수자에게 찾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시스템의 문제를 고찰하지 않은 채 유능하고 힘이 센 사람에 의해 범죄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영화는 혐오를 내재화한다.

구로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생각이 담긴 이 책은 읽기 편하면서도 생각할 지점들을 제공한다. 교과서처럼 딱딱한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네를 여러 시선으로 관찰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배워간 구로동을 만져가며 체득한 진심이 담긴 책에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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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연금책 - 놀랍도록 허술한 연금 제도 고쳐쓰기
김태일 지음,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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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받아서 문제인가

많이 받아서 문제인가?

위기에 빠진 한국 연금 제도의 현주소!

우리만 몰랐던 이상한 연금, 그 불편한 진실을 만나다

불편한 연금책

연금개혁에 대한 논쟁과 갈등이 뜨겁다. 국민연금의 고갈에 대한 불안과 함께 사각지대가 넓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할 거라도 불안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에 의하면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발표하고 재정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3년에 첫 추계가 이뤄졌기 때문에 끝자리가 3과 8인 해마다 추계 결과와 필요한 조치를 발표한다. 그래서 계속 의구심과 불안에 둘러싸여 있던 연금에 대한 불만이 현재 뜨겁게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보험료율, 수급개시연령, 소득대체율 등의 구체적인 수치가 빠져 있어서 '맹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금개혁을 이끌 유일한 협의 기구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1기, 2기를 지나 현재 3기 출범을 하고도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구성을 포함해 세부 일정과 절차 등 운영 전반에 대한 설계도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앞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는 국회에서 열린 연금특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연금 모수개혁 대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13%로 현재보다 4% 포인트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로 7.5% 포인트 올리는 내용으로, 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수급 개시 연령이 되었을 때 연금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개혁안은 보험료율이 15%로 6% 포인트 올라가지만 소득대체율은 오히려 40%로 2.5% 포인트 떨어지는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안이다. 만약 이 개혁안을 시행했을 경우 월 300만원을 버는 가입자의 보험료가 27만원에서 45만원으로 오른다.

개혁안을 두고 젊은 세대에서는 '연금제도 유지를 위해 지나치게 미래세대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연금개혁이 이뤄진다면 수급 개시연령에서 멀어질수록 인상된 보험료를 내야 하는 시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세대의 연급 수급액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연금개혁은 미래세대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현재 최악 수준인 노인빈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연금개혁은 대다수 사람의 노후 소득, 그리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가장 중요한 복지와 재정 과제이며 중간에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받아 완성해야 하는데 현재 정치 상황을 보면 연금개혁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불편한 연금책》의 저자 김태일 고려대학교 교수는 "오늘날 인터넷과 에스앤에스를 떠도는 국민연금에 관한 이야기들은 사실일까? ‘일부는 진실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연금을 잘 모른다. 우리가 더 잘 알수록 연금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라는 대답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연금 개혁이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양한 연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운영 방식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 연금이 우리의 노후를 보장하려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갈등과 불만이 뜨거운 이유는 국민연금이 지닌 한계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이 짧고 사각지대도 넓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연금은 내는 것의 두 배를 노후에 받도록 설계되어 있는 구조로 인해 노령화와 저출생으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노년층은 노후 보장에 턱없이 적은 액수가 불만이고,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부담할 몫만 커지고 혜택은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 불만이다.

이러한 국민연금의 한계에 대해 저자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보험료를 내게 해서 재정을 튼튼히 하고/ 취약 계층과 사각지대를 없애서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 하고/ 보험료를 올리고 나중에 받는 돈은 줄여 재정 건전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퇴직연금, 기초연금 등을 개선하여 충분한 노후 소득을 보장하고/ 미래 기금 등을 통해 세대 간 공정성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개혁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가입 기간 늘리기’를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몇 가지를 내놓고 있다. 가입 상한 연령을 높이기. 군 복무 기간 전체 인정하기. 출산 크레딧 확대하기. 18세 자동 가입하여 납부 기간 늘리기. 싱업 크레딧과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하기. 거기에 국민연금 개혁만으로는 연금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는 인구 변화에 대응해 기금의 재정 안정성을 유지하고 세대 간 공정성 확보가 시급한 시기에 도달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개혁안 표류와 맹탕 개혁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정작 시급한 문제가 물에 떠있는데 노를 다른 곳으로 저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다.

현재 연금이 문제가 많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불안감이 커졌지만 정작 연금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연금과 연금개혁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연금개혁과 관련된 불안과 진통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한 문제들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에서나 사회 일반에서 일상적으로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마지막으로 책에 나오는 '코끼리 옮기기' 비유가 현재 연금개혁 논쟁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장을 옮겨보고 글을 마무리한다.

​-

흔히 연금 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된다.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까 단단히 뿌리내린 탓에 개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옮기려 했으나 꼼짝하지 않은 탓에 결국 제자리에 머문 경우도 많고 심지어는 코끼리에 밟혀 죽은, 즉 정권이 바뀐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고 제 역할을 못 할 뿐만 아니라, 그대로 두면 병들어 죽을 게 뻔한 코끼리를 방관만 할 수는 없다. 힘들어도 옮겨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옮기기로 했으면 성공해야 한다.

/ 불편한 연금책/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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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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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인간중심'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나는 차라리 '인간 매개'라고 하고 싶다. 중심에서 매개가 되는 것, 게다가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는 것. 인간에게 특출난 지적 능력이 주어진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지금껏 그것을 물질적·양적 성장 및 팽창 그리고 생태계 파괴에 써왔다면 이제는 다른 존재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데 전적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공멸을 막고 공존을 현실화하기 위한 온갖 '다리 놓기매개)'를 자처하는 것은, 탈인간적 접근의 핵심이다.

이렇듯 인간이란 협소한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다른 존재들, 타자이다. 고로,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타자에 주목하는 것은 탈인간의 출발점이다.

탈인간 선언/ 들어가며 p13

《아무튼, 비건》에서 오직 죽기 위해 태어나는 동물들, 즉 식용을 위해 생산되고 처리되는 공산품으로 취급받는 공장식 축산에서 희생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보여주며 비거니즘 물결을 일으켰던 김한민 작가가 생태. 기후 위기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은 첫 칼럼집 《탈인간 선언》을 출간했다. 작가는 약 3년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 '탈인간'에 이야기를 덧붙여 칼럼집을 내어놓았다.

이 책을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처음 펼쳤다. 무게가 가벼운 책이라 무심코 가방에 넣었다가 마침 자리가 나서 앉은 김에 꺼내들었던 참이었다. 지하철은 움직이고 펼친 첫 페이지는 만만치 않았다.

인도주의. 인본주의. 휴머니즘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전제를 깔고 오랫동안 당연한 진리로 여겨져왔었다. 하지만 인간 중심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무조건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긍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인간적인 것은 더 이상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따져 묻고 싶을 수도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최소한 산업혁명 때부터) 추구해온 삶의 양식만 (앞서 말한) 생태적 파국을 불러왔"다는 문장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해도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문제 의식에서 탈인간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에 대한 논의는 더욱 가열되는 것 같았는데, 늘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흐지부지되었으며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역시 은근슬쩍 이루어지고 말았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고 재활용품 분리 수거를 잘 하고 새로운 물건을 사지 말 것을 개인에게 강조하는 캠페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정작 기후를 망치는 작동을 멈추지 않는 세계 100대 기업이나 10%의 인류는 그러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다. 모두 인간이지만 환경을 망치는 책임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있지 않다.

1부는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 정책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2부에서는 결과중심주의, 기술만능주의, 물질주의, 성장·발전에 대한 예찬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모두 환상으로 치부했던 '타자와의 연대'를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한다.

한동안 '카르텔'이라는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에 짜증이 난 적이 있었다. 카르텔을 쥔 쪽에서 카르텔 척결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이 책에서 "가장 깨기 힘들고 큰 것이 바로 성장과 개발의 카르텔"이라는 말이 정말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과 개발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환경 보호나 소수자 보호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는 듯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치워버리는 성장과 개발의 카르텔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가가 치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책이었다.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텀블러와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감추는 내 자신도 부끄럽고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면서도 고기를 놓지 못하고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것 같은 허약한 의지도 참담하다. 성장의 카르텔을 응원하는 축도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반대의 축에서 노력을 한 적도 없었기에. 제목만 보고 탈인간을 비웃는 사람이 없기를. 인간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타자와의 공존을 통할 때만 헛된 희망이 아니라 참된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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