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처음 펼쳤다. 무게가 가벼운 책이라 무심코 가방에 넣었다가 마침 자리가 나서 앉은 김에 꺼내들었던 참이었다. 지하철은 움직이고 펼친 첫 페이지는 만만치 않았다.
인도주의. 인본주의. 휴머니즘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전제를 깔고 오랫동안 당연한 진리로 여겨져왔었다. 하지만 인간 중심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무조건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긍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인간적인 것은 더 이상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따져 묻고 싶을 수도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최소한 산업혁명 때부터) 추구해온 삶의 양식만 (앞서 말한) 생태적 파국을 불러왔"다는 문장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해도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문제 의식에서 탈인간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에 대한 논의는 더욱 가열되는 것 같았는데, 늘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흐지부지되었으며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역시 은근슬쩍 이루어지고 말았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고 재활용품 분리 수거를 잘 하고 새로운 물건을 사지 말 것을 개인에게 강조하는 캠페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정작 기후를 망치는 작동을 멈추지 않는 세계 100대 기업이나 10%의 인류는 그러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다. 모두 인간이지만 환경을 망치는 책임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있지 않다.
1부는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 정책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2부에서는 결과중심주의, 기술만능주의, 물질주의, 성장·발전에 대한 예찬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모두 환상으로 치부했던 '타자와의 연대'를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한다.
한동안 '카르텔'이라는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에 짜증이 난 적이 있었다. 카르텔을 쥔 쪽에서 카르텔 척결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이 책에서 "가장 깨기 힘들고 큰 것이 바로 성장과 개발의 카르텔"이라는 말이 정말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과 개발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환경 보호나 소수자 보호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는 듯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치워버리는 성장과 개발의 카르텔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가가 치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책이었다.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텀블러와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감추는 내 자신도 부끄럽고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면서도 고기를 놓지 못하고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것 같은 허약한 의지도 참담하다. 성장의 카르텔을 응원하는 축도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반대의 축에서 노력을 한 적도 없었기에. 제목만 보고 탈인간을 비웃는 사람이 없기를. 인간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타자와의 공존을 통할 때만 헛된 희망이 아니라 참된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아차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