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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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인간중심'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나는 차라리 '인간 매개'라고 하고 싶다. 중심에서 매개가 되는 것, 게다가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는 것. 인간에게 특출난 지적 능력이 주어진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지금껏 그것을 물질적·양적 성장 및 팽창 그리고 생태계 파괴에 써왔다면 이제는 다른 존재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데 전적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공멸을 막고 공존을 현실화하기 위한 온갖 '다리 놓기매개)'를 자처하는 것은, 탈인간적 접근의 핵심이다.

이렇듯 인간이란 협소한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다른 존재들, 타자이다. 고로,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타자에 주목하는 것은 탈인간의 출발점이다.

탈인간 선언/ 들어가며 p13

《아무튼, 비건》에서 오직 죽기 위해 태어나는 동물들, 즉 식용을 위해 생산되고 처리되는 공산품으로 취급받는 공장식 축산에서 희생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보여주며 비거니즘 물결을 일으켰던 김한민 작가가 생태. 기후 위기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은 첫 칼럼집 《탈인간 선언》을 출간했다. 작가는 약 3년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 '탈인간'에 이야기를 덧붙여 칼럼집을 내어놓았다.

이 책을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처음 펼쳤다. 무게가 가벼운 책이라 무심코 가방에 넣었다가 마침 자리가 나서 앉은 김에 꺼내들었던 참이었다. 지하철은 움직이고 펼친 첫 페이지는 만만치 않았다.

인도주의. 인본주의. 휴머니즘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전제를 깔고 오랫동안 당연한 진리로 여겨져왔었다. 하지만 인간 중심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무조건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긍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인간적인 것은 더 이상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따져 묻고 싶을 수도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최소한 산업혁명 때부터) 추구해온 삶의 양식만 (앞서 말한) 생태적 파국을 불러왔"다는 문장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해도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문제 의식에서 탈인간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에 대한 논의는 더욱 가열되는 것 같았는데, 늘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흐지부지되었으며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역시 은근슬쩍 이루어지고 말았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고 재활용품 분리 수거를 잘 하고 새로운 물건을 사지 말 것을 개인에게 강조하는 캠페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정작 기후를 망치는 작동을 멈추지 않는 세계 100대 기업이나 10%의 인류는 그러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다. 모두 인간이지만 환경을 망치는 책임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있지 않다.

1부는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 정책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2부에서는 결과중심주의, 기술만능주의, 물질주의, 성장·발전에 대한 예찬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모두 환상으로 치부했던 '타자와의 연대'를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한다.

한동안 '카르텔'이라는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에 짜증이 난 적이 있었다. 카르텔을 쥔 쪽에서 카르텔 척결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이 책에서 "가장 깨기 힘들고 큰 것이 바로 성장과 개발의 카르텔"이라는 말이 정말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과 개발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환경 보호나 소수자 보호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는 듯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치워버리는 성장과 개발의 카르텔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가가 치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책이었다.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텀블러와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감추는 내 자신도 부끄럽고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면서도 고기를 놓지 못하고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것 같은 허약한 의지도 참담하다. 성장의 카르텔을 응원하는 축도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반대의 축에서 노력을 한 적도 없었기에. 제목만 보고 탈인간을 비웃는 사람이 없기를. 인간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타자와의 공존을 통할 때만 헛된 희망이 아니라 참된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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