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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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식의 책을 처음 읽어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글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가진 세 사람이 서로의 일기를 읽고 팟캐스트에서 수다를 떠는 형식.

이 책은 2021년 가을에 시작한 팟캐스트 〈일기떨기〉의 회차 가운데서 좀더 깊이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골라서 ‘나와 인생’‘우리와 관계’‘취미와 취향’에 관해 묶고, 다듬어서 새로운 대담으로 꺼내 놓았다. 솔직한 이야기 속에 다르면서도 닮은 서로의 말들이 서로 부대끼며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1부 "이번 생엔 이렇게 살 수밖에" 에는 누구 하나 좋다는 사람 없이 후회막심인 이십 대를 뒤로하고 이젠 “지나치게 하나의 나에게 집중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무장한 세 사람의 인생관이, 2부 "기대 않던 마음에도" 에는 결혼에 관심 없는 세 사람의 결혼식 로망을 비롯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적 고백이 담겨 있다. 그리고 3부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방법" 에는 이들 세 사람이 밝힌 지금의 삶을 가치 있게 돌보는 방법이 담겼다.

그럼 여기에 나오는 세 사람은 누구인다. 나는 이 중에서 천선란만 알고 있지만 세 사람을 모두 소개해보자면,

《천 개의 파랑》《나인》《노랜드》《이끼숲》에서 우주와 회복의 서사를 경이로운 통찰과 상상으로 구현해내는 SF 소설가 천선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아무튼, 아이돌》을 통해 한 해의 플레이리스트만 1700곡에 달하는 아이돌 덕후이자 십수 년 차 참된 일기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 에세이스트 윤혜은, 주짓수부터 제과제빵, 점심시간에 하는 요가까지 다부진 취미 부자 편집자 윤소진이다. 모두 글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로 일기의 내공과 입담의 내공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세 사람의 일기를 읽고 수다를 듣는 동안 나는 그들이 점점 더 부러워졌다. 나는 그 시기에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으며 이렇게 살아가지 못했나 싶어서. 동일한 형태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생각을 일기에 솔직하게 쓰고 여럿 속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일기에서조차 나는 솔직하지 못했고 나의 생각을 숨겼다. 그리고 이제는 솔직하게 쓰고 말하자고 결심을 한 지금 나이에 와서는, 글과 말의 알맹이가 쪼그라들어서 쓸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했었더라면, 이런 말을 내뱉게 하는 후회는 언제나 내 몸 구석마다 커피 찌꺼기처럼 남아있어서, 가끔 나는 나를 살아가는 시간들이 쓰다.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물론 너무 급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 미성숙할 때 도전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오랫동안 타오르지 않을 것도 알고요. 분명 어느 순간 나는 모든 불을 잠시 끄고 딱 하나의 불씨만 키워둘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조금 더 대범해지는 것 같아요.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따뜻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읽다가 나의 후회 가득한 시간들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서 시간을 쓰게 물들이고 있을 때 천선란 작가의 "어느 순간 나는 모든 불을 잠시 끄고 딱 하나의 불씨만 키워둘 거라는 사실" 이라는 말을 읽고, 들었다. 그순간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면서 쓴 시간들이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시간이 되었다는 듯 일기장 없이 일기를 쓰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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