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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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반복하는 천칭은 나를 보여 주는 것 같다.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세상과,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 주는 것 같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은 소비를 통해, 소유를 통해, 그리고 소비와 소유에 대한 사유를 통해 정의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지겹지만 멈출 수 없는, 그 저울질에 관한 이야기다.

사는 마음/ 이다희

책머리에서 작가는 처음에는 결정하는 저울질이 물건의 유용성과 예산을 비교하는 데서 시작되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추억의 가치나 브랜드의 윤리성, 여성으로서 느끼는 사회적 압박 같은 것들이 올라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올라가는 물건들과 반대로 올라갔지만 내리는 것들. 그러게 올리고 내리는 저울질의 반복 속에서 작가의 사유는 성장하고 바뀌고 넓어졌나보다.

이다희 번역가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를 번역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필한 고 이윤기 번역가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번역하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라온 이다희 번역가는 아버지 생전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첫 권을 함께 작업하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혼자서 6년 동안 작업하여 총 10권을 완간했다고 한다.

작품에 번역가의 이름은 작게 기록되지만 번역에 따라 작품은 크게 달라진다. 오역과 어색한 번역은 작품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의 양쪽 어깨는 참으로 무거울 것 같다.

몇 년 전 여름 <하얀 국화>를 읽고 한동안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그 책의 번역가가 바로 이다희였다. 아버지와 딸, 두 분 모두 어쩌면 이렇게 훌륭한 번역을 하는 건지 존경스럽다..

누구가 물건을 고를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가성비라는 말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요즘 소비생활 속에서도 가성비 외에 나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만드는 또다른 기준 같은 것.

이다희 번역가는 첫눈에 반한 물건을 선택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책상을 사러 갔을 때의 일화는 귀엽고 따뜻한 그림처럼 그려진다. 소공녀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것 같은 덮개가 있는 책상을 고르는 아이. 나는 살아가면서 그런 적이 별로 없기에 아이의 의견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흔쾌히 받아들여주시는 부모님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물건을 사는 마음은 바이올린, 책상, 종이에 이어 집까지 이어진다. 이다희 번역가가 저울에 올린 물건들은 가성비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별로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금방 써버려서 사라지는 물건이 아닌 이상 물건은 오래도록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좋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낡은 물건들이 꽤 많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성비나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샀던 물건들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오랜 결혼이 끌고 온 그림자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 후 재택근무를 하며 꾸준히 일을 했지만 돈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가성비로 거의 들여놓은 물건들이다. 그나마 내가 좋아해서 고르는 물건이라면 책과 커피 정도인 것 같다. 외모를 꾸미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옷도 신발도 별로 없다.

요즘은 필요하면 당근에서 가장 마음에 들면서 가성비가 좋은 물건을 선택한다. 녹색당에 가입하면서부터는 더욱 새로운 옷은 아예 사지 않는다. 옷도 가방도 오래된 것들 뿐이지만 나는 책은 읽고 싶은 순간 바로 사는 편이다. 그게 부담스러울 때는 이렇게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그리고 커피에는 진심이어서 향과 산미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만들거나 드리퍼나 클로버로 원두를 내려 마신다. 나이가 들면서 필요한 물건은 최소한으로 내게 기쁨을 주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저울에 올려놓아야 할 물건들의 목록이 좀더 선명해진다.


'사는 마음'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건을 사는 마음과 삶을 사는 마음.

서른 여섯에 암이 발명해서 몇 년 동안 투병을 했던 이다희 번역가는 '살기로 선택'하고 '삶을 고집하기로'했고 '소비하는 행위를 즐거운 행위로 만들기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건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삶이 즐겁기 위해서는 소비하는 행위가 즐거워야 한다"는 그의 말은 "즐겁지 않은 소비는 하지 않기로 한다"로 이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도 올바른 소비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물건 뒤에는 노동이 숨어있고 노동에는 착취와 희생이 감춰져 있고 자본은 그런 노동을 딛고 더욱 커지고 그런 과정에서 환경은 망가지기 때문이다.

이다희 번역가가 선택한 물건들 (바이올린, 책상, 만년필을 위한 종이, 집 등) 중에서 책상과 집은 나도 선택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과 나의 수입 능력을 고려할 때 지불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오래전 마트에서 샀던 고동색 나무에 검정 유리가 깔린 책상을 오래도록 쓸 것 같다. 처음에는 무겁고 다소 높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 책상에서 나는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 컴퓨터과 프린터기를 올려놓았던 책상에 요즘은 노트북과 독서대가 올려져있다. 따로 내 방이 없기 때문에 책상은 지금 부엌에 있다. 처음에 반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이 드는 이 책상과는 아무래도 오래도록 친하게 지낼 것 같다.

자신만의 방에서 글을 쓰고 번역을 하는 이다희 작가는 '능동적인 번역가'가 될 생각에 영어원서 읽기 모임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좋은 책을 고르는 사이 그의 번역이 어떻게 연대되고 확장되는지 기대가 된다.

“능동적인 번역가는 기획하는 번역가라는 의미예요. 사람들과 함께 읽을 좋은 책을 고르면서 제 독서경험이 더 풍부해질 테고, 좋은 책을 발견하면 출판사 측에 출간 제안도 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번역 일을 해나갈 생각이에요.”

한겨레 / 문화&책 생각/번역가를 찾아서

살고 싶은 마음과 소중한 가치를 저울에 올리는 마음.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은 내가 따뜻한 체온을 가진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그런 마음을 돌아보게 된 독서였다.


어딘가 화수분을 숨겨 둔 사람이 아니라면, 매월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도록 애쓴느 사람이라면 지겹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저울질이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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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닮은 사람
정소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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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을 한참 재미있게 본 적이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의 강렬하고 소설적인 긴장감이 나른하게 떨어지면서 한국의 전형적 드라마로 변해가서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끝까지 봤던 드라마였기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원작소설을 찾아 읽었다.

『너를 닮은 사람』은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을 재출간한 책으로 모두 8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가장 먼저 표제작이자 드라마 원작인 <너를 닮은 사람>을 읽었는데, 드라마와 같으면서도 다른 서사가 흥미로웠다. 볼거리가 있도록 살을 붙여가는 드라마와 다르게 원작소설은 군살없이 깔끔했다. 자신이 거짓으로 쌓아올린 행복을 지키기 위해 너라고 부르고 있는 클라인을 불행하게 만들었으면서도 끝끝내 용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클라인을 나쁘다고 여기는 주인공의 의식, 그리고 그로 인한 모호한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드라마보다 좋다. 소설적이기 때문인걸까.


모호하다는 말이 있었던 마지막 장면을 처음에는 독자에게 맡기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니 끝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주인공의 자기연민과 자기변호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늑하게 조성된 전원주택 단지의 취약점은 작은 소리에도 비밀이 쉽게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표현한 문장이 주인공의 심리와 맞물려서 좋았다.

너는 내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집 안에 없는 사람처럼, 네가 찾은 집이 내 집이 아닌 것처럼 응답하지 않았다. 너는 뻔뻔하고 당당하게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에서 기척이 없자 점점 더 세게 두드렸다. 사방이 산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전원주택 단지는 조금만 떠들어도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너를 닮은 사람/ 정소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의 어떤 잘못을 감추기 위해 핑계를 대거나 정처없이 떠돈다. 잘못은 늘 의도하고 계획적이지 않고 어쩌다가 실수로 인한 결과물이다, 라고 그들은 스스로 책임을 면하려 한다. 누군가 책임을 묻기 전에 현장을 떠나서 숨거나 감춘다. 그러나 인물들에게 모두 너의 잘못이라고 전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부모로부터 '실수로 태어났다'는 낙인을 받은 이들로 유기 폭력 방임 등의 학대를 받아왔으며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기 때문에 자신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절대자에게 늘 죄를 진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할수록 절대자들은 강하게 부정하며 밀어냈다.

모성이나 부성은 자연스럽게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한 부모와 닮지 않은 자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정당하기 때문에 세상과 연결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정주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떠도는 삶을 살아간다.

<너를 닮은 사람>을 읽으러 왔다가 다른 소설들을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실수하는 인간>과 <지나간 미래>는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다.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존재하고 그 미래에서 지나온 자신의 발자국을 뒤로 밟아가는 인물들의 행적이 소름돋도록 잘 맞아떨어진다.

죽일 생각은 없었고 그저 겁을 주려던 것인데 큰 실수를 해버렸다. 석원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는지 기억해보려 했지만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것은 태어난 것이 실수라는 것이다.

실수하는 인간/ 정소현

내가 보았던 미래는 내가 직접 부산으로 찾아가는 것인데 남편이 이곳으로 온다고 하니 조금 의아했다. 미래라는 게 내가 어떤 일을 하든 그대로인 건지, 변하기도 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그의 말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나간 미래/ 정소현

두 소설 모두 실제 현실과 인물이 생각하는 현실의 어긋남에서 오는 장면이 교차되며 혼란과 긴장감을 준다. 실제와 환각을 넘나드는 이미지와 인물의 자아 분열같은 요소들이 있어서 드라마나 단막극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양장 제본소 전기> <돌아오다> <폐쇄되는 도시>도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모성과 부성이 부재하고 폭력과 방임과 가난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결핍된 어른이 되어 학대받았던 시간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어느 시절의 어두운 골목을 오래도록 응시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눈을 깜빡이지 않아 눈물이 흘러내려도 떠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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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 여성 호러 단편선
김이삭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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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저녁을 드시고 옥상에 돗자리를 깔았다. 창문이 적어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았던 집안과 달리 계단 몇 개만 올라갔을 뿐인데 옥상은 바람이 시원하게 솔솔 잘도 불었다. 마루에 접어놓았던 돗자리를 깔고 모기향을 피우고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검어지면서 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할머니 옆에 누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평소 무뚝뚝하던 할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무서운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해가 져서 어디서라도 하룻밤 묵어가야 하는 여인들, 전쟁통에 떠난 벗을 기다리다가 죽었지만 죽은 줄도 모른 채 어린 모습 그대로 어른이 된 친구를 쫓아다니는 여자아이 등.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무서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여자였다. 그러고보면 어릴 때 봤던 책이나 텔레비전에 나왔던 귀신들도 다 여자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말하지 못했고 살지 못했던 여자들의 꾹꾹 눌러담은 한이 귀신이야기를 탄생시켰고, 그런 이야기는 오래도록..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 책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은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여자들이 생존을 위해 힘껏 싸우고 투쟁하고, 때로 짓밟는다.

<창귀>는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생존에 대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그를 사랑하는 단 하나의 마법>도 최근 수많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불법 동영상을 촬영한 뒤 웹에 영원히 박제시킨 뒤 협박하여 영혼을 파괴시킨 다크웹도 관한 내용이다. 주인공이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으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옛날 민담을 연상시키는 <큰언니>의 설정도 흥미로웠다. 탈출구와 모성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너의 자리>는 계약직이자 여성이라는 허약한 기반에서 비롯된 불안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정말 호러 장르라고 할까.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무진도 탈출기 게임 환불 요구서>는 다른 여성 서사가 결이 다르다. 여성의 이야기로 한정짓기보다는 미디어에 통제되어 50년 동안 거짓 세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인데 재미있다. 자본의 양극화와 착취당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여성 호러 단편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는 가벼운 호러 같지만 현실과 밀접하게 얽혀있다는 점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 모음집이다. 모두 10편의 소설이 들어있으니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독서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남자가 한 말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중국집에서 단무지를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어요. 단무지 씹는 소리가 참 경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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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이너
임국영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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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헤드라이너를 꿈꾸며 진창 같은 삶을 딛고 일어서려는 피끓는 청춘들을 향한 조용한 응시에서 비롯된 묵묵한 응원이 느껴지는 여덞 편의 소설이 수록된 『헤드라이너』.

2017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임국영 작가가 첫번째 소설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와 연속적 구조를 지닌 이 작품집은 60-70년대 록음악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그리고 그 위에 빠른 템포와 스텝과 헤드뱅잉과 기타와 드럼과 열기로 뜨거워지는 무대로 향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가시적인 무대가 아니라 추상으로만 존재하는 인생의 무대.

그들이 올라서서 목이 터져라 샤우팅을 하며 주인공이 되고 싶은 무대는 가까이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오를 수 없는 거리에 있다. 바로 앞에 있는 듯 닿지 못하는 세계의 이미지.

그곳에 오르기 위해 「헤드라이너」 속에 등장하는 '우드스톡' 멤버들은 만취한 상태로 록페스티벌의 무대를 탈취하려 하지만 어설픈 계획은 수많은 군중과 무대의 열기에 무너진다. 하지만 그들은 실현하지 못한 무대 탈취로 인해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만의 방식으로 무대를 경험하고 내려온다. "마치 한번 죽고 다시 태어난 듯한 감각"으로 설명되는 경험 이후 우드스톡 멤버들은 정적이 흐르는 합주실을 떠나 각자의 길로 향한다. 취기에서 깨어난 온전하게 각성하여 깨달은 꿈을 찾아가는 것이다.

작품집 전체에 록이 흐르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작가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진 시대의 락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록은 저항이다. 자유이자 해방이다. 마음껏 자유롭지 못하고 해방되지 못한 젊음의 절규를 표출하기 위한 방식이었을까.

식민지 시대 이후 한국의 문화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전통이 흔들리는 시대에 주체적인 독립과 개혁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기에 국가는 형식적으로 독립이 되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실질적인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거기에 가부장이라는 제도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여성들의 삶은 해방 이전에도 이후에도 독립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말할 것도 없지만 가부장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성들의 삶도 한국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서 서구에 속한 남성들과 비교하면 동등할 수 없었다. 자유롭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한계에서 억압의 시절을 지나 자유를 부르짖고 싶은 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자유의 쾌감을 안겨준 것이 어쩌면 록이라는 장르가 아니었을까. 뜬금없는 결론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록이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은 억압을 구역질하는 창법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말하는 「볼셰비키가 왔다」를 보면 그 마음이 얼핏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스킨헤드는 스핑크스 같은 자세로 토하기 시작했다. 먹은 게 얼마 없는지 게워내는 내용물이라곤 별 볼 일 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구역질 소리 하나는 시원했다. 왜 그들이, 오빠가 저런 소리가 나는 음악을 했는지 조금쯤은 알 것 같았다.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토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볼셰비키가 왔다/ 임국영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 와 「오토바이의 묘」는 수록된 다른 소설들에 비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자본주의의 착취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고 있어서 록음악과 별개인 것 같았지만 여전히 두 편의 소설 내부에는 록음악이 흐른다. 저항과 속도는 줄기차게 흐른다. 특히 「오토바이의 묘」에서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속도와 다르게 흐른다. 달리면 달릴수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노동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도 돈은 모이지 않고 가난이 적금처럼 쌓여가는 현실의 고통이 보인다.


종일 쉼 없이 달린 탓에 바퀴와 엔진이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 정도는 버틸 만했다. 그보다는 정신적인 통증이 더 심각했다. 차라리 죽어서 진창 아래로 끝없이 잠기는 편이 훨씬 행복할 것만 같았다.

오토바이의 묘

수록된 소설들은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록음악이 있으며 그 위로 가부장과의 불화와 꿈과 현실의 괴리, 소년들을 착취하는 나쁜 어른, 코로나로 인해 폐업하는 레스토랑이 부유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록음악이 계속 나와서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의 소설이 끝나면서 다음 소설에 연결되어 있는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이 작품집에서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록밴드의 이름이 아니라(..물론 알고 있으면 소설이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이해될 것이다..) 록음악을 하는 마음과 자세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 쌓여있는 무거운 것들을 토해내기 위해 록을 선택했던 바로 그러한.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지는, 그러한.

신화는 여전히 폭거다. 그러나 모든 폭거가 신화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신화가 되는 폭거는 무엇인가. 신 내지는 반신, 영웅이 일으켰거나 혹은 그에게 일어나는 폭거일 때야만 비로서 신화는 탄생했다. 그러므로 밴드 우드스톡의 폭거는 시작부터 무의미했다.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헤드라이너



그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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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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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색다른 이력을 가진 11인의 인터뷰를 실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언어를 가져아 한다고 믿는 이충걸은 건축공학과를 나왔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GO KOREA>편집장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인터뷰 현장에서 이전의 인터뷰와는 다른 인터뷰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질문은 짧게 던지고 대상자에 대한 불안을 보고 싶어하는 그의 인터뷰는 술렁이는 말들로 어지럽다. 봄철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현기증이 나는 언어들의 기지개.


"인간의 모든 순간은 질문과 대답으로 엮여 있으니까. 언어는 세계의 전부이자 표정을 손질하는 단 하나의 가치니까."라고 하는 그는 "결국 인터뷰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나무 열매를 잡는 일과 같"다고 하면서도 대상자의 세계에 들어가서 결핍을 들추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책에 실린 열 한 명의 인터뷰는 무척 재미있었고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몇몇 조각들로 제멋대로 오해하고 판단해버렸던 사람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았던 인터뷰는 그렇게 오해했다가 미안해진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오해 없이 호감이었던 사람은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서초동 정토 법당에서 만난 법륜 스님은 평소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을 솔직한 어조로 부셔버렸다. 불교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내면의 문제만 다스리며 좋은 말씀과 평온한 명상을 하는 종교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법륜 스님은 현실에 침묵하는 종교라면 사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님들의 말씀에 귀기울여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직설화법으로 '진격'하는 법륜 스님의 말은 오히려 종교를 좁은 틀에 가두려고 했던 내 사고를 흔들었다.

사회적인 활동을 하지 말고 정치에 침묵하라는 말은 독재 권력에 침묵하라는 말과 같다고 하면서 그는 정곡을 찌른다. 속세와 동떨어져 청렴하게 살아가는 것이 참되다고 하는 종교인들에 대해, 내가 품는 헛헛한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산다는 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환경으로부터 영향 받는 두 가지 성질이 다 있는데, 사회적인 활동은 왜 하느냐, 정치에 침묵해라, 이게 뭐예요? 독재 권력에 침묵해라, 이 말 아니에요? 그런 절에 안 살고, 그런 밥도 안 먹고, 그런 차도 안 타면서 사회에 관여 안 한다, 그럼 오케이예요. 그런데 산속에 있는 절은 다 자기가 지었어요? 전부 사람들의 노력과 재화로 지어놓고 사회에 대해 침묵한다? 혜택은 다 누리고 어려움을 외면하기 위한 핑계로 사회 발언을 안 한다? 그건 모순이죠.

질문은 조금만/ 법륜스님


 그는 정치, 환경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작용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엄청난 과학 문명의 발전에 따른 이익을 누리는 동시에 환경파괴라는 비극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녹색'이라는 화두에 깊은 관심이 생겨서 녹색당에 가입하고 창비에서 연속적인 주제로 잡았던 환경문제를 꾸준히 접하다보니 그 안에 자본주의의 멈출 수 없는 고리가 늪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개그콘서트'에서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독특한 인터뷰를 하던 강유미도 몇 조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을 조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제목과 가십성 기사들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박함을 스스로 반성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강유미는 보기보다 다크하고 주위를 얼어붙게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개그콘서트에서 내가 봤던 것과 다른 이미지였다. 그는 자신의 연기는 생계형이고 무대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나는 특히 미니멀리스트였던 그가 결혼 후 보란 듯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느끼는 감정에 공감했고, 우리 세대보다 한참 젊은 세대들의 멋진 강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고 표현하지도 못한 채 순응하고 침묵하고 있었으니까.

 

저는 결혼에 사랑의 종착역 같은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관계조차 불안하기만 하고 쉽지 않아요. 결혼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부여한 의미만큼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남편이 별로인 사람이고, 내 결혼 생활이 남들보다 특별히 불행해서는 아닌 것 같고, 저 스스로 제가 가진 상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잖아요. 내 결혼을 들숨과 날숨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고, 내 배우자는 늘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한결같은 사랑을 줘야 된다는 우김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는 거죠.

질문은 조금만/ 강유미

 

 40년 의사생활을 마치고 죽음학 강의를 시작하고 카르마와 윤회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전직 의사 정현채는 조금 독특했다. 의사가 전생을, 이라는 의문같은.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죽음 뒤에 패자부활전이 있으며 육체가 죽은 후에도 존속되는 의식의 비국지성에 관한 이야기는 뚜렷하게 남아서 개인적으로 내게는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대문에 가서 면으로 지은 수의 두 벌을 들여다보며 삶의 종착역을 가늠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그의 말에 나도 소박한 수의를 지어놓고 종착역을 가늠하며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실컷 놀다가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삶이 죽음에 속해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확인 하나 더.


 강경화는 생각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다. 어떤 척을 하지 않고 간결하고 명확한 스타일이 더욱 그를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생산 과정에 있어 사람은 재료가 아니다. 노동을 제공하는 권리를 주어야 하고, 현장에서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필라델피아 선언을 말하는 그의 말에서 우리의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직접고용보다 외주로 전환하는 고용 형태에서 타인의 지옥을 경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출근했다가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는 수많은 죽음은 나와 별개가 될 수 없을 것이기에. 유엔에서 인권 담당을 맡았던 강경화의 말처럼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이 부디 확대되기를 바란다.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읽는 것처럼 위험한 게 없다'는 말에 요즘 나의 불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최초라는 수식어로 소개되는 그이지만 정작 그는 그런 수식어가 필요없는 세대가 빠릴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옷을 만든지 57년이나 된 여든여섯 살의 디자이너 진태옥이 넘치는 에너지로 대화를 하다가 방글라데시의 모든 하천이 옷으로 뒤덮여 있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돌아보는 장면은 의외였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점을 알기에 재고를 남기지 않도록 옷을 만든다는 그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여생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정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최고의 미니멀리즘'으로 장식되는 마지막 쇼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의 책을 몇 권 안 읽었지만 내가 고른 책마다 빛나는 문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었다. 나의 언어의 한계로 빛나다, 라는 표현밖에 하지 못해서 유감이다. 주류에 속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글을 쓰고 많은 책을 낸 시인은 어느 시점에서는 쓰는 일도 놓고 고요와 무위의 상태 속에서 살다가 코끼리처럼 사라져야 한다는 말 끝에 새들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죽는다는 말을 한다. "사고로 죽지 않고서는 우리가 새의 죽음을 볼 수가 없거든요. 조용히 사라지니까." 그 말이 슬프면서도 당연하게 다가왔다. 요즘 죽음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어서 그런지(개인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에 대한 생각이니 오해 없기를..) "조용히 사라"진다는 말이 내내 명치에 걸렸다. 그는 "은유는 시의 비장의 무기. 우주를 한 줄로 압축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영화 <일포스티노>가 장석주가 바라보는 밤하늘에 걸리는 듯했다.


 좋은 인터뷰는 압축된 언어를 건드리는 것 같다.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언어로 공간을 채우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상대는 "꿈과 세속 사이에서 분투하는 성장기 아이처럼" 말하게 된다. 형식을 갖춘 인터뷰에서 나오는 내밀하고 솔직한 답변. 인터뷰가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도 이런 관점을 적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태도를 취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게 될 거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러니 이제 실행만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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