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이너
임국영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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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헤드라이너를 꿈꾸며 진창 같은 삶을 딛고 일어서려는 피끓는 청춘들을 향한 조용한 응시에서 비롯된 묵묵한 응원이 느껴지는 여덞 편의 소설이 수록된 『헤드라이너』.

2017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임국영 작가가 첫번째 소설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와 연속적 구조를 지닌 이 작품집은 60-70년대 록음악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그리고 그 위에 빠른 템포와 스텝과 헤드뱅잉과 기타와 드럼과 열기로 뜨거워지는 무대로 향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가시적인 무대가 아니라 추상으로만 존재하는 인생의 무대.

그들이 올라서서 목이 터져라 샤우팅을 하며 주인공이 되고 싶은 무대는 가까이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오를 수 없는 거리에 있다. 바로 앞에 있는 듯 닿지 못하는 세계의 이미지.

그곳에 오르기 위해 「헤드라이너」 속에 등장하는 '우드스톡' 멤버들은 만취한 상태로 록페스티벌의 무대를 탈취하려 하지만 어설픈 계획은 수많은 군중과 무대의 열기에 무너진다. 하지만 그들은 실현하지 못한 무대 탈취로 인해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만의 방식으로 무대를 경험하고 내려온다. "마치 한번 죽고 다시 태어난 듯한 감각"으로 설명되는 경험 이후 우드스톡 멤버들은 정적이 흐르는 합주실을 떠나 각자의 길로 향한다. 취기에서 깨어난 온전하게 각성하여 깨달은 꿈을 찾아가는 것이다.

작품집 전체에 록이 흐르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작가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진 시대의 락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록은 저항이다. 자유이자 해방이다. 마음껏 자유롭지 못하고 해방되지 못한 젊음의 절규를 표출하기 위한 방식이었을까.

식민지 시대 이후 한국의 문화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전통이 흔들리는 시대에 주체적인 독립과 개혁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기에 국가는 형식적으로 독립이 되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실질적인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거기에 가부장이라는 제도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여성들의 삶은 해방 이전에도 이후에도 독립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말할 것도 없지만 가부장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성들의 삶도 한국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서 서구에 속한 남성들과 비교하면 동등할 수 없었다. 자유롭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한계에서 억압의 시절을 지나 자유를 부르짖고 싶은 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자유의 쾌감을 안겨준 것이 어쩌면 록이라는 장르가 아니었을까. 뜬금없는 결론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록이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은 억압을 구역질하는 창법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말하는 「볼셰비키가 왔다」를 보면 그 마음이 얼핏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스킨헤드는 스핑크스 같은 자세로 토하기 시작했다. 먹은 게 얼마 없는지 게워내는 내용물이라곤 별 볼 일 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구역질 소리 하나는 시원했다. 왜 그들이, 오빠가 저런 소리가 나는 음악을 했는지 조금쯤은 알 것 같았다.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토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볼셰비키가 왔다/ 임국영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 와 「오토바이의 묘」는 수록된 다른 소설들에 비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자본주의의 착취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고 있어서 록음악과 별개인 것 같았지만 여전히 두 편의 소설 내부에는 록음악이 흐른다. 저항과 속도는 줄기차게 흐른다. 특히 「오토바이의 묘」에서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속도와 다르게 흐른다. 달리면 달릴수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노동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도 돈은 모이지 않고 가난이 적금처럼 쌓여가는 현실의 고통이 보인다.


종일 쉼 없이 달린 탓에 바퀴와 엔진이 불에 타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 정도는 버틸 만했다. 그보다는 정신적인 통증이 더 심각했다. 차라리 죽어서 진창 아래로 끝없이 잠기는 편이 훨씬 행복할 것만 같았다.

오토바이의 묘

수록된 소설들은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록음악이 있으며 그 위로 가부장과의 불화와 꿈과 현실의 괴리, 소년들을 착취하는 나쁜 어른, 코로나로 인해 폐업하는 레스토랑이 부유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록음악이 계속 나와서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의 소설이 끝나면서 다음 소설에 연결되어 있는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이 작품집에서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록밴드의 이름이 아니라(..물론 알고 있으면 소설이 훨씬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이해될 것이다..) 록음악을 하는 마음과 자세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 쌓여있는 무거운 것들을 토해내기 위해 록을 선택했던 바로 그러한.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지는, 그러한.

신화는 여전히 폭거다. 그러나 모든 폭거가 신화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신화가 되는 폭거는 무엇인가. 신 내지는 반신, 영웅이 일으켰거나 혹은 그에게 일어나는 폭거일 때야만 비로서 신화는 탄생했다. 그러므로 밴드 우드스톡의 폭거는 시작부터 무의미했다.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헤드라이너



그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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