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게 되는 일련의 학군이 있기 때문에 그런 도움으로 하이데거를 맥락으로 읽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결국 피동적인 이해로 단지 수적인 이해관계만 충족시키는 문맥으로 전락할 위험 역시 다분하지만 말이다. 나는 우선 박찬국 교수가 지은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를 뽑아들었다. 동녘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현재 그린비의 'he-story' 시리즈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읽게 된 책은 동녘판본인데, 쪽수에 별차가 없는 것으로 보아 크게 달라지거나 한 건 없어 보인다. 나는 하이데거의 나치 전력이라는 중기까지만 읽고, 그 뒤에서 다루는 현대 문명과 테크네 문제는 차차 고민해갈 생각이다.
그의 해설을 따라가 보자면, 하이데거(물론 여기서 하이데거에게만 국한되는 문제적 질감은 아니다)에게 있어 "현대 기술문명의 위기는, 궁극적으로 … 고향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믿고서 디딜 수 있는 신뢰 공간의 부재 감각은 "공허감과 불안감"을 주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물질적인 소비와 향락을 추구"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대체할 수 없는 심적 공허를 물적 공복으로 채우려는 사태 자체의 '궁핍'이 기술 닥달의 시대를 낳는다. 이것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연장적 사물을 인식하는 자(pp.28-29)를 의미한다.
닭은 단순히 알을 낳는 에너지원으로 고찰된다. 이와 함께 닭의 독자적인 존재 방식은 무시되고 오직 알을 더 많이 낳게 하려는 목적에서 사육된다. 닭들은 좁은 닭장 속에서 집단적으로 사육되면서 알을 까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존재는 '세계-내-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계-존재'한다. '내'적 사태가 소거되는 상태에서 존재란 세계의 사태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는 화해할 수 없는 상태로 세계에 절박하게 근거한다. 자기를 물을 수 없는 존재. 세계와 친화할 수 없는 존재. 기쁨이 사라진 존재. 누군가에게 '존재했음'이란 흔적이 말끔히 사라진 세계. 생탁(生托)만이 사태로 존재하는 세계...
이런 단순노동은 언제나 채울 수 있잖아요. 그리고 누구나 30분 안에 배울 수 있고. 나사 같은 존재죠. 나사, 나사 중에서도 저기 뭐야, 제일 그런.. ①
박찬국 씨는 여기서 하이데거의 '존재의 소리'에 주목한다. "'모든 산봉우리에 정적이 있다'라는 괴테의 시구 … (에서) '있다'는 단어가 너무도 소박하게 말해지고 있(다.) … 이러한 소박함은 희귀한 풍요로움과 충만함을 간직한 소박함이다."(35) 그것은 "가장 고유하고, 가장 극단적이며, 다른 가능성들에 의해서 능가될 수 없고, 가장 확실한 가능성"으로(98), 죽음은 그것을 그러하게 고지한다.
현존재는 이제 자기 자신을 비롯한 존재자 전체가 '있다'는 사실을 섬뜩하고 황량한 사실로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경이로운 기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110-111)
죽음은 외적인 겁박이 아닌, "자신의 본래적인 존재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질책하는 소리이며, 나의 본래적인 존재를 내가 만든 것이 아님에도 '나의' 것으로 인수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하는 소리"이다(125). 죽음은 무한성이라는 시간으로 주어진 생을 유한한 삶으로 개현시킨다.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각자의 고유성을 자각하는 사건이었다. … 막스 뮐러는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우리 생의 일회성을 자각하게 된다고 말한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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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여는 첫 글은 단독으로 보자면 매우 평이하고, 논어라는 사태에서 보자면 그 유명세라는 가치에 비해서 너무 시시하다. "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고대 중국이라는 장대한 스케일의 뿌리가 되는 공자라는 인물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다. 그러나 살면서 그것을 되새김질할수록 그 평이함이 지닌 '대체 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뜻을 같이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를 읽으면서 이 구절이 많이 생각났다.

① 이종희, 이영롱-24시간 사회의 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