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논문은 야간 파트 타임 근로자의 '노동 서사' 부재를 주목한다. 정/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직업군도 아닐뿐더러, 자신이 하는 일을 "커리어가 아닌, 부분적이고 현재에서의 단편적인 의미만을 갖는 잡(job)으로서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직업으로서의 염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단순히 '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고 저항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24시간 도시의 야간 서비스직 노동 환경은 제조업의 야간 노동처럼 개선될 '무엇'으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그 상태로 고착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선택을 하고 안하는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고 논문은 덧붙인다. 24시간 각성이라는 상황 자체가 사고를 결여한 채, 오로지 기회로만 각색되는 상황은 "밤에 일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의미 부여하며, 자신이 24시간 사회를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24시간 사회가 밤에 주로 깨어있는 자신을 위해서, 가족들과 같이 잘 수 없는 큰 집이 없는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그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는 믿음"의 결과는
노동 시간을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연적 시간 자체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의 희생을 통해 24시간 사회를 지탱해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반성'을 다룬 홍승용 씨의 이야기를 조금은 다르게 각색할 수 있을 것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지 않고, 지배하는 사람들이 지배구조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실제로 즐거운 것은" 억압받는 자들과 "지배자들일 것이다."①, ② 커리어라는 경험적 측면이 '일거리' 자체로 지양되면서, 일하는, 그러나 누구도 하고있지 않을 부재적 상황, '나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단순노동은 언제나 채울 수 있잖아요. 그리고 누구나 30분 안에 배울 수 있고. 나사 같은 존재죠. 나사, 나사 중에서도 저기 뭐야, 제일 그런..
더러워서 언젠가는 때려치울, 그렇게 누군가에게 전가된, 그래서 그 역시도 더러워서 언젠가는 때려치우리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일, 아무도 있지 않은 동시에 자리하게 되는 그 자리가 24시간을 움직인다.
①《현대사상》(1), 「반성: 소통과 해방의 첫걸음」
② 이른하 '현대판 노예'라고 하는 곳의 주무대가 '시골'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을 끈다. 그것은 도시라는 생활 세계에 의해 강제적으로 밀려나게(낙후화) 된 시골이라는 '피해자' 공간으로부터 느낄 수 없었던 '도시적인 섬뜩함'으로 역전됨을 의미했다. 「24시간 사회의 이면」에 소개되는 이러한 인터뷰는 그것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야간 영업 규제로 일자리를 잃고 여기서 일하게 된) 이모님은 홈플러스가 다시 24시간 영업을 했으면 하는 입장이셨어요. 장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복지가 갖춰진 곳이 낫다고." 이마트의 사찰 문제는 그 심각성만큼 그곳이 '공적인' 대타자 영역이라는 의미를 주는 데 반해서, 대형마트에 의해서 '의미화된 골목'이라는 곳에서는 전적인 1:1의 갑을이 대면해야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조선족 여성 순덕은 … 면담자들 가운데 가장 장시간을 주간 근무자와 같은 시급으로 휴일 없이 일하고 있었다. … (그것은) 고용주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법정 근로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기회'로 생각했다."
※논문은 《진보평론》(54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