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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목소리 -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
허은실 글, 고현주 사진 / 문학동네 / 2021년 4월
평점 :
2년 전이었던가. 제주 4.3 사건 71주년 추념식 영상들을 유튜브로 보았었다. 이후 알고리즘에 이끌려 제주 4.3 사건 관련 영상들을 보면서 아직 제주 4.3 사건의 이야기들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제주 4.3 사건에 대해 알아가면서 매년 4월 3일이 되면 나만의 방식으로 4.3을 추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는 이 <기억의 목소리>와 <순이삼촌>을 구매해 읽는 것으로 4.3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해보려 한 것이다.
택배로 <기억의 목소리>를 받아 책을 펴보면서, 이 책을 디자인하신 분은 ‘디자인에도 제주를 담았구나’하고 생각했다. 화려해 보이는 표지와 그렇지 않은 순백의 책 겉면. 밖에서 화려해 보이는 제주도 자연의 이면에는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희생자들의 유품 사진, 유가족과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유가족이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허은실 님의 시가 겹겹이 포개어진 이 책에서는 아픔과 분노가 느껴진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찌 몇 자의 글로 책에 다 담을 수 있겠냐마는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희생자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허은실 시인의 시에서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어릴 적 교과서에서 배운 4.3 사건의 이야기는 짧았다. 지면에 실을 수 있는 한계가 있어 최대한 압축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겠지만 약 7년 7개월 가까이 진행된 민간인 학살이 고작 몇 줄의 내용으로 압축되었다는 사실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약 3만 명(추정) 정도의 목숨이 쉽게 사라졌다. 그분들 중에는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살해 후 바다에 던져졌거나, 육지로 끌려가 6.25 전쟁에 동원되기도 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시신 없는 헛묘가 많다. 언제쯤 이 헛묘들이 사라질 수 있을는지.
대한민국 현대사는 수많은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제주 4.3 사건만큼 오랜 기간 동안 손가락질당할까 두려워 쉬쉬한 사건이 없다. 1947년에 시작되어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행된 이 학살 사건은 그로부터 약 50년이 흐른 2000년에 들어서야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2021년이 되어서 4.3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었으며 이번 4.3 사건 추념식에서 최초로 국방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동시에 참석했다. 이제 제주는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정부를 용서하고 화해를 할 수 있을까?
[그가 돌아왔다]라는 넷플릭스 영화가 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대거 학살한 홀로코스트 범죄의 가해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2014년 독일에서 깨어난다는 설정을 갖고 있는 이 블랙코미디 영화.
치매를 앓고 있던 연세 지긋한 피해자 할머니는 뒤돌아있으면서도 집에 들어온 히틀러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히틀러를 보면서 “난 당신이 누군지 알아. 하나도 잊지 않았어.”하고는 집에서 쫓아낸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이야기한다. 그때를 잊지 않았음을. 7년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행된 학살의 증인임을, 그리고 아직도 분노하고 먼저 보내야 했던 이들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말이다. 정부의 진심을 담은 사과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제주도 역시 영화에 나온 할머니처럼 정부를 외면하고 규탄할 것이다. 그분들의 마음에서는 아직도 이 비극적 사건이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이 책에서 아픔과 분노를 꺼내 보여주신 분들은 대부분 194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이다. 아픈 과거를 안고 입을 다문 채 살아오길 50년, 이제야 그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로 전하는 4.3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아 슬프다. 하루라도 빠르게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떠나시기 전에.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연로하신 피해자들이 하나둘 스러지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대신 이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날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2021년 4월 3일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4월 3일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