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일상 생활은 의외로 세세한 스케줄로 구분되어 있어 잡념이 끼어들지 않도록 되어 있다. 벨이 울리고 이동한다. 버스를 타고 내린다. 이를 닦는다. 식사를 한다. 어느 것이나 익숙해져 버리면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반사적으로 할 수 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연속하여 사고를 계속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에 의문을 느끼게 되고, 일단 의문을 느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구분하여 다양한 의식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은 언제나 자주 바뀌어 가며 슬데없는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보행제는 얻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만 하루, 적어도 선잠을 잘대까지는, 계속 걷는 한 사고가 한줄기 강이되어 자신의 속을 거침없이 흘러간다.

  한눈 한번 팔지 않고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 어른이 되려고 했던 자신이, 제일 어렸다.

  청춘의 흔들림이랄까, 번뜩이랄까, 젊음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강미희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책이다. 고등학생들이 밤을 세워 80킬로미터를 24시간동안 걷는 이야기 이다. 별것 없는 이 이야기가 무척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 책의 주인공 도오루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나 또한 도오루처럼 한눈 한번 팔지않고 빨리 어른이 된 모범생이었다. 젊은 시절이 너무 힘들고 아파서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던 거겠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많이 안타깝다. 청춘의 흔들림, 길을 돌아가며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들과 그것들이 주는 작은 행복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느끼게 되다니...  최근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하염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요즘 다시 허한 느낌에 빠져드나 보다. 하염없이 걷고 싶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표정을 한순간에 포착한 그의 초상은 언제보아도 신선하고 현대적이다. 조금치의 감상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는 렘브란트. 그 끔찍한 자의식은 거의 19세기 보를레르 수준이다.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 줄 아름다운 시 몇 편을 스도록 은총을 내려 주소서.  - 보를레르 <빠리의 우울>

  바로 이거다. 뒤러가 세상에 대해 그토록 간절히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다면, 렘브란트와 보들레르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을 뿐이다. 뒤러와 렘브란트의 차이는 두개의 자의식, 르네상스적 인간과 바로크적 인간의 차이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에 사색 노트를 열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구나. 나의 허무는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었구나. 치열한 자의식의 세계에서 아직 길을 찾지 못해서...

  신이여 내가 경멸하는 인간들 보다 나 자신이 형편없는 인간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다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밖에.

   홍도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막다른 골목에 당도하면 다시 돌아나와 다른 길을 생각하는 편이 영리한 처사였다. 홍도는 그것을 서른 언저리를 넘긴 지금에야 알 것 같았다. 젊은 피와 끓는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절에는 앞을 막아선 담벽에 몸을 부딪히고 머리를 찢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면서도 돌아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순진하게도 젊음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태우려고만 했었다. 뜨겁고, 거칠고, 뒤돌아보지 않고, 부딪히고, 반항하고,깨뜨리면서 그는 살았다.

  늙는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원로 화원들의 맥없는 눈빛, 구부정한 어깨, 달려본지 오래된 가는 다리, 쭈그러든 얼굴과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 그 모든 것들이 젊음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내려진 형벌만 같아서 홍도는 늙은 자들을 혐오하였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늙는다는 것은 젊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젊음에 더해지는 축복임을.

 

  요즘 생각하는 것들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글을 <바람의 화원>에서 발견했다. 젊은 혈기로 늙음을 퇴보로 나태함으로 보았던 날들...

  그러나 나이듦의 행복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돌아나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연륜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로움까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음에 더해진 축복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 블로그 푸른도서관 22
강미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도 인간이다.’라는 작가의 외침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작가는 똑같은 길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때때로 그걸 잊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러고는 자식을 포함한 이 땅의 아이들에게 놀라고, 충격받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나는 어떠한가. 일순간 돌아보니 나 또한 모순된 양면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교사로서는 방황하고, 갈등하고, 좌충우돌하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모범생의 길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 엄마가 되어 모범생인 딸아이를 보며 답답해 했다. 여행을 가서 잠시 쉴때 조차 가이드 옆에서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옛날 내 모습이 보여 씁씁했었다. 내 아이가 자라면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정도로만 살것같은 안타까움에 속이 상했다. 나는 아이가 조금은 아프더라도 많이 부딪치며 세상의 여러 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현실의 굴레에서 일탈을 꿈꾸는 이유도 이것이리라.

 

  이 책의 네편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런 청소년에 대한 일반적인 잣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힘들어 하지만 어른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난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희처럼 자신을 버리는 길을 선택을 하는 아이도 있다.

  개인적으로 <지귀의 불>이 가장 재미있었다. 선생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수희는, 선덕여왕을 사랑하다 불귀신이 되어 버린 지귀의 사랑처럼 자기 자신과 그를 모두 태워 버릴 불이 되고자 했다. 누구나 한번쯤 거쳐가는 사춘기의 과정일텐데 자신마저 불태워 버리는 수희가 많이 안타까웠다. 

  또 <사막의 눈기둥>은 편지  형식을 이용하여 주인공 창우와 민준의  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었다. 집안의 배경과 그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형성되는 성적의 차이로 갈등하는 사춘기 소년들의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다.

 

  언제부턴가 해피엔딩의 소설만을 좋아하던 내가 너무 건전한 결말,  쉽게 해피엔딩이 되어 버리는 결말에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 인간의 삶이 그러하지만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부터였으리라. 또한 일탈의 매력을 느끼면서 부터였겠지. 그래서인지 이 책의 범상치 않은 결말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의 책 - 제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12
강미 지음 / 푸른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위의 책> 은 한참을 멍하게 지내다 오랜만에 손에 쥔 책이었는데, 단숨에 읽혀지는 책이었다.

처음엔 여고생의 이야기가 성인이 되어 버린 나와 동떨어진 느낌도 들었지만 읽어나가면서 답답할 때는 들꽃학습원이나 서출지 등 좋아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면 가슴이 뚤리는 듯하다는 나와 많은 점이 닮은 필남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필남은 어두운 가족관계로 인한 열등감으로 학교 생활에서도 남들과 크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주인공이 독서 동아리를 통해 가족과 학교 생활의 갈등을 풀어나가고 다시 자신의 진로까지 모색하는 과정은 잔잔하지만 감동적이다. 독서 치료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비슷한 나이에 데미안을 비롯한 책들을 접했으면서도 나 자신은 필남처럼 그 책의 주인공들과 호흡하고 대화하며 나 자신을 성장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게도 그런 길을 일러줄 수 있는 정현희 선생님 같은 스승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필남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제 교사가 된 나도 이처럼 아이들에게 빛이 될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소설은 대단한 스토리 전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체와 표현이 그 감동을 더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고교생의 1년간의 성장 모습을 잔잔하면서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서출지의 계절에 따른 모습과 느낌을 표현한 부분이 가슴깊이 와 닿았고,  들꽃학습원을 눈앞에 그릴 수 있을듯이 표현해 낸 예리하고 서정적인 작가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막연하게 가슴이 뚤리는 것 같다고 느낀 것을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생생하게 표현해 내고 있었다.

책읽기에 인색한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이 제시한 방향처럼 진지한 책읽기 통해 자신의 성장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