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나의 삶에 예기치 않은 불행이 끼어들까봐 가끔 불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대로 바르게 살면 될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곤 한다.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6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던 시절, 전통적 의미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는 남녀가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큰 집, 언제나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을 꿈꾸며 그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훌륭한 부모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다섯 번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가정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내면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던 가치관은 혼란에 휩싸이고 그 과정에서 그토록 꿈꾸었던 단란한 가족은 추억 속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아무리 가치관이 분명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을 해도 삶에 예기치 않게 끼어드는 사건에 인간은 얼마나 강해지고 옳다고 생각되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생각할수록 무섭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 삶에도 이런 뜻하지 않은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처음 만난 도리스 레싱의 이 얇은 책이 무겁게 나를 누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