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 - 강창래의 세계문학 강의
강창래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1월
평점 :
출판 편집 기획자이자 여러 강연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강창래의 책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흔하면서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바로 문학의 정의를 둘러싸고 논쟁을 일으켰던 '채털리 사건'을 다루는데 그 시작이 매우 흥미롭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을 부패시키거나 타락시킬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 그 책을 출판함으로써 (...) 과학, 문학, 예술, 학문 및 기타 대상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처벌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
1959년 영국에서 이 같은 법이 제정되자 1960년 펭귄 출판사는 상류층 부인과 사냥터지기의 혼외 정사를 적나라하게 다뤄 큰 논란을 일으킨 D.H.로렌스(1885~1930)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삭제 판을 출간한다. 그러자 정부는 이 소설이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펭귄 출판사를 고소했고 이는 재판으로 이어졌다. '재판 초기에는 이 작품이 음란물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이내 쟁점은 이 작품이 문학인가 아닌가로 바뀌었'(p.19)고, 여러 작가, 교수, 비평가, 성직자, 정치가들이 증인으로 나섰다.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선 문학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고 따라서 복잡한 논쟁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문학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문학이 무엇인지 속시원히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이렇듯 책은 '채털리 사건'을 예로 들면서 문학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이어서 '지배층의 소유물'이었던 문학이 어떻게 대중의 '값싼 교양교육 도구'로서 자리잡게 되었는지 당시의 사회,문화를 통해 설명하고 지금 우리가 접하는 문학이 근대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한다.
19세기 문학이 발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종교의 실패'를 말하는데, 그 이전까지 사람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려 사회를 통제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종교가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p.54)기에 그 빈자리를 문학이 차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존의 문학 개념이 무너지고 또 다른 문학이 나올 때마다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이에 대한 진실을 알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하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학이론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3장에서 6장까지는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순으로 각 나라의 문학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본다. 각국을 대표하는 근대 문학을 훑어보면서 주요 문학 사조의 특징과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 등을 작품을 인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7장부터 9장까지는 모더니즘 시와 소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는데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8장 모더니즘 소설들'과 '9장 미국의 모더니즘'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조지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들을 살펴본다.
나는 이 중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소설' 2위나 3위로 꼭 꼽힌다는(1위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라고 함)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에 가장 큰 관심이 갔는데, 저자의 설명이 매우 친절해서 나 또한 강렬하게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무엇보다 저자가 이 작품에 큰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최고의 번역으로 문학동네, 공진호 번역의 <소리와 분노>를 추천한다.
<소리와 분노>는 4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장의 시점이 다 다르고 시간의 흐름도 뒤죽박죽이지만, 1장과 2장만 잘 넘기면 3,4장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고 하니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10장은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문학 이론을 다루는데, 다양한 문학 이론 중 해석학, 정신분석학, 해체론을 다룬다. 저자는 '이론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게 하고 넓고 깊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문학 이론을 공부하면 작품을 읽은 뒤에 받은 충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p.272)고 말한다.
후설, 하이데거, 프로이트,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데리다가 줄줄이 나오는데 솔직히 반 정도만 이해한 듯 싶다. 저자도 이 책의 목적은 깊이보다는 '전체의 흐름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p.344)내는 데 있고 사실 책 마감일을 넘겨서 여기서 마쳐야 한다고 솔직히 밝히는데 속으로 여기서 멈춰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문학의 본질과 가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왜냐하면 텍스트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그 의미도 그 순간에만 무엇인가를 의미할 뿐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은 문학 외적인 것들과 끊임없이 작용하면서 변화하고 그 본질이 계속 변해왔기에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였던 저자의 서문을 소개한다. 문학 초보자로서 저자의 서문이 참으로 친절하게 다가왔다. 저자의 바람대로 앞으로 소설 읽기가 더욱 즐거워질 거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려운 평론이나 작품 해설마저도 아주 재미있는 글이 되면 좋겠다. 모든 독서에서 말이 잘 통하는 지적인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어려운 인문학 텍스트를 독자들이 직접 읽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어떤 용어든 다른 분야에서의 쓰임새까지 알고 나면 어려운 인문학 텍스트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