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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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 소설 속 인물들은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 감정의 깊이와 폭이 극단으로 치닫는 그런 인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책이 담고 있는 두 편의 이야기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도 마찬가지다.

 

<체스 이야기>는 츠바이크가 세상을 뜨기 1년 전에 쓴 작품이다.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여객선 위에서 두 남자, 세계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와 나치에 의해 감금당했다가 풀려나 브라질로 떠나는 B박사가 벌이는 체스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외부 이야기인 선상 위에서 벌어지는 체스 대결과 내부 이야기인 미스터리한 B박사의 과거가 극적으로 전개된다.

 

<낯선 여인의 편지>는 열세 살때부터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해 온 한 여자의 고백을 담은 서간체 소설이다. 감성이 발달하지 않은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여인이지만, 츠바이크는 독자로 하여금 그래도 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끔 만들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왜냐하면 여인이 사랑에 빠졌던 순간과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자신의 가난을 보여주기 싫은 여인의 자존심, 후에 남자와 함께한 밤의 희열, 남자가 자신을 하룻밤의 여자로 대할 때의 그 비참함과 좌절, 그러나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남자를 구속하고 싶지는 않은 사랑에 빠진 여인의 마음을 너무나 섬세하고 깊이있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기를 알아봐주기를 그토록 원했던 여인, 그러나 끝까지 '낯선 여인'으로 남게 된 한 여인의 이런 마음을 츠바이크가 아니였다면 아마 이해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여인은 마지막에 남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저를 위해서 해마다 당신 생일에-그래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지요-장미를 사서 꽃병에 꽂아주세요."(P.147)

여인은 남자의 생일 때마다 꽃을 보내왔는데, 자신이 죽어도 그 의식을 이어가 달라는 부탁이다.

이런 여인을 보며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미치지 않기 위해 시작한 체스가 결국엔 광기로 치달아 자아분열까지 간 남자와 한 남자만을 평생 사랑한 여인의 애절한 고백을 통해 인간의 광기와 순도 100%의 사랑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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